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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보안법 제정 발표에 홍콩 트위터·VPN 다운로드 급증

중앙일보

입력

중국이 홍콩 의회 대신 '국가보안법'을 직접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홍콩 민주화 인사들이 “일국양제의 종말”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재연 분위기 고조

트위터에서는 “홍콩을 도와달라”는 요청 글이 올라오고 있고, 홍콩의 휴대전화 앱스토어에서는 해외 인터넷 접속 제한을 우회할 수 있는 VPN(가상사설망) 앱 다운로드 건수가 급증했다. 홍콩 범민주 진영은 시민들에게 오는 6월 4일 열리는 ‘톈안먼(天安門) 시위 기념 집회’ 참여를 촉구하는 등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일어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홍콩 민주당 의원들이 홍콩 주재 중국 연락사무소 앞에서 중국의 국가보안법 직접 제정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 홍콩 민주당 의원들이 홍콩 주재 중국 연락사무소 앞에서 중국의 국가보안법 직접 제정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의 사망”

22일(현지시간) 영국 BBC, 홍콩자유언론(HKFP), AFP 등은 중국의 국가보안법 강행 소식과 관련해 홍콩 민주화 인사들의 목소리를 연이어 전했다.

AFP에 따르면 홍콩 범민주진영 의원들은 21일 밤 소식이 전해지자 입법회(의회) 밖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이 직접 국가보안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홍콩의 사망’을 의미한다”고 즉각 반발했다.

지난해 8월 마스크를 쓴 채 도심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위대. [로이터=연합]

지난해 8월 마스크를 쓴 채 도심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위대. [로이터=연합]

이날 공민당 대표로 나선 타니아 찬 의원은 “홍콩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라며 “중국의 국가보안법 제정은 홍콩의 기본적인 자유를 박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시스템을 강요하는 엄청난 퇴보”라며 “중국은 홍콩의 자유와 권리를 뺏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우치와이 주석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국가보안법 직접 추진은 ‘일국양제의 종말’과 같다”며 “이러한 방식의 홍콩 통치는 홍콩인들의 거센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2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남쪽 거리에서 준군사경찰이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 지도자의 포스터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남쪽 거리에서 준군사경찰이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 지도자의 포스터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은 트위터를 통해 비판 여론을 이끌고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윙은 트위터에 7~8개의 글을 연달아 올리며 “중국의 시도는 홍콩인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무력과 공포로 침묵시키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홍콩인들이)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복할 순 없다”며 단합을 촉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웡과 민주화 운동가들은 오는 28일 밤 거리 시위를 계획하고있다. 웡은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유럽 “중국, 홍콩 불안정하게 만들 것”

중국을 향한 비판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터져 나왔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은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와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서 중국의 국가보안법 직접 제정에 ‘터무니없다’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튼 총독은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홍콩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이 이 사항을 공유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변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이 2019년 11월 홍콩 입법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이 2019년 11월 홍콩 입법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도 중국의 이번 행보가 홍콩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홍콩에 대한 국가보안법을 강행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도 “홍콩 주민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은 중국의 법 제정은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측도 “EU는 일국양제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홍콩의 민주적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는 것만이 일국양제의 가치를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 검열 미리 대비하자”

홍콩 국민 사이에서는 중국의 인터넷 감시와 검열에 미리 대비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소식이 전해진 21일 저녁 6시 이후 홍콩에서 VPN 앱 다운로드 건수가 급증했다.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10개 앱 중 7개가 VPN 관련 앱인 것으로 집계됐다.

VPN은 해외 인터넷 접속 제한을 우회할 수 ‘가상사설망’이다. 휴대전화에 VPN이 깔려있으면 인터넷이 차단돼도 해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동안 홍콩에선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 이용에 대한 제약이 느슨한 편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경우 해외 SNS 이용이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지난해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검열과 감시를 위해 인터넷 접속을 제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시위대는 VPN을 이용해 해외에 시위 소식을 알렸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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