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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함바 게이트’…총선 개입에 수사기밀 유출 의혹

중앙일보

입력

2011년 촉발된 ‘함바(건설현장 간이식당) 게이트’ 여파가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함바 게이트란 건설업자 유상봉(74)씨가 함바 운영권 수주를 위해 정관계 고위층에 전방위 로비를 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전직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수갑을 찼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 조직에 치명타를 입히기도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 총장도 나왔다. 유씨에겐 ‘함바왕’이란 별명이 붙었다.

경찰청. 뉴스1

경찰청. 뉴스1

옥중에선 “돈 돌려달라” 편지

그는 2012년 징역 1년 6월형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사 범죄를 저질러 감옥을 드나들었다. 2015년에는 유씨가 옥중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협박성 편지 119통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부분이 “줬던 돈을 돌려달라”“함바 수주를 하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엔 ‘경찰 2인자’ 진정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자신도 처벌(뇌물공여)받을 것을 각오하고 당시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 간부 3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진정·고소했다. “제2의 함바 게이트가 터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배경이다. 그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선 “그동안 공직자들에게 전달한 로비 금액이 500억원 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원 전 청장의 경우 무고 고소장이 접수됐고, 경찰은 기소의견을 달아 유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2011년 서울 한 아파트 건설현장 함바집.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앙포토

2011년 서울 한 아파트 건설현장 함바집.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앙포토

올해는 총선 개입 의혹

게이트 후폭풍이 다시 몰아친 건 최근 들어서다. 이달 17일 유씨는 징역형을 마치고 출소하는 동시에 경찰 수갑을 차야 했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 윤상현 당시 무소속(인천 동구·미추홀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자인 안상수 미래통합당 후보를 고소(뇌물수수)하고 관련 보도가 나도록 한 혐의 때문이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유씨 아들, 유씨 측근 박모씨, 윤 후보의 조모 보좌관 등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결과 윤 후보는 당선(4만 6493표)됐고, 고소를 당한 안 후보는 1만 7843표를 얻는 데 그쳤다.

수사를 맡은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4일 유씨와 아들, 유씨 측근 박씨, 조 보좌관 등 6명을 압수수색했다. 18일에는 유씨와 그의 아들을 불러 조사했다. 20일에는 조 보좌관을 소환했다.

수사 대상자들은 “경찰의 수사 의도가 불순하다”고 반발했다. 유씨와 아들, 유씨 측근 박씨는 “유씨가 많은 경찰 고위 간부를 감옥에 보내는 등 괴롭혔다는 이유로 경찰이 표적 수사를 하는 것 같다”는 입장이다. 윤 당선인 측은 “야권 인사에 대한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20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20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압수수색 직전 수사기밀 유출됐나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밀이 수차례에 걸쳐 유씨 일당에게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 또 다른 파문을 낳고 있다. 유씨 아들과 유씨 측근 박씨가 나눈 전화통화 녹취에 따르면 유씨 아들은 압수수색을 당하기 사흘 전부터 “윤 당선인과 유씨의 유착 관계를 내사하고 있다”“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됐다”는 내용 등의 기밀을 받았고, 조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기밀 전달자로는 현직 경찰과 특정 매체 기자 등이 지목됐다. 경찰 내 유씨 일당과 유착된 세력이 범죄 증거를 없애도록 기밀을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18일 경찰은 체포된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석방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사전에 수사기밀이 유출된 탓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5월 20일자 중앙일보 『[단독] ‘함바왕’에 수사기밀 흘렸나···“경찰이 전화” 녹취 입수』〉

법조계에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서둘러 감찰을 벌여 유출 사실이 확인되면 책임자를 엄중히 징계하고 기밀 유출에 대한 수사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경찰에서 수사기밀을 흘린 게 사실이라면 관련자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박일규 조운법무법인 변호사는 “경찰이 압수수색에 대비하도록 할 목적으로 기밀을 유출했다면 증거인멸 교사나 방조 혐의까지 적용될 여지가 있다”며 “기밀을 전달한 기자도 증거인멸을 도운 목적이 증명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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