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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데 가야지" 쏙 들어간 말···싫은 직장이 평생 직장 됐다

중앙일보

입력

취업직업훈련 안내문을 살펴보는 한 구직자. 뉴시스

취업직업훈련 안내문을 살펴보는 한 구직자. 뉴시스

정보기술(IT) 업체의 해외 법인에서 일하는 A씨(30대)는 최근 직장을 옮기겠다는 계획을 접었다. 이전까진 근무 연차만큼 급여가 오르지 않고, 몸 담고 있는 분야의 발전이 지지부진해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 생각을 바꿨다.

[기업딥톡 21] 코로나로 촉발된' 현 직장 만족 현상'

오히려 그동안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길 정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직 시장의 문이 좁아진 영향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외부 활동이 줄면서 자신이 속한 온라인 분야 사업이 수혜를 보고 있어서 보람도 느끼기 때문이다. A씨는 “안정적이고 보람 있는 곳이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얼마전부터 ‘다른 데 가야지’라는 말을 안 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자동차 엔진 연구직인 B씨(34)도 이직 계획을 사실상 접었다. 더 나아질 여지가 보이지 않아 지금의 회사를 계속 다닌다. B씨는 “돈을 모은 뒤 사표를 내고 해외 학위를 따, 좀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도전하려 했었다”며 “그런데 지금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엔진 분야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실효성이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 그냥 지금 회사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시장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어서, 아예 다른 직종으로 전환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어느정도 한다"면서도 "지금은 ‘내가 정년을 맞을 때까지는 월급을 계속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직보다 현재 회사에 충실" 

코로나가 직장인들의 이직에 대한 생각도 바꿔놓고 있다. 잡코리아가 이직에 관심 있는 직장인 478명을 최근 조사한 결과 ‘고용 안정성, 정년보장을 가장 중시하게 됐다’고 답한 응답자가 56.4%였다. 이 영향으로 ‘재택근무 등 코로나19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기업을 선호하게 됐다(32.8%)’거나 ‘이직보다 현재 회사에 충실하게 됐다(29.6%)’는 답변이 상위권에 올랐다.

구인정보를 살펴보는 구직자. 뉴스1

구인정보를 살펴보는 구직자. 뉴스1

이는 2011년 이직 관련 조사때와 온도차가 있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응답자 340명 중 2.1%만 ‘현 직장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이직할 수 있다’는 응답은 55.9%였다.

이직을 시도하는 이유는 ‘업무가 맞지 않아서’(34.7%)나 ‘발전가능성이 없어서’(28.2%) 순으로 많았고, ‘업무 강도가 높아 개인생활이 없어서’(26.5%)라는 의견도 상위에 있었다. 당시엔 주 52시간 근무 제한이 없었고, 정년이 60세로 늘기 전이었다. 또 코로나19도 없던 시절이다.

이런 인식 변화를 인사 담당자도 느끼고 있을까. 기자가 취업 정보 유튜브 채널 ‘캐치TV’ 진행자 ‘철수’와 함께 접촉한 3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아직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업체 인사 담당자 C씨는 “코로나 사태로 이직이나 신규 취업 시장이 좁아졌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이 되고, 관련 통계도 보고 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회사의 직원 만족도가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높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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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 높일 기회지만 매출 감소가 걸림돌 

제약업체 인사 담당자 D씨는 “기존 직원들의 회사 몰입도와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 좋은 시기인 건 알지만, 마땅히 실현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는게 문제”라며 “코로나로 인한 전반적인 매출 감소에 따라 비용 절감이 중요한 상황이어서 직원 혜택을 주는 게 녹록치 않다”고 털어놨다.

다만 가구회사 인사팀 E씨는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회사 발전과 관련한 뉴스를 공유하고, 코로나 속에서도 매출이 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소속감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정리해고나 휴직까지 고려하는 일부 회사와 달리 우리는 신규 채용도 진행하고 있어 좋은 회사를 다닌다는 인식이 전파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정보 유튜버 ‘철수’는 “코로나19라는 외부 여건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 직장 만족’ 현상이 큰 회사 일부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며 “안정성이나 급여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견ㆍ중소기업 직장인은 여전히 이직에 목마를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원 사기 진작에 힘써야 할 '투자 기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 상황에 대해 인재 유지ㆍ영입을 위한 회사의 미래 투자 기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상화를 대비해 숙련도 높은 직원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구성원 사기 진작에 신경을 쓰는 것이 기업의 주요 투자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노력을 하는 기업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도 정부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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