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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잔치 대신 기부”…순댓국 팔아 모은 1000만원 내놓은 노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충북 단양군청을 찾아 자신의 칠순잔치 비용 1000만원을 기부한 박동순(오른쪽)씨가 군청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단양군]

지난 8일 충북 단양군청을 찾아 자신의 칠순잔치 비용 1000만원을 기부한 박동순(오른쪽)씨가 군청 관계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단양군]

“우리는 괜찮아요. 저보다 없는 사람들 도와야죠.”
순댓국을 팔아 5년 동안 모은 돈 1000만원을 기부한 노부부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충북 단양군에 거주하는 박동순(68)·이옥례(60)씨 부부다. 14일 단양군에 따르면 이 부부는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단양군청을 찾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써달라”며 1000만원을 기부했다.

박동순·이옥례 부부, 코로나19 극복 기부금 전달 #아내 이씨 5년 동안 칠순잔치 비용 모아와 #칠순잔치 취소하고 1000만원 군청에 기부

 이 부부가 기부한 돈은 올해 칠순을 맞은 박씨의 잔치 비용이다. 단양읍 구경시장에서 ‘장터마늘순대’를 운영하는 아내 이씨가 틈날 때마다 5만~10만원씩 모은 돈이다. 1950년생인 박씨는 과거 출생신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현재 주민등록상 나이는 68세다. 실제 나이는 오는 23일 70세가 돼 이날 가족과 함께 칠순 잔치를 열기로 했었다. 아내 이씨는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뷔페식당을 빌리고, 남편 선물을 사주기 위해 5년 전부터 돈을 모았다”며 “은행 수금원이 가게를 들릴 때마다 5만~10만원씩 차곡차곡 잔치 비용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모은 잔치 비용을 기부하게 된 이유는 남편 박씨가 “칠순 잔치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서다. 이씨는 “4월 말부터 남편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칠순 잔치 대신 가족끼리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제안했다”며 “속은 상했지만, 이왕 1000만원을 쓰려고 한 돈이니 지역사회에 기부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남편 박씨도 아내의 말에 동의하면서 기부가 이뤄졌다.

충북 단양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경운씨는 어르신 150명에게 생신상을 차려줬다. [사진 단양군]

충북 단양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경운씨는 어르신 150명에게 생신상을 차려줬다. [사진 단양군]

 박씨는 지역 기업에 근무하던 중 산업재해를 당해 허리와 한쪽 팔이 불편하다. 13년간 이어진 수술과 치료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2008년 퇴직해 지금은 단양국유림관리소에서 공공산림가꾸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내 이씨는 제천에서 순대국밥 집을 운영하다가 10여 년전부터 가게를 단양으로 옮겼다.

 이씨 가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단양을 찾는 관광객이 줄면서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씨는 “가게 운영이 어렵지만, 더 절박한 사람들을 위해 소상공인경영안정자금 신청도 하지 않았다”며 “남편과 기부한 칠순 잔치 비용이 코로나 극복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양군에는 박씨 부부를 비롯해 향토기업, 식당, 민간 사회단체, 종교단체 등이 코로나19 성금을 보내 2억3990만원을 모았다. 후원 물품은 1억4800만원 상당이 전달됐다. 단양군 ‘키다리아저씨’로 불리는 김경운(55)씨의 경우 관내 어르신 150명에게 생신상을 차려줬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가정마다 소고기 300g, 돼지고기 한근, 미역 등으로 미역국을 끓여 생신을 맞이한 홀로 사는 노인을 돕는다.

 박상규 단양군 희망복지지원팀장은 “코로나19로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숨은 영웅들의 기부가 이웃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며 “모은 성금은 생필품이나 방역 물품 구입에 쓰겠다”고 말했다. 단양군에는 착한 임대료 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 11일까지 23곳의 건물주가 참여해 50개 점포 임차인들이 임대료 감면이나 면제 혜택을 받았다.

단양=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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