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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청와대 출신 모임 안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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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청와대 출신 당선인들은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정무수석 출신의 한병도 당선인이 보냈다. 신정훈 당선인(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은 “우리가 원내대표 선거에 공개적으로 집단적으로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지 말자. 그러면 마치 청와대가 누구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산다. 서로 조심하자는 취지의 문자였다”고 설명했다. 한병도 당선인은 “문자를 보내기에 앞서 청와대 출신 당선인 분들의 의견을 미리 수렴했는데 민주당 원내대표로 특정 후보 지지를 공개하면 청와대 뜻으로 비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아 다들 조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경선서 공개 지지 자제 #청와대 출신 모임도 계획 없다” #국민 여론은 전해 국정 운영 넓혀야

청와대 출신들은 ‘청와대 모임’도 피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병도 당선인은 “그런 모임도 하지 않기로 했다”며 “별도 모임을 만들면 무슨 친문, 비문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국면에서 친문, 비문 얘기가 나오면 코미디”라고 말했다. 국민소통수석을 했던 윤영찬 당선인도 “밥을 같이 먹을 일이야 있을지 모르겠으나 청와대 출신끼리 모임을 만들 계획은 다들 없다”고 밝혔다. 다른 청와대 출신 당선인도 “지금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자고 나섰는데 우리가 따로 모여서 친문이니 진문이니 말이 나오게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내게 모임을 만들자고 얘기한 이도 없었고 앞으로 누가 만들자고 해도 나는 안 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4·15 총선으로 청와대 출신들이 국회로 대거 직진했다. 더불어민주당에만 18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당사를 찾으면 현장에서 ‘미니 수석·보좌관회의’를 열 수도 있다. 범위를 넓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민주당 송재호 당선인까지 포함하면 19명이다. 원내교섭단체(20석) 달성이 총선 목표인 정당들이 그간 부지기수였는데 이번 총선에선 ‘청와대 사람들’로 그 숫자에 육박했다. (물론 가칭 원내교섭단체 ‘청와대 사람들’이 만들어질 리는 없다.)

서소문 포럼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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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신들이 원래부터 같은 집단,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오랜 시간을 호흡을 맞춰왔거나 짧은 기간이라도 운명공동체로 움직였으니 청와대의 당 장악력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많다. 문 대통령을 오랜 기간 수행했던 윤건영(전 국정기획상황실장) 당선인은 말수가 적고 나서는 걸 피하는 스타일이다. 그가 대북특사단에 포함된 건 대통령의 메시지를 오염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적임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윤 당선인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일정기획팀장이었는데 이때 캠프 전략기획실장이 정태호 당선인이다. 정태호, 윤건영 두 사람은 앞서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함께 있었다. 민형배, 김영배 당선인도 당시 청와대에 있었다. 참고로 2012년 대선 때 캠프 대변인은 진성준 당선인이다. 광흥창팀 멤버였던 한병도 당선인은 열린우리당 때부터 민주당 사람이고, 지난 대선 때 새롭게 윤영찬 당선인 등이 합류했다. 얽히고설켰던 이들은 이번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다 여의도로 함께 진출했다.

청와대 사람들은 이번엔 공개 행보를 피했지만 앞으론 입을 열고 몸을 세울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민주당의 이철희 의원은 “청와대 출신은 청와대 입장을 당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당에서 접한 국민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민심을 청와대에 전하는 통로이고 청와대 출신은 이같은 역할에서 부담이 적다.

4·15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했지만 압승의 이면엔 거부와 불안이 숨어 있다. 2012년 대선 결과를 놓고 반(反)박근혜 진영이 보여줬던 분노와 거부를 떠올리면 뭔지 알 것이다. 투표일 전날 ‘여권 170∼180석’을 확신했던 한 업계 인사가 꺼낸 말은 “앞으로 뭐가 올지 두렵다”였다.

총선으로 한국 정치의 지형이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푸른색 단색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양쪽 날개로 날아간다. 그래서 87년 체제를 뜯어고치겠다는 개헌도, 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도 국민 다수가 지지해야 성공한다. 청와대 출신들이 입을 열어 전할 건 청와대의 의중도 있겠지만 역방향에선 국민 여론이 있다. 당연히 지지자만 아닌 비판자들의 여론까지 포함된다.

여당이 전무후무한 승리를 얻은 지금이 비판 여론까지 살펴보며 국정 운영의 스펙트럼과 유연성을 확장할 적기이고, 이를 제안할 적기이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