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들 사망날 5억 빼간 어머니…국민 판단은 만장일치 '유죄'

중앙일보

입력

아들이 사망한 당일 도장과 서류를 위조해 아들 명의 통장에서 5억여원을 빼간 어머니 A(82)씨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국민 배심원의 판단도 유죄였다. 이 사건은 본지 보도(5월 15일자 아들 사망 8시간 뒤, 은행 달려간 모녀…5억 인출사기 전말)로 처음 알려졌다.

관련기사

첫 증인 나온 전 며느리

사건은 19일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미경)가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17시간 넘게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사망한 아들 김모씨의 전 부인 B(41)씨가 첫 증인으로 출석했다. B씨는A씨 등을 고소한 인물이다. 5억여원 인출 사건의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김씨 사망 당시 계좌에 있던 돈은 원칙대로라면 그의 초등학생 딸에게 상속될 재산이라서다.

국민참여재판. 기사와는 관련 없음. 중앙포토

국민참여재판. 기사와는 관련 없음. 중앙포토

B씨에 대한 검사와 A씨 측의 신문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아들 사망 8시간 뒤인 2018년 8월 8일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은행 직원을 속여 5억여원을 빼갔다. 이 돈은 모두 A씨의 딸이자 사망한 김씨의 누나(52) 계좌로 이체됐다. A씨와 은행에도 함께 갔던 김씨의 누나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집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 이혼"

B씨는 검사 신문에 답변하는 도중 사망한 김씨와의 이혼 경위를 밝혔다. 그는 “김씨가 갑자기 특별한 이유 없이 집을 나갔다”며 “집에 돌아오라고 사정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그렇게 지낼 수도 없고 혹시 이혼하자고 하면 집에 돌아올까 하는 마음에 이혼소송을 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2017년 12월 집을 나갔고, 당시 딸의 나이는 8세였다.

B씨는 김씨와 2018년 6월 11일 조정을 통해 이혼했다. 김씨는 이혼 조정 당시 법원에 나오지 못했다. 같은 달 5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B씨는 “그때 당시 전혀 알지 못했다”며 “김씨의 변호사가 법원에서 ‘(김씨가)마음이 괴로워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1달여 후 사망신고…"세금 딸에게"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아파트 매매로 인한 양도소득세는 법적 상속인인 초등학생 딸에게 부과됐다. B씨는 “상속으로 간주해 딸에게 세금이 부과됐고, 양도소득세를 A씨에게 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수원고검은 기소유예를 받은 A씨의 딸에 대해 재수사를 하고 있다.

수원지법. 연합뉴스

수원지법. 연합뉴스

배심원 전원 '유죄다'…"윤리 벗어나"

A씨 변호사는 김씨가 사망하기 전 ‘누나에게 5억여원을 빌렸다’고 기재하는 문서까지 법정에서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배심원과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17시간 동안 양측의 주장을 들은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A씨가 받는 3개 혐의(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6명은 실형을, 1명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배심원 다수가 1년 6개월~2년 6개월의 실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한 아들의 재산을 관리했다고 해도 사망 사실을 숨기고 예금을 인출한 것은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윤리, 사회통념에 비춰 허용되지 않는다”면서도 “A씨가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보긴 어렵고, 고령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