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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물고기를 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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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그냥 준다면 그를 하루만 배부르게 할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평생을 배부르게 할 것이다.”

익숙한 문구다. 선교단체나 개발기구, 비정부기구(NGO)에서는 일종의 선언문처럼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원조나 복지가 누군가를 돕는 자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변화가 돼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게 정답일까.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류학)는 저서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오늘날 어업만 봐도 이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떠다니는 공장’으로 불릴 만한 특수기술로 어업을 주도하면서 이제는 ‘물고기 잡는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어떤 인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실업자 어부를 양산하거나 기껏해야 이미 경쟁이 포화상태인 분야에 뜨내기 한 명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세상이 변했다. 오늘날 세계는 가난한 이들의 노동력 공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직업훈련을 시켜봤자 그걸 써먹을 곳이 없다. 어차피 세계화, 디지털화로 완전 고용은 불가능한 목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주장이 이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냥 돈을 줘라.” 바로 기본소득제 도입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은 엄청나다. 특히 정통 좌파일수록 거부감이 크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철학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는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부유해지고 싶어하는 무산계급을 ‘룸펜 프롤레타리아’라 칭하며 비판했다.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무산계급의 혁명을 방해할 뿐 아니라, 반동적 음모에 가담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통 좌파진영은 “기본소득제는 현금 지급으로 사람들을 신자유주의적 시장교환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며 거부한다.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어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자, 여당 일부 의원이 이를 “우파적”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이 지사가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양파”라고 받아쳤다. 기본소득제라는 주제 앞에서 정치인들의 이념 지형도가 드러나는 현상이 흥미롭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