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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포화 속으로’ 포항 학도의용군의 헌신 기억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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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대척점에 다시 서는 남북의 한국전쟁 70주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현충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유가족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현충일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유가족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곳은 민족의 얼이 서린 곳/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한국전쟁에 군인만 180만명 사상자 #사면초가 김정은, 다시 긴장 조성해 #북한, 유일한 자산은 핵·미사일뿐 #북한에 거는 희망은 당분간 접어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 새겨진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진 곳에서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분들의 안식처가 현충원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군인이 전장에서 산화했다. 국립현충원은 그들을 모시기 위해 1956년 국군묘지로 조성됐다. 지난 6일 현충일은 국가 안보에 목숨을 바친 이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한 국가 추념일이다.

한국전쟁은 간단한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한반도 적화통일을 꿈꿨던 김일성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소련의 스탈린과 함께 모의한 국제전이었다. 그때 한국군은 10만3827명, 북한군은 18만 8297명이었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 전쟁』) 국군의 주요 무기는 고작 장갑차 27대와 105㎜ 고사포 91문뿐이었지만, 북한군은 전투기 84대에 T-34 전차 242대와 야포 565문 등을 갖고 있었다. 국군의 2.36인치 로켓포는 소련제 T-34를 뚫을 수 없었다. 북한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북한군은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고,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그러나 목숨을 건 국군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그해 8월 11일. 포항여중에선 총을 쏜 경험이 거의 없는 71명의 학도의용군이 북한군의 강력한 포화에 맞섰다. 그 덕분에 포항 시민과 피난민 20만 명이 피난하고, 국군 3사단이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 학도의용군 48명이 전사했다.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는 이들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무명용사탑 뒤 작은 반구의 화강암 속에 안치돼 있다. 국민이라면 한 번이라도 가서 이들의 헌신에 감사를 드렸으면 한다. 포항 학도의용군 전사자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가슴을 저민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중략)” 그는 다 쓰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안은 채 전사했다. 17세 중학생이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내용이다.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 전사자가 안치 된 무명용사탑. [중앙포토]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 전사자가 안치 된 무명용사탑. [중앙포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북한군과 마지막 결사항전에 임해야 했다. 그마저 뚫리면 한반도는 완전히 공산화될 운명이었다. 북한군은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 집결했고, 국군은 방어에 사투를 벌였다. 다부동을 막지 못하면 대구-경주-부산이 북한군 수중에 떨어진다.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1950년 8월 3~29일 사이의 다부동 전투엔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렸다. 이 전투는 국군 1만 명, 북한군 2만4000명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치열했다. 그때 1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라와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며 권총을 뽑아 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적 고지로 먼저 나아갔다.(백선엽 『징비록』) 그는 현재 100세로 병상에 누워있다. 백 장군은 그때 자신도 무서웠다고 했다.

같은 해 11월 말 유엔군은 북진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은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힘든 전투를 벌였다. 영하 30~40도의 혹한에 유엔군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벗어나야 했다. 전투 손실보다 얼어서 사망한 군인이 더 많았다고 한다. 얼어붙은 전우의 시체를 딛고 가야 했다. 그런데도 미 해병 1사단은 유엔군이 탈출할 때까지 남아서 배후를 방어했다. 미 해병 1사단은 10배나 되는 12만 명의 중공군을 막아냈다. 그 덕분에 흥남철수가 가능했다. 흥남철수는 유엔군 10만 명과 피난민 10만 명을 동해로 철수시킨 역사적인 작전이었다. 장진호 전투에선 유엔군 1만7000여 명과 중공군 5만2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대북 전단, ‘표현의 자유’

왼쪽부터 한국전쟁 때 오른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다부동전투의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 253번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소속 벨리 베켈레옹. [사진작가 현효제(라미 현), 중앙포토]

왼쪽부터 한국전쟁 때 오른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웨버 미 육군 예비역 대령, 다부동전투의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 253번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소속 벨리 베켈레옹. [사진작가 현효제(라미 현), 중앙포토]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생한 지 70년이 됐다. 3년의 전쟁은 한반도를 피로 물들였다.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전사자 17만5000명 등 사상자가 77만 명이었다. 북한군과 중공군 등 공산군도 전사자 52만 명에 전체 사상자가 103만 명이다. 당시 3000만 명이었던 남북한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00만 명 이상 희생됐다고 한다. ‘자유’를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른 전쟁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잘 사는 것도 수많은 무명용사의 희생 위에서다. 그런데도 지난 6일 현충일에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엔 태극기를 내 걸은 집이 거의 없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자신이 잘 나서 잘 산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남북한의 긴장이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부터 남북 통신선 가동을 모두 중단했다. 탈북단체가 대북전단을 북한에 살포했다는 게 빌미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4일 노동신문 담화를 통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폐지, 금강산 관광 철폐, 9·19 군사합의 파기 등을 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국을 ‘적’으로, 남북 관련 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규정했다. 단계적으로 한국을 괴롭히겠다고도 했다.

북한이 빌미로 삼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북 전단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다. 이 전단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의 소식을 알릴 수 있다.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입법한다지만, 위헌적 발상이다. 탈북단체가 전단을 매달은 풍선을 띄우는 시간과 장소를 공개하지 않아 지역 주민에게 위험이 없으면 정부가 전단살포를 막을 근거가 없다.

고립된 북한, 도발 강도 세질 듯

한국전쟁과 현재 한반도 안보 여건

한국전쟁과 현재 한반도 안보 여건

북한이 대북전단을 핑계로 남북관계를 단절하려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지난 3년 동안 유엔 등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렵다. 올 초엔 코로나19로 북한 스스로 중국과의 국경을 먼저 닫아 북·중 밀무역이 거의 끊어졌다. 중국에서 비료도 들여오지 못했다. 올해 농사는 보나 마나 흉작이다. 내년 북한 식량난은 심각해진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에 달러도 거의 마르고 있다. 달러가 없으면 북한에 부족한 쌀을 해외에서 사 올 수 없고, 장마당은 교란된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당연히 커진다. 그렇다고 대북제재가 해제될 기미는 없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해야 해제되지만, 핵 포기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도와줄 수도 없다. 정부가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이나 기업체, 단체 등을 활용하면 모두 제재대상이 된다. 누가 나서겠나.

북한의 유일한 자산은 핵무기와 미사일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하는 사이 김 위원장은 수십 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가 막기 어려운 여러 종류의 미사일도 개발했다. 여기에 북한 주민에게 대남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다. 김여정이 우리를 비난하는 담화를 북한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한 것은 그 일환이다. 북한 당국이 연일 주민을 동원해 대남 비난 궐기대회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이 대남 도발에 앞서 북한 주민에게 전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

이제 남북이 다시 대척점에 서고 있다. 과거에도 북한은 상황에 따라 대화와 도발의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사면초가에 있는 만큼 이번엔 도발 강도가 더 세질 가능성이 있다. 그는 먹고사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핵과 미사일만 잔뜩 갖고 있다. 그래서 통일의 희망은 당분간 내려놓는 게 좋겠다. 북한에 대한 기대도 일단 접어 두자. 한국전쟁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으려면 우리로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대비할 뿐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