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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부활' '종신독재' 욕망 푸틴, 코로나 폭풍에서 정치적으로 생존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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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온 폭풍 속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너지 차르’ ‘푸틴 대제’로 불리며 국내외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푸틴 대통령이 집권 20년 만에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자국 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과 이로 인한 봉쇄령에 따른 경제 마비, 그리고 저유가로 인한 외화 수입 감소라는 ‘삼각파도’가 겹치면서다.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승기념일(VE)인 지난 9일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의 추모 시설 앞에서 옛 소련 군복을 입은 여군들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75주년 전승기념일 표식이 찍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날 공식행사는 연기됐으며,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추모행사만 열렸다. 타스=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승기념일(VE)인 지난 9일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의 추모 시설 앞에서 옛 소련 군복을 입은 여군들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75주년 전승기념일 표식이 찍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날 공식행사는 연기됐으며,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추모행사만 열렸다. 타스=연합뉴스

BBC방송은 푸틴 대통령이 1991년 12월 소련이 무너지면서 러시아 국민이 모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글로벌 수퍼파워로서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푸틴은 2024년까지 26조 루블(약 430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러시아를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해왔다. 코로나와 저유가는 옛소련 같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푸틴의 이런 야심을 무너뜨릴 것인가.

430조 투입해 수퍼파워 부활 추진 #현실은 코로나·저유가로 비상사태 #집권 20년, 전승75년 행사 취소해 #89% 고공행진 지지율, 59% 추락 #장기집권 위한 국민투표 일시중지 #세계 3위 24만 확진자 통제 불능 #측근들 확진…교외에 자가격리 #우랄 유가 반토막, 루블화값 폭락 #푸틴 생존술, 세계·한반도에 영향

I지난 11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교외의 관저에서 전국의 사관학교와 대학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9일의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원격 연설을 하던 중 특유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푸틴은 코로나와 저유가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I지난 11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교외의 관저에서 전국의 사관학교와 대학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9일의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원격 연설을 하던 중 특유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푸틴은 코로나와 저유가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7일 집권 20년, 9일 전승 75주년 ‘썰렁’  

사실 푸틴은 지금 ‘수퍼파워 지위의 회복’을 외칠 처지가 아니다. 푸틴은 지난 5월 7일의 집권 20주년과 9일로 75주년을 맞은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승기념일(VE·서구권은 8일)을 조용히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집권 20주년은 푸틴의 정치 이력에서 중요한 날이며, 전승 75주년은 국민이 소련·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국가 정체성을 다지고 애국심을 고양하는 날이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주민 이동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푸틴은 국민에게 이날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창가에서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라고 지시했다. 공식 행사는 연기됐다.
지난해만 해도 5월 9일이면 모스크바 한복판 붉은 광장에선 각종 무기와 군인으로 가득한 열병식이 성대하게 열리고, 국민은 전쟁에서 희생되거나 참전한 가족·친지의 사진을 들고 전승 기념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올해는 공군기들의 공중 열병으로 전승기념 행사를 대신했다. 러시아 국민은 이동금지령 속에서 풀죽은 전승기념일을 맞아야 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1일 모스크바 교외의 관저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전국의 사관학교와 대학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고 9일의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원격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1일 모스크바 교외의 관저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전국의 사관학교와 대학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고 9일의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원격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때 89% 푸틴 지지율, 집권 뒤 최저 59%로

강한 자존심과 권력욕을 숨기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 자신의 힘을 내보이기를 좋아하던 푸틴으로선 그야말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과 봉쇄령 장기화로 그동안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도 말 그대로 폭락하고 있다. 지난 4월 러시아 국민의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역대 가장 낮은 59%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독립·비정부 여론·사회 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가 4월 24~2일 16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5월 6일 발표한 결과다.
지지율 59%라면 다른 나라 지도자에 비하면 높은 편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푸틴이 그동안 누려왔던 지지율에 비하면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이다. 푸틴은 집권 내내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선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당시 이미 80%에 육박했다. 2007년 푸틴은 전 세계 국가지도자 가운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다음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그해 6월 푸틴의 지지율은 81%였는데 블레어 총리는 9월 93%의 기록적인 지지율을 누렸다.

군대는 대규모 열병식을 하고 일반 국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웠던 가족과 친지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소련과 러시아의 대독 전승기념일 전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행사가 무기 연기됐다. 2019년 5월 9일의 모스크바 거리(윗 사진)과 2020년 같은 날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AP=d연합뉴스

군대는 대규모 열병식을 하고 일반 국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웠던 가족과 친지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소련과 러시아의 대독 전승기념일 전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행사가 무기 연기됐다. 2019년 5월 9일의 모스크바 거리(윗 사진)과 2020년 같은 날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AP=d연합뉴스

국난 속 배타주의·민족주의가 지지율 높여

푸틴의 지지율은 2014년 5월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85.9%로 치솟았다. 같은 해 9월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시작되자 87%로 올라갔으며, 2015년 6월 역대 최고인 89%를 기록했다. 경제난·경제재제 등 국가적 위기, 서구세력이 러시아를 포위하고 해치려 한다는 전통적인 배타주의와 두려움, 그리고 민족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푸틴에 대적할 만한 정치적인 맞수나 야당이 제대로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지지율은 그 뒤로도 줄곧 60% 이상을 기록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50%대로 추락했다. 러시아에서 아무리 여론정치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해도 지지율 추락은 푸틴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수호이-25 전투기가 대독 전승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 상공에서 축하 비행을 하며 러시아 국기의 색상을 연출하고 있다. 지상 행사는 코로나19로 연기됐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의 수호이-25 전투기가 대독 전승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 상공에서 축하 비행을 하며 러시아 국기의 색상을 연출하고 있다. 지상 행사는 코로나19로 연기됐다. 타스=연합뉴스

푸틴, 끝없는 장기집권 욕심에 개헌 추진    

게다가 하필 레바다 센터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인 5월 7일은 푸틴 개인에게 역사적인 날이었다. 바로 2000년 5월 7일 대통령에 처음으로 취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푸틴은 보리스 옐친 1·2대 러시아 대통령(1931~2007년, 재임 1991~1999년) 아래에서 1999년 8월 총리를 맡았다가 그해 12월 31일 옐친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올랐다. 2000~2008년 대통령을 재임한 뒤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에 따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총리가 대선에 출마해 당선하고 푸틴은 실세 총리를 맡았다. 그 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린 뒤 푸틴이 2012년 대선에서 당선해 재집권했으며 2018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해 4차 집권 중이다. 푸틴의 남은 임기는 2024년 5월까지다. 그때까지만 집권하고 권력을 내놓을 푸틴이 아니다.

대독 전승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러시아 국기와 글자가 적힌 옛 소련기를 발코니에 들고 나와 축하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대부분 지역은 이날에도 이동금지령에 내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밖으로 나가지 말고 창가에서 승전을 축하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타스=연합뉴스

대독 전승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러시아 국기와 글자가 적힌 옛 소련기를 발코니에 들고 나와 축하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대부분 지역은 이날에도 이동금지령에 내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밖으로 나가지 말고 창가에서 승전을 축하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타스=연합뉴스

4월22일 예정 종신집권 개헌 국민투표도 연기

푸틴은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 자신이 기존 재임했던 임기를 빼고 2024년 대선 이후 대통령 임기를 새롭게 두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헌안을 제안했다. 계속 당선한다면 푸틴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장기집권 개헌안이다. 개헌안은 푸틴이 무려 36년간 집권할 수 있는 정치적 열쇠다.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어둠 속에서 장기간 억류하는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의 영장이기도 하다.
푸틴이 2연임만 가능한 조항은 그대로 남겨 자신의 후임자는 장기 집권을 할 수 없도록 차단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나만 권력을 누리겠다는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개헌이다. 러시아인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는 사실상 종신 집권 구상이나 다름없다. 유엔 인구개발 프로그램이 지난해 12월 10일 공개한 ‘2019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여성 77.6세, 남성 66.9세, 전체 72.4세다.
푸틴의 개헌안은 러시아 상·하원의 승인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까지 받았다. 푸틴은 4월 2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3월 11일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을 선언하면서 푸틴은 결국 3월 25일 대국민 연설에서 국민투표를 연기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국민투표를 치러 종신집권을 위한 개헌을 완성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승리 광장에 세워진 전승 동상의 뒤로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승리 광장에 세워진 전승 동상의 뒤로 75주년 대독 전승기념일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타스=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세계 3위, 하루 확진자 1위  

그런데 5월에 접어들면서 코로나19가 러시아를 대대적으로 덮쳤다. 하루 확진자는 5월 3일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이래 연속 11일 동안 그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한국시간 5월 14일 0시를 기준으로 러시아의 누적 확진자 숫자는 24만2271명으로 141만1339명인 미국과 27만1095명인 스페인 다음으로 많다. 한마디로 현재는 통제 불능 상태다.
러시아에서는 미국과 같은 날인 지난 2월15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 누적 확진자는 4월 9일 1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4월21일 5만 명을, 4월 30일 10만 명을, 5월 5일 15만 명을 각각 넘어선 데 이어 5월 10일 20만 명을 넘었다. 하루 확진자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은 5월 3일 13만4687명이던 누적 확진자는 11일이 지난 13일 24만2271명으로 거의 2배에 이르렀다. 누적 확진자는 인구 100만 명당 1660명으로 5798명인 스페인, 4267명인 미국, 3659명인 이탈리아, 3384명인 영국, 2730명인 프랑스보다 적다. 1539명인 독일보다는 많다. 러시아의 인구는 올해 추산치로 1억4670만 명에 이른다.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지난 8일 의료요원이 방호복을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쓴 채 근무하고 있다. 가슴에는 매직으로 적은 '카챠'라는 이름이 보인다 타스=연합뉴스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지난 8일 의료요원이 방호복을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쓴 채 근무하고 있다. 가슴에는 매직으로 적은 '카챠'라는 이름이 보인다 타스=연합뉴스

13일 하루 확진자, 러시아가 세계 최다  

급기야 러시아에선 5월 13일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28명으로 3804명인 미국과 3347명인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한 마디로 러시아에서 확진자 증가의 봇물이 터진 셈이다.
러시아는 코로나 검사도 다량으로 하고 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5월 13일까지 598만2558건 시행해 인구 100만 명당 4만995명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봐도 높은 편이다. 인구 100만 명 당 3만130건인 미국보다 빈도가 높다. 그런데도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열흘 넘게 멈추지 않고 있다. 확진자 추적과 신규 확산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다만 러시아의 코로나19 사망자는 2212명이 보고돼 외견상은 확진자의 급속한 증가만큼 빠른 속도로 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망 원인의 확정과 보고, 그리고 통계의 기준이 서구와는 다르다는 외부의 지적이 있지만 당장 확인할 수는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전승기념일인 9일 모스크바 크렘린의 광장에 홀로 서서 대통령 경호부대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매체인 스푸트니크가 국내외에 전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전승기념일인 9일 모스크바 크렘린의 광장에 홀로 서서 대통령 경호부대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매체인 스푸트니크가 국내외에 전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푸틴, ‘방역 사령관’은커녕 측근 확진에 자가격리

그런데도 푸틴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심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방역 사령관’으로서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푸틴에 이어 형식적으로 러시아의 이인자인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지난 4월 3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를 시작했다고 현지 모스크바 타임스가 보도했다. 푸틴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제1부총리를 총리 권한대행으로 임명했다. 그 뒤로도 블라디미르 야쿠셰프 건설주택부 장관, 올가 류비모바 문화부 장관이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푸틴도 모스크바시 서쪽 교외에 있는 노보오가리오보에 있는 관저에 머물며 사실상 완화된 자가격리를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푸틴은 출퇴근 교통체증을 피해 2012년 10월부터 주로 노보오가리오보의 관저에 머물러왔으며 2013년 5월부터는 필요할 때만 헬기를 이용해 모스크바 중심부 크렘린에 있는 공식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일 화상을 통해 러시아군 참모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축하 원격 연설을 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상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일 화상을 통해 러시아군 참모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축하 원격 연설을 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상

푸틴, 교외에서 비대면·원격·화상 집무

러시아 대통령실 웹사이트에 따르면 푸틴은 관저에서 화상을 통해 원격으로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보고 있으며,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 궁은 푸틴이 화상을 통해 기관장과 대화하고, 사관학교 졸업생들에게 축사하는 사진을 내외신에 제공했다. 서방에 러시아 관영 국제매체인 스푸트니크는 푸틴이 전승기념일인 9일 모스크바 크렘린의 소보르나야 광장에서 홀로 서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사진을 외신에 제공했다. 스푸트니크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기만적인 뉴스를 해외에 퍼뜨려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12일 BBC방송은 푸틴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페스코프 대변인이 현지 타스(TASS) 통신에 “푸틴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것은 한 달 전”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자가격리 상태에 있는 셈이다.

러시아 전역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이동 금지령이 내려진 가운데 지난 7일 수도 모스크바의 구세주 예수 성당 앞에 텅 비어있다. 러시아는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으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전역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이동 금지령이 내려진 가운데 지난 7일 수도 모스크바의 구세주 예수 성당 앞에 텅 비어있다. 러시아는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으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산 원유값 반토막, 루블 가치도 하락

푸틴의 러시아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6주간 이동금지령을 발령해 외출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노동자들에게 유급 휴가를 지시하면서 러시아의 경제 활동은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됐다. 결국 푸틴은 지난 11일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유급 휴무 조치의 종료를 선언했다고 유로뉴스가 보도했다. 아직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방역만큼 경제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와 장갑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무리하게 경제재개를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도 실질적인 경제회복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욱 문제는 ‘역사적 수준’으로 떨어진 원유 가격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국제 유가는 지난 2월 초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13개국으로 이뤄진 석유수출기구(OPEC)와 러시아를 핵심으로 하는 10개국 간의 감산 합의가 삐걱거리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5월부터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지난달 합의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로 유가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가 전체 수출의 60%에 가까운 러시아에 저유가는 국가적인 재앙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산 석유의 기준인 우랄산의 유가는 1월까지 배럴당 60달러 전후를 유지했다. 하지만 2월 말 49.35달러로 처음 50달러 이하로 떨어진 데 이어 사우디와 감산 합의에 실패한 4월 1일 18.30달러까지 폭락했다. 국제유가 실시간 정보사이트인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우랄산 원유는 5월 14일 0시 현재 배럴당 30.1달러의 가격을 형성했다. 우랄산의 유가는 1월 초와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난 셈이다. BBC는 러시아 연방정부가 올해 예산을 짜면서 우랄산 유가를 배럴당 42.4달러로 예상했다. 당장 러시아 정부가 올해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기 힘들 수도 있게 됐다.

러시아의 75주년 대독 승전 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날 전통의 열병식과 가두행진은 햊닝은 연기되고 전투기 비행과 불꽃놀이만 진행됐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공산주의 시대 권위주의를 강조한 스탈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바 국립대 본관. 코로나와 저유가로 만신창이가 된 러시아 경제의 앞날은 화려한 불꽃놀이와 달리 결코 밝지 않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75주년 대독 승전 기념일인 지난 9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날 전통의 열병식과 가두행진은 햊닝은 연기되고 전투기 비행과 불꽃놀이만 진행됐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공산주의 시대 권위주의를 강조한 스탈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바 국립대 본관. 코로나와 저유가로 만신창이가 된 러시아 경제의 앞날은 화려한 불꽃놀이와 달리 결코 밝지 않다. AP=연합뉴스

푸틴의 생존전략, 국제정세·한반도에 영향

러시아 루블화 값도 내려가고 있다. 루블화 값은 4월 초 원유 감산 합의의 영향으로 떨어진 이래 가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KEB 하나은행에 따르면 13일 현재 1달러는 74.13루블에 거래된다. 1달러가 73루블 이상으로 거래된 것은 2016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낮은 루블화 가치는 국제 금융시장이 러시아 경제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는 뜻이나 진배없다.
코로나19와 저유가 상황 속에서 푸틴은 어떤 생존 전략을 발휘할 것인가. 푸틴의 정치적 생존술은 국제관계, 특히 동아시아에서 경계를 맞댄 한반도에 어떤 파문을 몰고 올 것인가. 전 세계가 푸틴의 다음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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