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유통 ‘리베이트 쌍벌제’
“주류 도매업을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한다고요?”
주류 유통 ‘중간고리’ 도매업자의 24시
주류 도매 관련 일을 하는 A(46)씨와 B(33)씨는 “업계에서 조폭을 본 적 들은 적도 없고, 우격다짐으로 술 팔다가는 쇠고랑 차는 시대”라고 입을 모았다. A씨는 14년 차, B 씨는 7년 차다. 이들은 “이 바닥은 옷깃만 봐도 누구인지 서로 다 알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본인과 회사 이름, 이동 경로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주류 관련 업체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도매는 리베이트를 제조업체로부터 받고 소매업체에 주기도 해왔던 중간고리다. A씨와 B씨의 말을 빌려 주류 도매상의 24시를 전한다. 인터뷰 답변은 A씨와 B씨의 공통된 의견이다.
# 9:30 서울 X구
B씨는 전날 오후에 수거한 공병을 수납하고 경리실에서 당일 배달 물량을 할당받았다.
- 오늘(지난 20일) 배송량이 많은 건가.
- “오늘같은 목요일이나 화요일에는 보통이다. 월·금요일이 가장 많다. 금요일에는 주말 수요를 대비하는 것이고, 월요일에는 주말에 빠진 주류를 채운다. 수요일이 가장 적다.”
- 하루 몇 곳 배송하나.
- “좀 되는 도매상은 20~25곳, 중소업체는 많아도 15곳이다. 불경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겹쳤다. 그전엔 하루 80~90짝 옮겼는데, 현재는 50~60짝 수준이다.”
주류업계에는 P박스(플라스틱 박스) 지박스(종이박스)라는 단어를 쓴다. 이들이 종종 쓰는 단어 중 ‘까대기’는 기계나 도구를 쓰지 않고 직접 등에 지고서 주류를 옮기는 일, ‘딱지’는 양주 박스의 라벨을 의미한다.
# 11:00-15:00 경기도 Y시, 서울 Z구
B씨는 P박스 세 개를 메고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갔다.
- 고되지 않나.
- “익숙해지면 괜찮다. 그래도 꺼려지는 곳은 이런 지하 업소다. 무릎이 깨질 것 같다. 지하 1층에 내려가느니 지상 3층까지 올라가는 게 낫다.”
- 주차 어려움도 있겠다.
- “스트레스다. CCTV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경찰서에 가서 읍소한다. 대부분 봐준다.”
관리직이면서도 배송에도 나선 A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다른 배송직원이었다. A씨는 직원에게 “접촉 사고요? 보험료가 너무 오르니 현금으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배송 중 술병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 “굽은 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거나 박스 고정이 허술한 게 원인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운송하는 술 3분의 1 이상은 살아남는다. 실수로 그런 사고 한번 나면 지나가는 분들이 대부분 이해해 주지만, 욕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 21:00 다시 서울 X구
퇴근 뒤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음식점에서 ‘영업’을 했다.
- 이런 식으로 영업하나.
- “그렇다. 소매점에서 술 마시면서 사장님 상대로 영업한다. 지인 소개로 많이 이뤄지기도 한다. 판촉하기도 한다.”
- 판촉이란 게 뭔가.
- “안 먹고 안 마셔도 소매점에서 카드로 긁는 거다. 비즈니스의 한 기법이다.”
- 불법 아닌가.
- “솔직히 애매하다. 개정된 고시에는 거래관계의 원활한 진행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접대비는 가능하다고 돼 있다.”
국세청은 이런 영업 전략에 대해 여신금융업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 매점을 뚫으면 기존에 거래하던 도매업체의 항의를 받나.
- “항의는 드물다. 주류 도매업은 독특하다. 같은 상품을 갖고 경쟁한다. 그래서 영업 전략에서 갈린다. 항의보다 영업 전략을 물어본다. 소매점과 거래하는 도매업체가 잘 아는 곳이면 미안해서 안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 소매점 폐업이 늘었나.
- “눈에 띌 정도다. 더러 도매업체 미수금(외상)을 안고 폐업하기도 한다. 액수가 많으면 소송이라도 거는데, 100만~150만원 정도는 소송을 걸기도 참 그렇다. 언젠가는 다시 거래 틀 수도 있고. 미수금을 안 주면 거래를 안 하겠다는 가게도 있다. 우리한테는 고객이다. 도매업체의 영업 전략이 중요하다. 소매점이 잘돼야 우리도 잘되는 것 아닌가.”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