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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수로 금메달 걸었다···'목함지뢰' 하재헌 중사 인생2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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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운동을 하고 있다. 하 중사 제공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운동을 하고 있다. 하 중사 제공

“예비역 중사, 선수라는 호칭 둘 다 좋아요. 편한 대로 불러주세요.”

하재헌(26) 예비역 중사의 말이다. 지난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은 하 중사. 그는 이제 운동선수다. 지난해 4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장애인조정선수단에 입단하면서다. 이미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지난해 10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장애인체전) 남자 싱글스컬 PR1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4일 현충일을 앞두고 조정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사는 하 중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잊을 수 없는 2015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 9월, 경기도 성남 분당 서울대병원에 방문해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 중인 하재헌 당시 하사를 문병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 9월, 경기도 성남 분당 서울대병원에 방문해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 중인 하재헌 당시 하사를 문병하고 있다. 연합뉴스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2015년 8월 4일, 육군 1사단 수색대대 하사였던 그는 경기도 파주 서부전선 최전방 비무장지대(DMZ)로 수색작전을 나갔다. 작전 도중 북한군이 심어놓은 목함지뢰를 밟았다. 직업군인을 꿈꾸며 부사관으로 임관한지 1년만의 일이다.

“정말 순식간이었죠. 발을 디뎠는데 폭발음이 들렸고…눈떠보니까 바닥에 앉아있더라고요.”

두 다리를 절단했다. 수술만 21차례 받았다. 하 중사는 “다리만 다친 게 아니라 지뢰 파편이 엉덩이·등에도 튀어 심한 화상을 입었다”며 “전신마취를 19번 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맞느라 한 달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심경을 묻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수록 힘들었다”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차례 수술을 받은 후 그는 군에 다시 복귀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근무하며 5년간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고 전역했다.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장진영 기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장진영 기자

중학교 때까지 야구선수를 꿈꿀 정도로 운동을 즐겼던 그다. 하 중사는 재활훈련을 하던 중 실내조정을 접했다. 그는 “실내조정은 절단 환자들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라며 “야외에 나가 배를 타고 ‘그 맛’에 푹 빠졌다”고 설명했다.

하 중사가 속한 SH공사 장애인조정선수단실업팀은 그가 합류하면서 만들어졌다. 하 중사는 “‘장애인 선수 실업팀을 만들건데 함께 하자’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모아 팀을 꾸리게 됐다”며 “장애인 선수 실업팀은 많지 않아 생계유지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는 장애인들이 많아 안타깝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이렇게 팀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 중사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일본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졌는데, 오히려 연습할 시간을 벌어서 좋다”고 웃었다. 요즘에도 여전히 경기도 하남 미사리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조정연습을 하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하 중사 제공

조정연습을 하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하 중사 제공

“대중에게 잊혀져…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운데)와 동료들의 모습. 하 중사 제공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운데)와 동료들의 모습. 하 중사 제공

그에게도 고충은 있다. 하 선수는 최근 SNS에 ‘대중에게 잊혀져 오로지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어떤 심정으로 쓴 글인지 물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잊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사고 당시와 달리 이제 많이들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밖에 나가면 많이들 알아보셨는데 지금은 대부분 못 알아보신다”며 “종종 다친 다리를 보고 ‘교통사고 당했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가끔 길을 가다 ‘고맙다’ ‘고생했다’며 악수를 건네는 어르신들에게 힘을 얻는다고 했다.

조정연습을 하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사진 하재헌

조정연습을 하고 있는 하재헌 예비역 중사. 사진 하재헌

“‘응원한다’ 한마디라도”

2015년 12월 하 중사가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2월 하 중사가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위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직업군인을 꿈꾸다 다치면 상실감이 더 크다. 국가 차원에서 부상 후 진로를 위한 보다 상세한 상담 등을 제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 선수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 다치거나 사망한 병사들의 보상 행정처리를 맡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도 덧붙였다.

“6·25전쟁, 월남전 생존자분들을 포함한 국가유공자가 매우 많아요. 그분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보면 씁쓸하죠. 국가유공자들에게 ‘응원한다’ 말 한마디만 해주셔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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