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 위기 리더십’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시점에서 궁금한 점은 대한민국의 위기 대응 방향이 적절한지다. 특히 위기 관리 최고 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대처가 주목된다. 그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앞서 3년간 정책을 보면 우려가 앞선다. 최근 발표된 1분기 가계소득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통계 기준까지 바꿨는데도 소득 하위 1분위와 최상층 5분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소득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린다며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근로시간을 제한했지만 현실은 실망스럽다.

과감한 대처로 지금까지 선방 #재정·통화 소진 이후가 문제 #기업 옥죄는 규제 풀어야 성공

그 와중에 덮친 코로나 사태는 문 대통령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성공의 관건은 위기 관리 리더십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다섯 차례 비상경제회의를 열었고, 그제 40일 만에 다시 회의를 주재했다. 큰 방향은 이미 앞서 다섯 차례 회의에서 가닥이 잡혔다. 회의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옥석을 가리되 ‘망하는 기업은 없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기본 방침이다. 여기에는 기업 규모의 구분도 없다. 기존 정책 기조로 보면 대통령 또는 참모들이 지원 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기업이 문을 닫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회의를 이끌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도 있었겠지만, 문 대통령의 ‘부산 경험’도 컸다는 얘기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를 할 때 그의 소송 의뢰인 가운데 해고 노동자가 많았다. 당시 문 대통령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게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였다. 기업이 문만 닫지 않으면 근로자는 일자리 유지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재정 역량을 총동원하자는 방침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1, 2, 3차 추경에 이어 76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을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과감하고 ▶선제적이면서 ▶충분하게 지원한다는 위기 대응 3원칙의 적절한 실행이다. 그 대표적 수단이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다. 지원 대상은 고사 위기에 직면한 해운·항공 산업이다. 다른 대기업 업종도 별도의 비상금융조치 자금 135조원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코로나 위기 대응의 방점이 규모 불문하고 기업 살리기에 찍히면서 한국은 경제 패닉을 잠재우고 있다. 경제 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주요국보다 선방하는 비결이다.

결국 코로나 사태를 맞아 문 대통령의 접근법을 종합하면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이 문을 닫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대기업도 자금 지원의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재정을 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대처는 실사구시로 보인다. 취임 전부터 친(親)노동을 내세우며 재벌 개혁을 강조해 왔지만, 위기 시에는 기업부터 살려 일자리를 지키고 보자는 접근이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어차피 전시 같은 상황이라면 성공의 충분조건은 정책 기조의 전환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0.5%로 낮췄고, 올해 세입은 30조원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은조차 성장률을 마이너스 0.2%로 비관했다. 재정을 동원해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킨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문 대통령은 통화·재정 여력이 소진된 지금 장기전에 대비할 각오가 필요하다.

답은 나와 있다. 산업 활성화밖에 없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 개혁에도 손을 대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한국형 뉴딜과 국내로의 기업 유턴은 공허할 뿐이다. 세수 부족을 메운다면서 증세론이 꿈틀대고 규제가 여전해서는 LG전자의 구미 TV공장처럼 집토끼마저 해외로 뛰쳐나가는 사태를 막을 수 없다. 그린 뉴딜도 탈원전을 고집하면서 두산중공업을 풍력 회사로 만드는 방향이라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아무리 위기라지만 기업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심리가 살아나 문 대통령의 위기 리더십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