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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해찬 “노무현재단 향한 검은 그림자” 왜 말 꺼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서 주목받은 참석자 중 한 명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였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모인 참배객들은 그가 최근 불거진 ‘한명숙 사건 재조사론’에 어떤 말을 할지 관심이 컸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이날 공개 발언 없이 자리를 떴다. 측근(김현 전 의원)을 통해 “결백하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추가 보도를 보고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내겠다”는 전언만 흘러나왔다.

진중권 “초치는 것 보니 뭔가 터질듯” #유시민은 작년 검찰사찰 의혹 제기 #민주당 지도부는 한명숙 구하기 #당내 “집권 여당의 자세 아니다”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한 전 총리는 ‘신중 모드’라고 한다. 국무총리 시절의 한 참모는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용이 어디까지 갈지 차분하게 두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한 전 총리 이슈를 키운 건 민주당 지도부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공개회의에서 “법무부·검찰·법원은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연일(21, 2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심은 법률적으로 어렵지만 사법농단·강압수사 여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범위”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2015년 당 대표 시절 “정말로 정치적으로 억울한 사건”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서 당 차원의 ‘구명운동’이 전개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재조사 무용론’이 고개를 들면서 김 원내대표가 머쓱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24일 “한 전 총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친노(친노무현)들의 주장일 뿐인데, 한 전 총리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당이 더는 대신해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 1심 재판에 제출된 ‘한만호 비망록’은 현행법상 재심 사유가 아닌데도 당 지도부가 너무 앞서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 출신 민주당 의원은 “우린 시민단체가 아니고 집권여당이다. 법과 제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심 사유가 되는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여당의 자세”라고 꼬집었다.

미래통합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177석을 무기로 사법적 영역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접근해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판결문에 수표·영수증 등 물증이 분명히 있는데 한만호 진술만 조작됐다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9인)는 ‘돈이 오간 사실’은 인정했고,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린 것은 정치자금 수수 여부가 아닌 규모(3억원 또는 9억원) 부분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해찬 대표가 지난 23일 추도사에서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색하고 미리 초를 치는 것을 보니 노무현 재단과 관련해 곧 뭔가 터져나올 듯하다. 유시민은 지난해부터 그 얘기를 해왔고, 이번에는 이해찬까지 그 얘기를 한다”며 “뭘까? 변죽 그만 울리고 빨리 개봉하라. 우리도 좀 알자”고 적었다. 앞서 유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검찰이 재단의 은행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며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했으나 검찰은 “악의적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선 총선 전 이 대표가 “가짜뉴스가 엄청나게 돌고 공작정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총선 직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퇴 건이 불거져서다. 성추행 자체는 총선 전 발생했으나 공개·사퇴는 총선 후 있었다. 야권에선 “여권이 은폐·지연 발표했다”고 보고 있다.

심새롬·김기정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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