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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30년간 팔려다녔다…윤미향, 사리사욕 챙겨 출마"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모금활동을 주도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의혹은 검찰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재주는 곰(위안부 할머니)이 넘고 돈은 사람(정의연)이 챙겼다"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는 주장을 반복하기도 했다. 또 "위안부 문제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지난 19일 자신을 찾아온 윤 당선인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점도 거듭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원고 없이 발언했다. 아래 내용은 속기로 작성됐으며, 부정확한 부분은 괄호 등으로 처리했다.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전문

(지난 7일) 기자회견 한 이후 (정의연에서) 생각지도 못한 게 많이 나왔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건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것은 정신대대책협의회가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는 많이 다르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르다.

잠깐 제가 갔던 곳을 말하겠다. 우리 나이로 16살, 만으로 14살이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다. 그때 성(姓)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다. 그래서 성을 야스하라라고 갈았다. 학교는 일본학교 3~4학년 다녔다. 가타카나를 알았다. 가미가제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 줘서 대화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다.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에 끌려가서 당한 건 말로는 못한다. 쭉 30년 동안 해오면서 (울먹) 미국으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다.

"따라다니며 모금…모르고 30년 했다"

제가 92년도 6월 25일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 간사였다. 당시 25일 (신고)했는데 29일 모임이 있다고 오라 해서 갔다. 어느 교회였다. 교회 갔는데 그날따라 일본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얼마인가 줬다고 하면서 100만원씩 나눠줬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모금하는 걸 저는 봤다. 왜 모금하는지 몰랐다. 따라다니면서, 모금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다.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 그 돈을 받아오더라. 저는 그게 왜 그러는 줄 몰랐다. 그런가 보다 했다. 부끄러웠다. 선수들이 농구를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데, 앉아서 농구 끝나면 돈을 받아 나왔다.

배가 고프다고 맛있는 거 사달라고 했더니 돈 없다 했다. 그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어디 가도 교회 가도 돈을 주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도 모르고 30년을 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하는데, 이걸 빵으로 비유해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을 밀가루 반죽해서 빚어놓고, 속에는 맛있고 귀한 것을 넣어야 한다. 그러면 그 속은 위안부로 넣은 거다.

30년을 해도 그걸 몰랐다. 어제저녁에 가만 생각하니 이것은 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생명을 걸고 끌려갔던 위안부를 왜 쟤들이, 정신대 할머니와 합쳐져서 쭉 이용당했는지.

"학생들 돼지저금통까지 챙겨"

저는 당연한 줄 알았다. 어제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사람이 뭔지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지. 정신대와 위안부 섞어서 이건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소리 아니냐.

이걸 30년 동안 하면서 사죄·배상 요구하고 학생들까지 고생시켰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 나온 것까지 챙겼다. 어제 잠 못 잤다. 왜 정신대대책협의회는 정신대 문제만 하지, 자기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만두의 고명으로 사용했나. 이걸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다.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고 말도 못했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그들이 일본의 사죄·배상을 막았다. 위안부와 정신대와 어떻게 같나. 위안부는 생명을 걸고 거기에 가서 죽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30년을 이용해 먹었다.

저는 결심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보냐.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해당치도 않는데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느냐. 안 한 이유를 알았다. 이것 또한 뭐냐. 사진 한 장만 해도 걸고 했는데 이것은 위안부 할머니들 팔아먹었다. 팔았다. 내가 왜 팔려야 되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투명성 문제 등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새마을청년연합 관계자가 소녀상에 윤미향 구속 촉구 팻말을 놓기 위해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투명성 문제 등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새마을청년연합 관계자가 소녀상에 윤미향 구속 촉구 팻말을 놓기 위해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증언도 받은 적 없다"

이래도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이걸 밝혀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한 번도 할머니 앉혀서 증언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어디 가서 밥 먹는데도 그걸로 책을 냈다. 93년도부터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다. 그래도 몰랐다. 그런 챙긴 줄 모르고 당연하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다니면서 증언도 하고.

정신대대책협의회 박물관 짓는다고 갔다. 가서 15만원 받고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증언을 했다. 대표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창피했다. 그러면 대표 소리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올해) 3월 30일 전화를 했다. ‘미향씨,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한번 와라. 안 그러면 기자회견 하련다’ 윤미향이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허락해서 제가 5월 7일 기자회견 한 것이다.

"윤미향, 용서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으로 나올 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문을 열어달라 해서 열어주니 윤미향이 들어오는 거다. 제가 놀라서넘어갈 뻔했다.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을 하는데 용서? 뭐를 용서를 하나? 뭐를 갖고 와야 용서를 하지.

(기사 등) 보니까 엄청나더라. 그것은 검찰에서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 기자회견 할 테니 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 소위 교수라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다. 차에 내려서 뭣이 어떻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윤미향한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윤미향과 30년을 지내왔다. 한 번 안아달라 하더라. 그래서 저는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줬다. 저도 인간이다. 사람이다. 30년을 같이했으니, 내가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안고 울었는데, 이걸로 (용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자님들. 좀 부탁드린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라. 그걸 갖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하다. 그게 아니다.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도 책임 돌아가는 일이다. 명백하게 하려 했는데.

"사리사욕 챙겨서 국회의원 나가"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으면 했다. 30년 같이 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맘대로 내팽개쳤다. 저만 그런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온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 챙겨서 맘대로 국회의원도 나갔다. 저는 모른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자기 맘대로 하니까 제가 뭐를 용서하나.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그 사람이 받아먹었다. 30년 동안 재주를 넘었다. 그 돈은 딴 사람이 받았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용서를 바라나.

"데모 방식 바꿔야…끝내는 건 아냐"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니다. 김학순 할머니 시작한 일 내가 바꾼다 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다. 학생들이 결국은 그 나라 주인 아닌가. 학생들이 사죄와 배상을 왜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본 아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한국이 거짓말한다고 한다. 그건 몰라서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건 일본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왜 일본에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나? 일본은 왜 안 하냐? 한국과 일본이 왕래하고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배워야 한다.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거밖에 할 수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해먹고 묘지에서 가짜 눈물"

대구에 역사관이 있다. 이것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다.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이를 밀고 있다. 윤미향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더라. 그러면 나비기금 등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돈인가. 어느 날 미국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했다. 모금을 600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와서 '할머니는 정대협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하더라.

제가 간다고 했나? 모금을 왜 하나? 그뿐 아니다. 많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했다. 엄청나게 나오더라. 이것도 부정 아닌가.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이다. 나보다 두 살 위다. 한쪽 눈 조금 보이는 할머니를 끌고 다녔다. 미국으로 어디로. 할머니 있을 때 잘 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이용해먹고 그래놓고 뻔뻔하게 묘지 가서눈물 흘리더라. 그거는 가짜의 눈물이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다 검찰에서 밝힐 거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 이용해서 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 한다. 이것도 벌을 받아야 한다.

"일본, 천년만년 가도 사죄해야"

우리 학생들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학생들 모아서 서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 배상을 해야 한다. 일본은 천년만년 가도 반드시 (사죄) 해야 한다. 양국이 친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역사 공부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 억울한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를 해결 해줄 사람은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내가 당해야 하나. 오래 사는 게 죄인가. 끝까지 당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다.

"죄는 지은 대로, 공은 닦은 대로 간다"

제가 왜 '성노예'입니까. (윤미향이) 듣기도 더러운 성노예라고 하더라. 왜 그러느냐 했더니 '미국이 겁내라고' 하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나를) 팔아서 뭐를 했나.

안성도 보니까 쉼터 지어놓고 윤미향 대표 아버님이 사셨다 하더라. 이런 거 나왔는데 검찰에서 다 밝힐 거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도 큰소리하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 이 죄를 물어야 한다. 이후에 두 번 다시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 달라. 감사합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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