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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부 찍은 광화문 현판 다시 한글로? 시민모임 "운동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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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사전 배포 자료에서 공개한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 시안. [사진 시민모임]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사전 배포 자료에서 공개한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 시안. [사진 시민모임]

10년 논란 끝에 밑글씨까지 새기고 제작 완료를 눈앞에 둔 ‘광화문 현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한글 현판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이 문화계 명사들이 포함된 자칭 ‘시민모임’에서 나왔다. 이들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8월 최종 확정한 복원안이 시민 의견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면서 오는 한글날까지 대대적인 현판 교체 시민운동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승효상 건축가, 임옥상 미술가 등 #"새 시대 정신 담아 한글현판으로" #문화예술 24인 참여 여론전 예고 #문화재청 "결론 난 것, 변경은 없다"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 이하 ‘시민모임’)에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인은 현재까지 총 24명. 이 중엔 2014~2016년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지낸 승효상 이로재 대표와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교장, 유영숙 전 환경부장관(세종사랑방 회장), 임옥상 미술가 등이 있다. 공동대표인 강병인 작가는 ‘참이슬’ ‘화요’ 등의 상표 글씨로 유명한 캘리그라피(서체) 작가다. ‘시민모임’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입장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 글자꼴로 시범 제작한 모형 현판(1/2 크기 축소판)도 공개할 예정이다.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현재 광화문 현판(왼쪽)을 훈민정음체로 바꿔 걸었을 때를 가정해 배포한 시안. [사진 시민모임]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공동대표 강병인·한재준)이 현재 광화문 현판(왼쪽)을 훈민정음체로 바꿔 걸었을 때를 가정해 배포한 시안. [사진 시민모임]

강 공동대표는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새 현판 제작 과정에서 한글로 만들자는 의견은 묵살됐다”면서 “지난해 8월 이후 문화재청에 거듭 입장을 전했지만 반영되지 않아 시민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단 문화예술인 주축으로 꾸렸지만 조만간 한글협회 등 한글 관련단체들과 연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이 배포한 사전자료엔 ^한자현판 설치는 중국의 속국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광화문은 21세기의 중건이지 복원이 아니므로 당대의 시대정신인 한글로 현판을 써야하며 ^한글현판은 미래에 남겨줄 우리 유산을 재창조한다는 의미라는 주장이 담겼다. 현재 광화문 현판에 대해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시 훈련대장이던 임태영이 쓴 광화문 현판의 글씨를 조그만 사진에서 스캐닝하고 이를 다듬어 이명박정부 때 설치된 것”이라면서 복원 기준으로서의 정당성을 깎아내렸다.

‘시민모임’에 참여한 승효상 대표도 개인의견을 전제로 “현판을 꼭 한가지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매년 교체할 수도 있고, 광장에서 보이는 정면엔 한글현판, 반대편엔 한자현판을 다는 아이디어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재 전문가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지만 현판이란 게 요즘 말로는 ‘간판’인데 새 시대에 맞게 바꿔 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 위원장 2년 임기를 마친 승 대표는 이번 ‘시민모임’과 관련해 “정치권과의 교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뀌는 광화문 새 현판에 단청 안료 실험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지난해 8월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뀌는 광화문 새 현판에 단청 안료 실험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하지만 이들 주장은 2006년 경복궁 광화문 복원사업을 벌이면서 고종 중건(1865년) 당시를 기준으로 삼은 원칙을 허무는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2012년 광화문 현판 재제작을 결정했을 때도 한글이냐 한자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그해 12월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 심의에서 한자현판으로 결정한 주된 이유도 ‘원형 복원’ 원칙 때문이었다. ‘시민모임’이 이같은 논의 과정을 뒤엎고 또다시 논란을 일으킨다면 10월 제작 완료를 앞둔 새 현판 제작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해 8월 단청안료와 글자마감(동판 위 금박) 방식까지 확정되고나자 다시금 한글단체 등에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면서 “2012년 말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인데 소모적인 논쟁이 재현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한글현판 제작이 문화재 복원원칙을 벗어나는 것으로 향후 유사 사례 발생시 대응이 곤란하며 ^재검토가 이루어질 경우 문화재 전문가 및 한자 관련 단체 등의 문제제기가 예상되므로 ‘변경은 없다’는 입장이다. 새 현판 제작엔 지난 8년간 연구 용역 등을 포함해 3억5000만원가량이 투입된 상태다.

 ◆광화문 현판 재제작=2010년 12월 광화문 현판 균열에 따라 재제작이 결정되면서 복원 방향을 놓고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한자냐 한글이냐, 어떤 서체를 쓸 것이냐를 두고 수차례 토론회와 공청회, 문화재위원회 등을 거쳐 고종 중건 당시 한자현판으로 결정됐다. 2015년 11월 글자 새기는 작업을 완료할 때만 해도 ‘흰 바탕 검은 글씨’로 추진됐지만 새로운 사료 발굴에 따라 2018년 1월 검정 바탕에 동판도금 글씨로 확정됐다. 지난해 8월 전통 소재 단청안료에 대한 검증을 마쳤고 오는 6월부터 10월 사이에 단청작업까지 마무리되면 이후엔 현판을 교체해 거는 일만 남게 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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