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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소녀상 지키는 학생들에 밥값 건네며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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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수요집회에서 더운 날씨 소녀상을 지키던 학생들에게 밥값을 건넸던 일화가 소개됐다. 앞서 이 할머니는 “학생들이 용돈으로 준 수요집회 후원금이 할머니들에게 쓰이지 않았다”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부정 사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정의연 후원금 부정 사용 의혹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 "학생 용돈을…마음아파" #할머니 측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올려 #할머니, 수요집회서 학생들에게 밥값 10만원 건네 #

이 할머니의 측근으로 알려진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18일 “이용수 할머니와 추억 두 번째”라며 “(이용수 할머니는) 많은 분께 할머니로, 어머님으로 더없이 따뜻한 분”이라고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A씨는 “미국에서 마이크 혼다 의원님을 비롯한 샌프란시스코분들이 오셨을 때”라며 “할머니는 남산 소녀상 기림제와 수요집회 참석 후 이동 중 차를 돌리라고 하고는 다시 소녀상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정확한 날짜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8월로 추정된다. 당시 마이크 혼다 의원이 한국을 방문했고, 남산에 실물 크기의 위안부 소녀상이 공개됐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8월 14일 서울 남산 서울교육청 옛 조선 신궁터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에 참가했다.

A씨의 글에 따르면 할머니가 다시 현장에 가니 다들 돌아가고 어린 학생들이 더운 날 길바닥에서 비닐로 비를 피할 자리를 만든 뒤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앉아 있었다.

학생들을 본 할머니는 A씨에게 “애들에게 밥값 좀 주세요”라며 10만원을 줬다. A씨는 할머니의 돈을 받지 않고 “제 돈으로 드리겠다”고 말하고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돈을 꺼내주며 “식사 한 끼 하라”고 말했지만, 학생들은 극구 사양했다.

학생들은 “저기 모금함에 좀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고, A씨는 재차 “있다가 저녁에 밥은 먹어야죠. 제가 꼭 식사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니, 받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완강하게 “아니요. 개인적으로 돈을 받으면 안 된다”며 사양했다.

A씨는 해당 글에서 “결국 모금함에 (학생들에게 주려던 돈을) 넣고 오게 됐다”며 “어머님(할머니)은 아이들 한 명 한 명 볼을 쓰다듬으며 ‘니들이 이 뭔 고생이고’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괜찮아요”라고 답했고, A씨는 “그 말에 서로 눈물 글썽이는데 찡했다”고 글에 덧붙였다.

A씨는 글 말미에 “(할머니가 학생들의) 활동비가 적은 걸 아셨나 보다”며 “그래서 아이들 밥 한 끼라도 사주고 싶어서 일부러 남들 다 돌아가고 학생들만 있을 때 다시 찾아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및 서울 기림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해 8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산 회현자락 옛 조선신궁터 앞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기림비 제막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및 서울 기림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해 8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산 회현자락 옛 조선신궁터 앞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기림비 제막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연의 후원금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며 “앞으로 수요집회에 불참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제가 1992년 6월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꼭 수요일마다 데모(집회)를 갔다. (집회에 가면) 초등학생들, 중학생들이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서 우리에게 줬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그런데 그걸 다 어디다 썼나. 식사하는 데 썼나? 아니다. 얼마 동안은 그렇게 썼지만, 주관 단체에서 썼다. 이걸 할머니들한테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의연의 회계 부정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지난 11일 한 시민단체가 정의연의 직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을 횡령·사기 혐의로 고발한 이후 관련 고발이 잇따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는 20일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정의연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회계 및 각종 사업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9일 오후 늦게 할머니를 찾아 사죄했지만, 할머니는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이 할머니를 만나는 자리에 있었다는 A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할머니가 윤미향을 안아준 건 맞지만, 용서한 건 아니다”고 했다. A씨는 그동안 할머니의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 광주 망월동 묘역 등을 동행해 온 인물이다. 정의연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도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간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15일에는 ‘정의연 비판하면 친일적폐? 프레임 씌우기 전에 장부정리 똑바로 하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평소 A씨를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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