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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패착으로 끝난 대남 강공전략, 김여정의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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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파국으로 몰렸던 한반도의 6월 다시 보기

북한이 지난달 17일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지난달 17일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숨이 막힐 듯했던 북한의 대남 강공전략은 완전 실패였다. 북한의 의사결정체계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능력도 의심된다. 김 부부장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각 세우기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개입으로 중단됐지만, 북한 내부에 큰 상처를 남긴 것 같다. 그의 대남 군사행동계획과 김 위원장의 전격 보류는 ‘배드캅(bad cop) 김여정’ ‘굿캅(good cop) 김정은’의 역할 분담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손해가 훨씬 컸다. 북한 내부에 분란도 있어 보인다. 북한에서 처음인 화상회의에 김 위원장의 영상이 나오지 않아 그의 건강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김여정·군부 갈등설까지 불거져 #연락사무소 폭파, 북 신뢰 잃어 #미 항모 급파로 중국에 부담 줘 #트럼프 재선 위기 땐 회담 재개

김여정의 압박, 군부에 부담 준 듯

김여정

김여정

김 부부장이 지난달 4일부터 쉴 틈 없이 내놓은 강공책들과 갑작스런 보류는 의아하다. 김 부부장은 그날 담화문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한다면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며 강력 경고했다.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폐쇄, 군사합의 파기도 거론했다. 9일엔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배신자들과 쓰레기들 죗값”이라며 남북 간 통신선을 차단했다. 김 부부장의 분노 조절 장애로 보였다.

김 부부장의 거친 행보는 군사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13일 담화문에선 “곧 다음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남한을 향한) 대적 행동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했다. 북한 군부에 실행을 지시한 것이다. 그동안 북한군에 대한 통제는 김 위원장의 절대권한이었다. 그래서 김 부부장의 군부에 대한 지시는 그가 2인자임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런데 북한 군부의 태도는 달랐다. 총참모부는 16일 담화문에서 “군사적 행동계획을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게 될 것”이라며 템포를 늦췄다. 김 부부장의 지시를 바로 시행하지 않고 중앙군사위로 슬쩍 돌린 것이다. 김 부부장의 압박이 북한 군부엔 부담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20일 공개한 대남 ‘삐라’(전단).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20일 공개한 대남 ‘삐라’(전단). [연합뉴스]

그런데 총참모부가 담화문을 낸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16일 오후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김 부부장은 총참모부의 회피를 봐주지 않았다. 17일 이어진 그의 말은 독설이었다. 그는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 날 세 번째 담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역겹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20일에는 문 대통령의 사진에 담배꽁초를 짓이긴 대남 전단 1200만장의 살포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어 북한은 비무장지대(DMZ)의 빈 초소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확성기도 10여 군데에 재설치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남북 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북한군도 초조했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군 수뇌부가 김 위원장에게 정황을 보고했던 것 같고, 김 위원장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그는 대남 군사행동을 전격 보류시켰다. 김여정 입장에선 수모였다. 그 결정은 화상으로 진행한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란 생소한 명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북한에선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나 ‘화상회의’ 모두 처음이다. 정상적인 회의를 하지 못할 정도로 급했다는 얘기다. 김열수 군사문제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은 “이번 과정에서 김여정과 북한 군부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김 부부장이 도가 넘는 행보로 입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앞으로 열릴 중앙군사위 제7기 5차 회의가 기대된다”고 했다. 5차 회의에서 김여정이 장군 칭호를 받으면 2인자로 등극하는 증거가 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철칙(배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여정의 다섯 가지 패착

북한군이 지난달 23일 황해북도 개풍군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연합뉴스]

북한군이 지난달 23일 황해북도 개풍군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연합뉴스]

강공으로 이어가던 김여정의 행보를 김 위원장이 갑자기 중단시킨 이유는 득보다 실이 커서다. 첫째 패착은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다. 연락사무소 폭파는 김 위원장과 김 부부장 합의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입장에선 문 대통령에 대한 충격요법이고,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파 영상을 본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는 김정은 정권의 야만성을 실감했다. 북한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둘째, 김 부부장이 내뱉은 독설은 우리 사회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의 큰 반감을 유발했다. 청와대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김 부부장의 거친 말에 대해 “몰상식”“기본적 예의 갖추라”고 했다. 북한으로선 의외였을 것이다.

셋째, 군사 조치다. 북한군이 DMZ의 빈 초소에 무장병력을 재배치한 뒤 서해에서 훈련까지 재개하면 9·19 남북 군사합의는 파기된다. 그럴 경우 우리 군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경계 강화와 전방지역에서 무인정찰기 운영 재개다. 넷째, 북한의 대남 전단과 확성기 방송이다. 북한군이 대남 전단을 날려 보내면 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 북한이 전방지역에 확성기를 설치했지만, 실제 방송하면 우리 군도 확성기로 대북방송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군의 확성기가 북한군보다 훨씬 출력이 크다. 서로 확성기를 켜면 우리 확성기 소리만 들린다. 우리  군의 대북심리전 방송에 노이로제가 있는 북한군은 더 취약해진다. 북한군으로선 남는 게 없는 일이다.

김여정의 강공전략이 실패한 이유

김여정의 강공전략이 실패한 이유

다섯째, 북한의 긴장 조성으로 미국이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다시 전개한 것이다. 최근 미 국방부는 한반도가 포함된 동아시아 해역에 항공모함 3척을 배치했다. 로널드 레이건함·니미츠함·루즈벨트함이다. 여기에다 일본 사세보 기지에는 강습상륙함 아메리칸함(4만5000t)도 대기 중이다. 아메리칸함은 수직 이착륙 스텔스기 F-35B를 20대나 싣고 언제든 북한 침투작전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반도에 투입될 미 항모가 ‘3+1’(항모 3척+강습상륙함 1척) 체제가 된 것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된 2017년 당시 미국이 북한 타격을 위해 한반도에 항모를 4척을 배당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북한군엔 엄청난 압박이다. 더구나 필리핀-대만-일본-한반도 사이를 활보하는 미 항모 3척은 중국에도 부담이다. 김 부부장의 오판이 중국을 화나게 했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국방부는 최근 괌에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스텔스 전략폭격기 4대를 배치했고, 지난달 21일엔 B-52 전략폭격기 2대를 동북아에 전개하기도 했다. 북한의 과잉행동이 잠잠하던 미국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김 부부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강공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이제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잠수함용 미사일(SLBM) 발사 이하의 도발뿐이다. 김 위원장이 재래식 도발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잃는다.

이런 와중에 존 볼턴 미 백악관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북한 비핵화 회담 재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중재력을 잃었다. 트럼프 행정부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 백기를 들지 않는 한 협상에 나설 수 없다. 대북제재는 계속되고, 북한 경제는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우려가 없지 않다. 트럼프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을 이길 가망이 거의 없을 때다. 그럴 때 문 정부가 북한 비핵화 중재에 다시 나설 수 있다. ‘영변+핵 동결’과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과도한 성과 홍보로 북핵 위험을 덮으려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핵을 인정하는 불완전한 비핵화여서 우리 안보는 크게 위태해진다. 따라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