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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다양하고, 크기는 작게…올해 스위스 고급 시계들이 제안하는 시계 트렌드는 '뉴클래식'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급 시계업계 역시 유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전 세계 시장을 이끌어온 두 개의 스위스 국제 시계 박람회가 지난 4월 모두 취소된 것. 이후 각 나라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시계 프레젠테이션과 바이어 세일즈 미팅 역시 모두 취소됐다. 신제품 보여줄 길이 막힌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웹 사이트, SNS, 화상 통화 등을 활용한 디지털 박람회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시계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올해의 시계 트렌드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아날로그의 정수'로 꼽히는 고급 시계들이 디지털 속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IWC 포르튜기저 투르비옹 레트로그레이 드 크로노그래프 부티크 에디션. 마모성을 강화한 18캐럿 아머 골드 케이스에 플라잉 해킹 미닛 투르비옹을 탑재했다. 오토매틱 와인딩으로 68시간 파워리저브가 가능하고, 50개만 제작된 한정판 시계다. 사진 IWC, 그래픽 신용호

코로나19로 '아날로그의 정수'로 꼽히는 고급 시계들이 디지털 속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IWC 포르튜기저 투르비옹 레트로그레이 드 크로노그래프 부티크 에디션. 마모성을 강화한 18캐럿 아머 골드 케이스에 플라잉 해킹 미닛 투르비옹을 탑재했다. 오토매틱 와인딩으로 68시간 파워리저브가 가능하고, 50개만 제작된 한정판 시계다. 사진 IWC, 그래픽 신용호

올해는 고급 시계업계의 새로운 실험이 예정된 해였다. 까르티에·바쉐론 콘스탄틴·IWC 등 다수의 고급 시계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드 그룹’이 주축이 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고급 시계 박람회 ‘SIHH’가 없어지고, 대신 아시아·미주 지역에서 열렸던 ‘와치스 앤 원더스’(Watches and Wonders)가 규모를 키워 스위스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일정도 또 다른 고급 시계 박람회인 ‘바젤월드’가 끝나는 4월로 잡히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박람회 두 개가 연이어 열리는 첫 번째 해가 될 예정이었다. 지난해 브레게·블랑팡·오메가 등 ‘스와치 그룹’의 모든 시계 브랜드가 이탈하면서 약화된 바젤월드의 영향력을 염려한 스위스 시계업계의 치밀한 전략이었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결국 바젤월드는 올해 박람회 개최를 포기하고 내년 1월로 일정을 미뤘지만 미래는 여전히 우울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월에 롤렉스·파텍필립·튜더·샤넬·쇼파드 등 굵직한 인기 브랜드들 역시 바젤월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반면 와치스 앤 원더스는 모든 시계를 온라인 웹 사이트를 통해 보여주는 디지털 박람회로 형식을 바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각 브랜드들은 바이어·기자·VIP들에게 이메일로 온라인 링크를 보내 웹사이트에 접속한 후 신제품 사진과 상세 설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몇몇 브랜드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한편 불가리·위블로·태그호이어 등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 시계 브랜드들은 운이 좋았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 두바이에서 자신들만의 시계 컬렉션 쇼를 열고 신제품을 제대로 선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소개하는 아날로그의 정수

“올해 어떤 홍보 활동도 하지 않았다. 내년의 구체적인 행사나 세일즈 미팅 계획 역시 세우지 못했다.”
10여 명의 국내 고급 시계업계 관계자들에게 올해 시계 시장의 전망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미처 온라인 박람회를 준비하지 못한 브랜드들은 지금 그야말로 공황 상태다. 롤렉스는 아예 올해 하려고 했던 신제품 출시를 내년으로 모두 미뤘다. 다른 시계 브랜드들 또한 신제품 선보이기에 주저하는 분위기다.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의 사무실과 매장,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시장에 신제품을 내놓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 시계업계 관계자는 “바젤월드나 SIHH에서 한꺼번에 '올해의 시계'들을 선보였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올해는 시장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신제품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발빠르게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비대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브랜드들도 있었다. IWC는 증강현실(AR)ㆍ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고객이 실제로 매장을 방문한 것 같은 가상 체험을 준비했다. 예거 르쿨트르·브라이틀링·해밀턴은 각 나라별로 바이어와 기자단을 소규모로 모으고 화상 전화를 통한 프레젠테이션과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해밀턴의 실방 돌라 글로벌 CEO, 브라이틀링의 조지 컨 CEO는 주요 화상 미팅마다 직접 참가해 신제품을 소개하는 등 열정을 보여줬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38mm 골드. 18캐럿 골드 케이스를 둘러싼 90개의 다이아몬드 장식이 돋보인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38mm 골드. 18캐럿 골드 케이스를 둘러싼 90개의 다이아몬드 장식이 돋보인다.

크기·색 바꾸고, 복각 시계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의 시계 트렌드는 ‘안전함’을 지향하는 추세다. 국내 시계 커뮤니티 겸 미디어 ‘타임포럼’의 장세훈 시계 칼럼니스트는 “올해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새로운 도전보다는 기존 모델에 다양한 컬러를 추가하거나, 시계 다이얼 사이즈를 변화시키거나, 과거 인기를 끌었던 제품을 재해석한 복각 시계를 주력상품으로 내놓는 등 보수적으로 새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브레게가 올해 5월까지 선보인 신제품 대부분은 기존 모델에 소재나 다이얼의 변화를 준 시계들이다. 예거 르쿨트르는 인기 모델인 ‘마스터 컨트롤 컬렉션’을, 태그 호이어는 ‘까레라'의 복각 모델을 내놨다. 브라이틀링은 1953년 처음 출시한 ‘에비에이터8’의 리에디션 모델을 선보였다.
시계 사이즈는 작아졌다. 장 칼럼니스트는 “남성용의 경우 드레스 워치는 36~40mm, 스포츠 워치는 38~42mm로 케이스 직경이 줄었다”며 “같은 모델이지만 기존에 없었던 사이즈를 만들어 다른 선택지를 주는 다변화 전략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여성 시계 역시 다이얼이 작아지는 대신 로즈골드 소재를 사용하거나 다이아몬드를 가득 세팅해 화려함을 더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블루 다이얼의 귀환이다. 보통 시계를 고를 때 선택하는 다이얼 색은 무난한 화이트 또는 블랙이지만, 최근 몇 년간 개성 있는 시계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나면서 다이얼 색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특히 최근 1~2년 동안은 자연친화적인 그린 다이얼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시 블루 다이얼로 인기가 넘어오는 추세다. 블랑팡은 올해 클래식 워치 ‘빌레레’의 새로운 두 가지 모델을 출시하면서 모두 블루 다이얼로 세팅했다. IWC·몽블랑 역시 인기 제품인 ‘포르투기저’와 ‘1858 지오스피어’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약속이나 한 듯 블루 다이얼 버전으로 출시했다. 블루는 오래 전부터 남녀 모두에게 인기 있는 컬러 다이얼이었다. 특히 해양 시계 또는 다이버 시계에서 블루 다이얼은 전통적으로 ‘바다’를 상징해왔다.

올해의 시계들 

몽블랑 1858 지오스피어 블루. 빙하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시 블루’ 다이얼에 두 개의 돔형 회전 반구와 월드타임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했다. 브레이슬릿은 무광 티타늄과 폴리싱 처리된 스테인리스 스틸을 함께 구성했다.

브레게 클래식 7337. 달(골드 디스크)과 구름(문페이즈 인디케이터), 은하수(다이얼)를 시계 안에 담았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브랜드 전통을 따라 다이얼마다 고유번호와 비밀스러운 서명을 새겼다.

블랑팡 빌레레 컴플리트 캘린더. 올해 처음으로 40mm 레드 골드 케이스와 미드나잇 블루 다이얼이 만났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6시 방향 문페이즈와 안전 시스템을 갖춘 ‘6654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투폴드. 더블 플라잉 투르비옹이 보이는 스켈레톤 워치. 세라믹보다 2.5배, 카본보다 13% 가벼운 무기물 복합 섬유를 소재로 사용했다.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발광성을 무브먼트와 스트랩에 더했다.

브라이틀링 크로노맷 B01 42 벤틀리. 1984년 첫 출시된 크로노맷 신모델. 자동차 회사 '벤틀리'와 협업해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다이얼을 사용했다. 롤(Rouleaux) 브레이슬릿, 슈퍼 루미노바 코팅 등이 특징인 다목적 스포츠 시계.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컨트롤 캘린더. 올해 예거 르쿨트르가 새로 선보인 남성용 시계 모델. 기계식 오토매틱 무브먼트 '칼리버 866AA'를 사용해 정확성은 물론이고, 70시간 파워리저브로 편리성까지 갖췄다.

태그호이어 까레라. 브랜드 창립 16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까레라’ 실버 리미티드 에디션. 까레라는 멕시코 대륙 횡단 레이싱 경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시계로, 1964년 선보인 태그호이어 2447S를 복각한 것. 자사 무브먼트 '호이어02'를 탑재했다.

론진 하이드로콘퀘스트 부티크 에디션. 그린 브러시드 세라믹 다이얼을 장착해 심미성과 가독성을 높였다. 이중 안전 폴딩 잠금장치와 다이빙 익스텐션이 장착돼 있다. 64시간 파워리저브가 가능하다.

라도 캡틴쿡 브론즈. ‘탐험가의 시계’로 이름이 알려진 캡틴쿡이 올해는 브론즈 버전으로 출시됐다. 1962년 출시된 오리지널 모델을 더 크고 대담하게 재해석하고, 200m에서 300m로 방수 기능도 향상시켰다.

해밀턴 PSR. 고급 시계 브랜드가 내놓은 디지털 시계로 눈에 띄는 제품. 1970년 첫 출시됐던 디지털 전자 손목시계 ‘펄사’가 오랜만에 다시 출시됐다. LCD와 OLED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디스플레이가 햇빛 아래서도 뛰어난 가독성을 발휘한다.

바쉐론 콘스탄틴 에제리 문페이즈 다이아몬드 파베. ‘에제리’는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여성 라인의 시계다. 18캐럿 화이트 골드 케이스 베젤과 다이얼에 다이아몬드가 각각 292개, 510개가 세팅됐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리소 원. 1931년 출시된 ‘리베르소 레이디’를 연상시키는 신제품 . 날렵한 사각 케이스와 다이아몬드가 위아래로 세팅된 레드 와인 컬러 다이얼이 돋보인다. 다이얼과 컬러를 맞춘 스트랩도 강렬하다.

불가리 세르펜티 세두토리 뚜르비용. 브랜드의 대표 여성시계인 ‘세르펜티 세두토리’ 컬렉션의 신제품. 뱀 머리 모티브의 케이스에 맞춰 기존에 없던 가로·세로 22mm x 18mm의 작은 크기 뚜르비용 무브먼트를 개발해 넣었다.

위블로 빅뱅 원 클릭 상 블루 킹 골드 파베. 유명 타투이스트 맥심 부쉬와 협업한 시계. 균형미를 극대화시킨 다이얼 디자인이 돋보인다. 특히 케이스와 베젤에 276개의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세팅해 화려함을 강조했다.

오메가 드빌 트레저. 금빛 케이스의 옆면을 따라 우아한 곡선 형태로 38개의 다이아몬드를 장식했다. 시계 뒷면엔 오메가 특유의
꽃잎 모양 ‘허 타임’(Her Time·그녀의 시간) 패턴을 아름답게 각인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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