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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고스펙 보좌진…변호사ㆍ임원ㆍ작가 출신 등 ‘인재 집합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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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4월 28일 이낙연 의원실에서 5급 비서관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채용 공고. [중앙포토]

지난 4월 28일 이낙연 의원실에서 5급 비서관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채용 공고. [중앙포토]

‘경제 또는 국제관계 분야 전문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 우대. 국회 근무 경력 무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총선 2주 후인 지난 4월 말 이 같은 요건을 명시한 채용 공고를 내걸었다. 21대 국회에서 함께 활동할 보좌진을 뽑기 위한 절차였다. 민주당 보좌진 사이에선 “만만치 않은 자리”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보고서의 내용뿐 아니라 글자 크기·글자체까지 꼼꼼하게 따질 정도로 깐깐하다고 소문난 이 의원의 업무 스타일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속에도 이낙연 의원실 5급 비서관 자리엔 총 112명의 전문가가 그야말로 ‘지원 러쉬’를 펼쳤다. 112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인공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출신의 하정철 비서관이다.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석사를, 미국 에머리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거쳐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전문위원(3급)으로 일했단 점을 고려하면 비서관이 되며 오히려 급수가 낮아진 셈이다. 하 비서관은 “줄곧 법과 관련한 공부를 하다 국정기획자문위 경험을 통해 국정 과제가 설계·입안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래의 비전’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고 21대 국회 보좌진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하 비서관의 사례처럼 21대 국회 들어 보좌진도 ‘실무형 인재’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일하는 국회’를 앞세운 만큼 각계각층의 전문가 등 ‘고스펙’ 보좌진이 대거 포진했다.민주당의 한 비서관은 “과거엔 보좌진을 의원의 ‘비서’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점차 의원실 직원이 입법 활동의 실무 지원 인력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며 “국회 보좌진도 전문가와 실무형 인재를 중심으로 ‘외부 영입’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조정훈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서 활동할 자신의 보좌진을 소개했다. [뉴스1]

조정훈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서 활동할 자신의 보좌진을 소개했다. [뉴스1]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이끄는 의원실도 다양한 이력을 가진 고스펙 보좌진으로 채워졌다. 최병현 보좌관은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MBA) 중 하나인 인시아드(INSEAD) 출신으로 화제가 됐다. 시대전환의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조 의원과 함께해 왔다. 그는 조 의원과의 만남을 ‘삶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조 의원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이 사람과 함께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진 뒤 곧장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한다.

최 보좌관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예전보다 연봉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이 치명적이지만 그런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정훈님(※조정훈 의원실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의원님’이라는 호칭 대신 ‘정훈님’이라는 호칭을 쓴다)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며 “작지만 알찬 입법 활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한정(왼쪽)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 경제분석실장 출신의 도보은 보좌관을 영입했다. 김 의원은 도 보좌관을 "이론과 실무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한정 의원실 제공]

김한정(왼쪽)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 경제분석실장 출신의 도보은 보좌관을 영입했다. 김 의원은 도 보좌관을 "이론과 실무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한정 의원실 제공]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현대자동차 글로벌경영연구소 경제분석실장(상무)을 지낸 도보은 보좌관을 임용했다. 도 보좌관은 과거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감독총괄국 부국장, 글로벌경제금융연구소장을 거친 금융·경제 전문가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도 보좌관에 대해 “입법정책을 담당할 보좌관으로 도보은 박사를 모셨다. 이론과 실무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이고 제가 모시기에 과분한 경력의 경제금융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광역단체장(강원지사) 출신의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외신대변인 출신의 서지연 보좌관을 임용했다. 서 보좌관은 이 의원이 채용 당시 우대 조건으로 내걸었던 영어·중국어 능통자, 산업정책 전문능력자 등의 조건에 부합했다. 서 보좌관은 “이광재 의원이 경제·산업 쪽에 관심이 많고 전문성 강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하면서 많은 배움을 얻으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로 새로운 보좌진이 대거 국회에 수혈된 민주당과 달리 의석수가 크게 줄어든 미래통합당의 기존 보좌진들은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려야 했다. 통합당은 다양한 이력과 스토리를 가진 보좌진들이 영입되거나 자리를 옮기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전주혜 통합당 의원실의 배수득 비서관은 국회에 오기 전엔 전 의원의 동료 변호사였다.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한 배 비서관은 영남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형사전문 변호사이지만 고용노동부에서 근무하고 노동 실무 관련 책도 펴낼 정도로 노동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의원 보좌진들이 사무실을 정리하며 21대 국회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의원 보좌진들이 사무실을 정리하며 21대 국회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배 비서관은 “여러 협회 활동을 하며 의원님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다”며 “노동 분야 등 현장에서 보고 익힌 것들이 좋은 정책, 좋은 법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양금희 통합당 의원실 이현진 보좌관은 ‘급’을 낮춰 국회에 복귀한 케이스다. 국회에서 비서로 일을 시작해 보좌관(4급)이 된 그는 박근혜 정부 때 4년 동안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으로 일하며 정책 경험을 쌓고 다시 국회 보좌관으로 돌아왔다.

국회 최연소 4급 보좌관인 허은아 통합당 의원실 이승환 보좌관은 정치ㆍ정책 관련 책 두권을 써낸 작가다. 검정고시와 독학 학위제로 고등학교ㆍ대학교를 마친 그는 미국 백악관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를 만난 경험으로 국회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이후 무급 인턴으로 시작해 최연소 4급 보좌관이 됐다. 20대 국회 때는 5선의 정병국 의원과 일했었다. 이 보좌관은 “사회변화나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무작정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며 “처음 가진 각오를 잊지 않고 21대 국회에서도 제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우·윤정민·김홍범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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