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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나는 민원인 1명만 들어와도 폐쇄" 경찰 업무 공백에 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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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받던 피의자가 의심 증상을 보여 폐쇄한 한 경찰서의 사무실. 연합뉴스

조사 받던 피의자가 의심 증상을 보여 폐쇄한 한 경찰서의 사무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경찰 수사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7시쯤 친구의 원룸에 있던 고등학생 A군(16)은 또래 친구 B군에게 폭행을 당했다. B군은 A군을 의자에 앉힌 뒤 청테이프로 묶고 얼굴과 복부를 때렸다. 감금·폭행은 새벽 6시까지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B군이 A군을 때린 건 며칠 전 A군이 맞을 것이 두려워 파출소로 도망쳤던 일 때문이다.

A군은 사건 발생 직전에도 경찰서를 찾았다. 이날 오후 4시 어머니와 함께 학교폭력 상담을 위해 관악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서 로비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경찰서가 코로나 19 방역 작업으로 폐쇄한 상태여서다. 관악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변호사를 대동한 피의자가 고열증세를 보여 경찰서 전체가 3시간 동안 폐쇄됐다. 관악서 관계자는 "경찰관도 사무실에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었다"며 "대부분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A군과 어머니에게는 '급한 것이 아니면 다음에 오시라'고 양해를 구한 뒤 돌려보냈다"고 덧붙였다.

"한 명만 열나도 사무실 폐쇄"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코로나 19 유행 이후 경찰서 일시 폐쇄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9일에는 강남경찰서 형사과가 약 10시간 동안 폐쇄됐다. 이날 오전 10시쯤 폭행 혐의로 유치장에 감금돼있던 피의자 체온이 37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그가 지나간 복도에 있는 모든 형사과 사무실 출입이 통제됐다.

지난 2월 17시간 동안 폐쇄한 뒤 문을 연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 연합뉴스

지난 2월 17시간 동안 폐쇄한 뒤 문을 연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 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는 확진 판정을 받은 남성이 야간에 다녀가 15시간 동안 해당 부서가 있는 건물을 폐쇄했다. 지난달엔 광주 북부경찰서에 현행범으로 체포한 절도범이 코로나 19 의심 증상을 보여 지구대와 경찰서 형사과가 7시간 동안 업무를 하지 못했다. 'n번방' 사건 주요 피의자 조주빈 역시 지난 3월 코로나 증상을 보여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가 일시 폐쇄돼 수사가 지연됐다.

사무실 폐쇄를 경험한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오전부터 밤까지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피의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열이 발생해 사무실 폐쇄·직원 격리 등 조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업무 차질 최소화하겠다"

일선 경찰관들은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서 일시폐쇄뿐 아니라 비대면 조사 등 지켜야 할 수사 수칙이 늘어나면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미 수사를 마쳤어야 하는 연초 고소·고발 건이 아직 진행 중인 경우가 있다"며 "특히 마스크 사기수사를 하는 지능팀은 업무가 많이 밀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마스크를 쓰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 뉴스1

마스크를 쓰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 뉴스1

서울지방경찰청 코로나 19 대응팀 관계자는 "경찰은 보건당국과 내부 전담팀이 배포한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인 위기상황이라 방역을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며 "경찰 업무와 관련해서는 직원 업무를 조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경찰은 코로나 19 대응에 '경계 강화' 태세를 이어가고 있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아직 '심각' 단계인 만큼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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