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남편에 감염된 주부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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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 앞에 몸을 던져버릴까 생각했던 게 수십번입니다. 철없는 아들만 없었다면…. "

결혼 12년, 자그마한 키에 어딜 봐도 평범한 38세 가정주부 鄭모(서울 거주) 씨. 하지만 鄭씨는 ´에이즈 감염´ 이란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다.

鄭씨에게 있어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은 지난해 5월 어느 날. 남편 金모(40.사업) 씨는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저녁 먹고 한강 둔치로 나오라" 고 아내를 불러냈다.

의아해 하는 鄭씨에게 남편은 말도 없이 두 시간 넘게 줄담배만 피워대다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 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토해냈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진 鄭씨에게 남편은 "지방출장 갔다가 몇번 부정한 관계를 맺은 게 원인인 것 같다" 고 힘없이 되뇌었다.

학창 시절 만나 15년을 함께 지낸 자상했던 남편의 얼굴이 ´악마´ 처럼 보였다. 다음날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 그녀도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그후 1년여, "발이 허공에 둥둥 떠 다니는 것 같았다" 는 그의 표현대로 좌절과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내가 왜…" 라는 생각에 몇번이나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야만 했던 가정, 제일 괴로웠던 건 철없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속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鄭씨는 " ´엄마 어디가 아파서 약을 먹고 자꾸 토해…´ 라는 아들의 말이 항상 비수가 돼 꽂힌다" 고 말한다.

처음엔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남편은 이미 용서했다.

"남편 또한 일그러진 우리 성 문화의 희생자" 라는 생각에서였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진 鄭씨는 최근 조그마한 재산이라도 남기기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든 상태다.

이젠 일반인들이 ´에이즈는 나와 무관하다´ 고 생각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말하는 鄭씨.

"다시는 나와 같이 불행한 주부가 나와선 안된다" 는 게 鄭씨의 말이다.

또 "에이즈 감염자가 범죄인처럼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는 것이 鄭씨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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