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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희상에 편지 쓴 할머니 "내 핏값인데, 정대협이 왜 막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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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일 찾은 남산 ‘기억의 터’. 조성 시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을 새겼는데 지금은 246명 만 남았다. 이를 몰랐던 A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파냈기 때문이다. 노란 동그라미가 A할머니 이름이 있던 자리다. 유지혜 기자

12일 찾은 남산 ‘기억의 터’. 조성 시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을 새겼는데 지금은 246명 만 남았다. 이를 몰랐던 A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파냈기 때문이다. 노란 동그라미가 A할머니 이름이 있던 자리다. 유지혜 기자

 “통화 오래 할 수 있어요? 그럼 한번 이야기를 해 봅시다”
위안부 피해자 A할머니는 11일 밤 어렵게 연결된 통화에서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일본이 2016년 낸 화해·치유재단의 지원금을 받지 말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기자에게 이렇게 되묻는 것으로 답을 시작했다.
이어 “일본이 사과한다고 준 것이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온 돈도 아닌데, (윤 당선인이) 받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A할머니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쓴 편지에서 윤 당선인이 지원금을 받지 말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5월 11일자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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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분3초 동안 한 통화에서 A할머니는 돈을 받지 말라는 윤 당선인에게  “나는 억울해서 받아야겠다”면서 했다는 이야기를 똑같이 들려줬다.
“열여섯 때 일제 순경이 길에서 불러세워 무릎 꿇리더니 군홧발로 콱콱 두번 밟았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중국에 그렇게 가게 됐어요.”

문희상에 편지 쓴 할머니 인터뷰 #“피해자 조형물, 허락없이 이름 넣어 #내가 망치·끌 가져가서 파냈다” #“할머니들에게 준다며 걷은 돈 #우리에게 안 준 것 TV보고 알아”

또랑또랑했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위안소 생활을 한 중국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할 때 갑자기 작아지며 가늘게 떨렸다. “그게(화해·치유재단 지원금 1억원이) 우리 할머니들이 흘린 핏값이니까”라고도 했다.
A할머니의 주장은 윤 당선인을 비롯한 피해자 지원 단체가 모든 피해자의 의사와 선택권을 존중했느냐는 근본적 의문으로 직결된다.
사실 할머니는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16년 8월 조성된 남산 ‘기억의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딱 하나가 지워져 있다. A할머니가 그해 겨울 새벽에 망치와 끌을 들고 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지웠다.
“엄마 이름이 거기 있다고 우리 애한테 연락이 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벌벌 떠는 거야. 내가 아침 일찍 가봤더니 저 끝에 내 이름이 있더라고. 내가 파버렸지. 그러고 돌아서니 경찰차 다섯 대가 와 있더라고. 남산 밑 파출소(지구대)에 있다가 12시 넘어 구청에서 사람이 와서 집에 보내줬어.”
기억의 터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여성계 등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국민 성금을 모아 서울시와 함께 만들었다. 등재 의사를 묻지 않았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나는 그거 했는지도 몰랐어요. 승낙한 적도 없고”라고 말했다.
추진위 및 서울시 관계자는 “247명의 명단은 정대협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동의는 정대협이 받았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정의연 측은 수차례 시도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할머니는 “30년 전 일본 돈 500만 엔을 받았다고 한국 정부가 주는 4300만원을 못 받았다”고 했다. 일본이 1995년 조성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 이야기다. 정대협 등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게 아니라며 반대했고, 정부도 대신 4300만원씩 지원해 기금을 받지 못하게 유도했다.
당시 국민기금을 수령한 7명은 정부 지원금 대상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려진 것과 달리 61명이 국민기금을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54명은 이를 숨긴 것이다. 할머니는 그 이유에 대해 “정대협이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때 정대협이 (일본 돈 안 받는다고) 도장 찍으라고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됐든 우리는 일본에서 준다는 것은 받아야겠는데, 정대협에서 막을 필요가 뭐 있냐고”라면서다.

A할머니는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이 재정을 피해자에게 쓰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 “나는 티비(이 할머니 기자회견) 보고 알았다. 이때까지 할머니들 돈 준다고 돈 걷었더라고. 그래 놓고선 할머니들한테 돈을 한 푼도 안 줬다”고 이 할머니와 같은 취지로 말했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권혜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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