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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위기 아베,긴급사태 해제하며 "일본의 힘 보여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쿄도와 주변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현, 사이타마(埼玉)현, 홋카이도(北海道) 등 5개 광역단체에 계속 발령중이던 긴급사태선언을 25일 해제했다.

지난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7개 광역단체 가운데 39개 지역에서 코로나 긴급사태선언을 해제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5일 일본 전역의 긴급사태를 전면 해제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7개 광역단체 가운데 39개 지역에서 코로나 긴급사태선언을 해제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5일 일본 전역의 긴급사태를 전면 해제했다. [AP=연합뉴스]

이로써 지난달 7일부터 순차적으로 전국에 발령됐던 긴급사태선언은 완전히 해제됐다.

마이니치 이어 아사히서도 지지율 29% #경제리더십 회복위해 도쿄 등 전면 해제 #기준 충족 안된 홋카이도,가나가와 포함 #기자회견서 "日대응이 세계의 모범"강조 #"지지율 일희일비안해, 사명 다 할 것"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날 저녁 기자회견에서 "신규 확진자가 매일 50명 이하, 입원환자가 2000명 이하로 줄었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엄격한 해제 기준을 전국적으로 충족시켰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은 다른 나라들처럼 도시봉쇄 등 벌칙이 동반되는 강제조치를 취할 수 없음에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불과 1개월반에 코로나를 거의 수습했다"며 "일본 모델의 힘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의 감염증 대응은 전세계의 탁월한 모범이 됐다'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전하며 "일본은 인구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G7(주요7개국)중 압도적으로 적다. 전세계로부터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긴급사태선언의 기한은 이달 말까지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최근 일주일간 신규 확진자의 수가 인구 10만명당 0.5명 이하’ 등의 기준을 만들어 해제를 앞당겼다.

사실 25일 해제가 결정된 5개 광역단체 가운데 가나가와현(24일까지 0.70)과 홋카이도(0.72)의 경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며 해제를 밀어붙였다.

아베 총리는 회견에서 "확진자 대부분의 감염루트가 추적가능하다는 점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도쿄역에서 마스크를 쓴 채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들. [EPA=연합뉴스]

도쿄역에서 마스크를 쓴 채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들. [EPA=연합뉴스]

긴급사태 해제에 따라 경제·사회 활동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당장 도쿄도는 26일부터 음식점의 영업시간을 현재 오후 8시까지에서 오후 10시까지로 연장하고, 박물관과 도서관 등을 개방한다. 프로야구도 6월 19일 무관객 경기로 시작된다.

일본 정부는 향후 3주마다 감염 상황을 평가해 운동경기와 콘서트 등 각종 이벤트의 개최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집단감염의 발생 가능성이 남아있는 노래방이나 스포츠클럽 등의 시설도 원칙적으로 6월 1일부터는 영업을 허용하는 방향이어서 논란도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긴급사태 해제를 앞당기고 경제활동 재개를 서두르는 건 “아베노믹스로 일으켜 세운 일본 경제를 더이상 위축시켜선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최근 20%대로 곤두박질한 내각 지지율의 반등을 꾀하려는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 신문이 5월 23~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이후 최저치인 29%를 기록했다. 지난 16~17일 조사 때의 33%에서 4%포인트가 더 하락했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포인트 상승한 52%에 달했다.

앞서 지난 23일 실시된 마이니치 조사에서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27%에 불과했다.

일본의 주간지 슈칸분슌은 20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아베 총리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 검토하고 있는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이 지난 1일과 13일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내기마작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슈칸분슌의 관련 보도. 서승욱 특파원

일본의 주간지 슈칸분슌은 20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아베 총리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 검토하고 있는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이 지난 1일과 13일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내기마작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슈칸분슌의 관련 보도. 서승욱 특파원

아베 총리가 ‘탈법 정년 연장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차기 검찰총장으로 공을 들였던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내기 마작’ 낙마, 코로나19 대응 실패, ‘벚꽃보는 모임’ 의혹과 이로 인한 도덕성 추락, 임기 말 레임덕 현상까지 겹쳐있는 복합적인 위기다.

외출과 휴업 자제로 경제적 활동이 위축될수록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로선 긴급사태선언을 빨리 해제하고, 코로나19로 주저앉은 일본 경제를 살리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회견에서 '구로카와 검사장 사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질문에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코로나를 극복하고 경제·고용을 지켜내는 총리의 책무를 확실하게 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자유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손을 잡고 감염대책을 리드해 나가겠다.(백신 개발 등을 위한)국제적인 협력체계를 제안하겠다","국내총생산의 40%에 달하는 사업규모 200조엔의 대책으로 경제를 지켜내겠다"며 자신의 경제·외교리더십을 강조했다.

지지율 하락에 대해선 "일희일비하지 않고, (총리로서의)사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자회견 모습이 지난 14일 도쿄 신주쿠의 한 건물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자회견 모습이 지난 14일 도쿄 신주쿠의 한 건물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경제와 외교 리더십을 무기로 정치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계산이 적중할지는 미지수다.

마이니치 신문의 야마다 다카오(山田孝男) 특별편집위원은 자민당 중견 의원에게서 들은
험악한 지역 분위기를 25일자 칼럼에서 소개했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던) 2009년의 여론은 ‘어쨌든 자민당을 교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여론은 ‘어쨌든 아베 총리를, 아베 노선을 교체하고 싶다'는 것이다."

차가운 바닥 민심을 되돌리기가 아베 총리의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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