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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코로나 시대의 프라이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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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염태정 정책부디렉터

이태원 클럽 킹 입구에 붙은 집합금지명령서는 표현은 점잖으나 내용은 위압적이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영업주와 이용자에 대해서는 확진자 발생 시 치료비·방역비 등을 청구하게 되며, 관련 규정에 따라 고발 조치됨을 알려드립니다.’  킹 클럽 바로 옆 언덕길을 따라 20m 가량 올라가면 클럽 퀸이 있다. 퀸도 영업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인근의 클럽·카페 대부분도 집합금지명령 내지는 자발적인 휴업.

휴대전화 활용한 개인정보 파악 #코로나 확산 막기위한 조치지만 #인권침해 방지대책에 더 힘써야

지난 10일 오후에 찾은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 킹 클럽 일대 거리는 그렇게 초토화돼 있었다. 30년 전 군 복무 시절 미군 동료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클럽 킹이 있는 그 언덕길이었는지, 옆 골목인지 분명친 않지만, 해밀턴 호텔이 30년 전 그때처럼 가까이 있는 걸 봐선 근처인 건 분명하다. 한 번쯤 가봐야 한다 해서 이태원 골목의 바를 돌아다녔다. 이런 이태원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됐다.

이태원 클럽 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아 세계에 자랑했던 K-방역의 성과를 한순간에 흔들어놨다. 확산세는 거침없다. 첫 확진자 발생 일주일이 안 돼 100명을 넘어섰다. 대구 신천지 악몽의 재현이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탄식이 나온다. 서울뿐 아니라 북으로 경기 양평, 남으로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서 나오는 확진자를 보면 공든 탑은 이미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의 주력은 20~30대다. 에너지가 넘치는 것만큼 전파력도 강하다. 이들은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운명론적 성향이 강하다. 건강하다는 생각이 뚜렷하고 자신의 감염이 불러올 피해의 심각성을 낮게 본다. 그러면서도 감염 사실에 뒤따를 비난을 다른 세대보다 더 두려워한다(서울대보건대학원·서울연구원, 코로나19 국민의식조사)

서소문 포럼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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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은 2030의 이런 특성에 한 가지를 더한다. 숨어들기다. 성 소수자가 찾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방문 자체를 숨기고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다. 실제 그 거리를 찾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성 소수자가 아니라 호기심에 재미 삼아 간 사람이었을 것이나, 그들도 노출을 꺼리는 건 마찬가지다. 연휴 기간 이곳을 찾은 5500여 명 가운데 2000여 명이 아직도 연락 두절이다. 신천지 때는 신도 명단을 구해 접촉자 파악에 나섰으나 이번엔 그리 찾을 수도 없다. 방역 당국은 비상이다.

휴대전화와 신용카드가 그들을 찾는 도구가 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통신사를 통해 특정 기간 이태원 주변 기지국에 접속한 휴대전화 통신 기록을 확보했다. 전화번호뿐 아니라 집 주소, 이름도 나온다. 문제의 클럽에 가지 않은 사람도 물론 포함돼 있다. 기지국을 통한 위치파악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으나 인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번엔 1만 905명에 달한다. 감염병과의 싸움은 속도전이고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거리 곳곳의 폐쇄회로TV뿐 아니라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는 이젠 감시 망원경이 됐다. 그 감시망을 벗어나기 어렵다. 일거수일투족을 전방위로 살피는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떠오르게 한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내 정보가 쉽게 파악되고 뭘 하는지 남들이 금방 알 수 있다는 건 가슴 오싹한 일이다. 정부는 인권 보호에 더 힘을 쏟겠다고 한다. 개인정보가 방역만을 위해 사용되도록 철저히 조치하겠으니 믿어달라고 한다. 개인정보보호법(58조 3항)도 공공의 안녕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경우 이런 식의 정보 확보를 허용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적 희생과 정보 공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재 같은 상태가 오래가긴 쉽지 않을 거다. 한국 사회의 감시성, 프라이버시 존중 부재를 지적하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우리의 방역 성과를 깎아 보려는 보도로만 볼 건 아니다. 그간 개인정보 노출 사고도 상당했다. 인권침해 가능성도 있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 완치자의 동선을 삭제키로 한 건 이런 인식에서 나온 거다.

개인정보보호는 정부의 책무다. 그래서 차관급이 수장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있다. 이번처럼 광범위한 개인을 대상으로 정부가 정보공개를 요구했을 때 통신사·카드사는 어느 수준까지 응해야 하는가. 그에 앞서 정부의 개인정보 요구 기준은 무엇인가. 프라이버시의 존중은 코로나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안전한 개인정보, 안심하는 국민’를 말한다. 훌륭한 기준이다.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코로나 시대에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염태정 정책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