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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E클래스·5시리즈 경쟁에 G80 가세

중앙일보

입력

하반기 부분변경 출시… 제품보다 ‘브랜드 분위기’에 흥망 갈릴 듯

고급 중형세단 치열한 3파전

벤츠 뉴 E클래스

벤츠 뉴 E클래스

한국의 고급 중형세단 시장은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다. ‘중형 세단’이라는 기계적인 차급 기준에 ‘고급 중형세단’이라는 카테고리가 별도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통상 판매가 5000만~1억원 수준의 차량을 일컫는다. 수입차업계에선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인지하고 있다. 수년간 불어 닥친 SUV 열풍도 이를 바꾸진 못했다.

국내 중·저가 차량 시장은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브랜드가 석권하고 있지만 해당 시장에서 만큼은 글로벌 브랜드가 맹위를 떨친다. 이 차급에서 1위를 하는 브랜드가 전체 수입차 판매량 1위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한국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는 이 차급에 가장 집중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 불황 속에서도 ‘불황 없는’ 한국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어 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간 이 시장의 최상위 자리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렉서스 등의 브랜드가 차지해왔고, 최근 몇 년간은 벤츠 E클래스의 차지였다. 다만 올 초부터 BMW의 공세가 강한 데다, 풀체인지 된 제네시스 G80의 인기로 이 구도에 변화가 생길 거란 예상이 커진다. 업계에선 올 하반기 출시될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의 전쟁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7년 만에 풀체인지 된 제네시스 G80까지 가세해 ‘삼파전’ 구도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E클래스 쫓는 5시리즈 

BMW 뉴 5시리즈

BMW 뉴 5시리즈

최근 몇 년간 고급 중형세단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한 건 벤츠 E클래스다. 2016년 10세대 모델을 국내에 출시한 이후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새로운 파워트레인과 카브리올레, 쿠페 등의 모델을 출시하며 판매량이 줄곧 우상향했다. 2000cc E220d부터 3000cc E450까지 출시 모델만 17종에 달한다.

E클래스는 벤츠가 수입차시장 왕좌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풀체인지된 E클래스가 출시된 2016년부터 줄곧 수입차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E클래스의 국내 판매량(고성능 모델 제외)은 3만9468대로 벤츠코리아 전체 판매량(7만8133대)의 절반을 차지했다.

전통강호 BMW는 2017년 7세대 5시리즈를 내놓으며 이 시장에서 옛 명성을 찾으려 했지만 ‘화재사태’로 주춤했다. 2018년 5시리즈의 판매량(고성능 모델 제외)은 2만3318대로 신차효과를 누리지 못했으며, 2019년엔 1만9002대를 팔아 E클래스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5시리즈의 파생모델인 6시리즈 판매량을 더해도 판매량은 2만1470대에 그친다.

하지만 올 들어 5시리즈의 추격이 시작됐다. 올 1~4월 판매 집계를 보면 5시리즈는 6162대나 팔려 같은 기간 E클래스 판매량(7534대)과 격차를 1400대 수준으로 좁혔다. 6시리즈 판매량까지 더하면 5·6시리즈의 판매량은 7333대로 E클래스와 불과 201대 차이다. BMW 5·6시리즈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4007대) 대비 83% 늘어난 반면 벤츠 E클래스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1만1520대) 대비 34% 줄어들었다.

이 같은 추세는 두 차의 부분변경 모델이 출시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벤츠코리아의 딜러사 관계자는 “연초 벤츠코리아 측으로부터 받은 E클래스 판매 목표는 지난해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며 “올해 전년 대비 판매를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상반기의 판매는 사전매치에 불과하다. 두 모델의 본격적인 격돌은 하반기 시작될 예정이다. E클래스와 5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국내 시장에 출시되기 때문이다.

먼저 BMW는 올해 4분기 7세대 5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는다. BMW의 1위 탈환 의지는 강하다. BMW코리아는 지난 5월 27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5·6시리즈 세계 최초공개(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갖고 신형 5시리즈와 6시리즈를 선보였다. 풀체인지 모델은 아니지만 해외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최대 볼륨모델의 신차를 가장 먼저 공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당초 BMW는 올해 예정됐던 부산모터쇼에서 5시리즈 페이스리프트를 공개하려 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부산모터쇼가 취소되자 BMW코리아가 보유한 드라이빙센터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BMW의 당초 계획은 5시리즈뿐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페이스리프트된 6시리즈 그란쿠페까지 공개하며 한국 시장 공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벤츠 역시 하반기 10세대 E클래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할 방침이다. 벤츠는 지난 3월 자체 미디어 채널을 통해 이 모델을 선보인 바 있다. 당초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모터쇼가 취소되며 언택트 방식으로 공개했다. 국내 출시 시점은 올해 하반기로 예정하고 있다. 공개된 차의 모습을 보면 페이스리프트임에도 ‘신차급’ 변화가 이뤄지는 등 심혈을 기울인 모양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은 두 차가 비슷하다. 먼저 자동차 디자인의 핵심인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상을 바꿨다. E클래스는 기존 역사다리꼴 형태의 그릴을 육각형 형태로 변경했다. 5시리즈는 특유의 키드니 그릴의 크기를 더욱 키우고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시켰다. 실내 디스플레이 확장과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모델을 더한 것도 공통점이다. 모터를 이용해 연비를 높이고 출력도 더했다. 특히 BMW는 모든 엔진에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했는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 기존 520d 모델의 이름을 523d로 바꾸기도 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라인업을 늘린 것 역시 공통점이다. 벤츠는 기존 E300e 외에 디젤엔진을 이용한 E300de 모델을 추가했다. 다만 국내 출시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BMW도 전에 없던 545e를 라인업에 더한다.

다만 현 시점에서 두 제품의 성패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실질적인 평가가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다, 아직 세부 제원 및 가격 등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제품의 경쟁력과는 별도로 두 회사의 분위기가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브랜드의 한국 시장에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까지 화재사태 침체에 빠졌던 BMW는 이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에 탄력을 받고 있다. 독일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한국 시장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4월 한국의 5시리즈 판매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피터 노타 BMW그룹 브랜드 및 세일즈·애프터세일즈 총괄은 5·6시리즈 월드프리미어 행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이 취한 결정적이고 효과적인 대책 덕분에 한국에서 신형 5시리즈와 6시리즈를 최초 공개할 수 있었다”며 “BMW와 한국의 관계는 단순한 자동차 판매 그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벤츠코리아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최근 환경부가 과거 판매 모델에 대해 ‘배출가스 조작’이라고 판단한 데 이어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진행됐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인증취소에 나선 차종들이 이미 단종된 탓에 당장 판매에 지장은 없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은 불가피 하다. 이슈가 장기화될 경우 하반기 새로운 E클래스를 예정대로 들여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5월 27~28일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이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지자 ‘대표이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벤츠코리아 측은 “실라키스 사장은 일상적인 출장을 간 것”이라며 “검찰 조사에는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답했다.

A6·ES 부진 속 벤츠·BMW 적수는 G80

제네시스 G80

제네시스 G80

수입차업계에서 E클래스와 5시리즈의 적수는 없어 보인다. 아우디코리아는 지난해 하반기 A6 풀체인지 모델을 국내 출시해 판매량을 늘리는 듯 했지만 최근 가솔린 모델에 대해 돌연 판매를 중단했다. 아우디코리아 측은 “본사 요청에 따른 차량점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렉서스 ES와 볼보 S90 등이 주목할 만한 차인데 ES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지는 일본제품 불매 운동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볼보 S90는 판매 볼륨이 크지 않다.

대신 7년 만에 풀체인지 된 제네시스 G80 열풍이 변수다. 지난 3월 출시된 G80은 4월 한달 동안 4416대가 판매됐다. 누적 계약건수는 3만대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추세면 올해 판매목표 3만3000대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 G80의 지난해 판매량은 2만2284대인데 판매목표 만큼만 팔아도 1만대 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결국 G80과 5시리즈, E클래스의 3파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자동차과)는 “그동안 G80의 판매는 탄탄한 법인 수요가 바탕이었는데 최근 고급스러움과 젊은 감성을 더해 수입 세단의 수요를 빼앗아 오고 있다”며 “이전 모델에 비해 적지 않은 가격인상이 있었음에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 사진: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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