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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싱글벙글쇼 33년간 가족여행 3박4일 딱 한번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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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 지금 ‘싱글벙글쇼’를 할 시간이네요. 이 시간에 스튜디오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신기해요.” 11일 오후 1시, 33년간 진행한 방송을 마친 다음 날이어서일까. 김혜영(58)씨는 ‘자유인’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

1만2169일 장수비결 청취율 1위 #결혼식 날도 신혼여행서도 진행 #강석, 불만 있으면 혼자 서운해해 #청취자 오해 살라 정치행사 거절

1만2169일. 그가 강석(68)씨와 함께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날이다. 1987년 1월 16일 잡은 마이크를 2020년 5월 10일 내려놓았다. 1시간 30여분 인터뷰 동안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개그맨 이용식씨 등 지인의 위로 전화도, ‘우리 지역으로 휴양오시라’는 한 지자체 전화도, ‘출연해달라’는 홈쇼핑 업체 전화까지 다양했다.

김혜영은 “지난 33년간 ‘싱글벙글쇼’를 진행하며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간다”고 마무리 소감을 밝혔다. [사진 김혜영]

김혜영은 “지난 33년간 ‘싱글벙글쇼’를 진행하며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간다”고 마무리 소감을 밝혔다. [사진 김혜영]

방송 장수 비결이 뭘까.
“‘싱글벙글쇼’를 맡은 직후 도입된 청취율 조사 덕을 봤다. 이전까진 ‘감’으로 했다. ‘3~4년 했으니 오래 했네, 새 얼굴을 기용해야지’라는 식이다. 청취율 숫자가 나오니 라디오 전체 1위인 우리를 교체할 수 없었다. 또, 우리가 좀 무던하다. 담당 피디랑 얼굴 붉힌 적도, 출연료 얘기를 꺼낸 적도 없다. 그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진행자끼리 다툰 적도 없나.
“왜 없겠나. 그런데 다퉜다기보다 강석씨가 혼자 서운해하는 식이다. 한번은 ‘스타 명콤비’라는 명절특집 프로그램에 가수 현숙씨와 콤비로 나선 적이 있다. 이후 한 달가량 말을 잘 안 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너는 나랑 콤비지, 왜 현숙이랑 콤비냐’라는 불만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말을 안 해 건너 전해 들었다.”
33년 동안 휴가 거의 못 갔다고 들었다.
“요즘엔 DJ가 휴가 내고 대타를 세우는데, 우리는 그럴 생각을 못 했다. 1996년에 ‘싱글벙글쇼’가 미국 한인방송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다. 그 기간 방송을 사전 녹음해 내보냈는데, 때마침 강릉에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졌다. 하필 녹음한 게 신혼부부들의 첫날밤 사연을 소개하는 ‘신혼일기’ 코너였다.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 첫날밤 이야기만 나가니. 돌아와서 엄청 혼났다. 외유는 우리 팔자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해외여행도 간 것도 3박 4일 사이판에 딱 한 번이다.”
결혼식날에도 진행을 했다고.
“당일 웨딩드레스 입고 진행했다. 방송 마치고 강석씨가 결혼식장(서울 신길동 공군회관)까지 태워주고, 사회도 봤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는데, 나는 제주 MBC에서, 강석씨는 서울 MBC에서 진행했다. MBC 라디오에서 첫 이원중계라고 알고 있다.”
지난 6일 강석과 함께 감사패를 받은 모습. [사진 김혜영]

지난 6일 강석과 함께 감사패를 받은 모습. [사진 김혜영]

기억에 남는 청취자 사연은.
“너무 많은데…. 어느 부부가 이혼하려고 법원으로 갔다. 트럭 타고 둑길을 가면서 우리 프로그램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울고 웃으면서 결국 이혼서류를 찢고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돌아왔다더라. 어려운 형편으로 결혼식을 못 올린 부부들에게 합동결혼식을 올려드린 것도 기억에 남는다.”
기억나는 가장 큰 위기는.
“‘신혼일기’ 코너는 아슬아슬한 면이 있었다. 한 번은 수위가 정말 높아 웃지 않으려 입을 틀어막았다. 강석씨는 허벅지를 꼬집고 있더라. 밖을 보니 작가도 피디도 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결국 방송심의위원회에 불려갔는데 ‘진행자를 교체하라’고 했다. 당시 라디오 국장이 안 된다고 우겨 피디만 교체했다. 우리는 ‘꿀단지’ 사건이라 부른다.”
하차 계기를 청취자들이 궁금해한다.
“(MBC 측에서) 이유가 있고, 생각이 있을 것이다. 더 잘되길 바랄 뿐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지 않나. 청취율 23%을 찍기도 했지만, 지금은 낮아졌다. 더 나은 디딤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제 ‘안녕’을 고하는 게 맞다. 30년이나 무대를 만들어주신 MBC에 다시 감사드린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은 없었나.
“90년대부터 정치권 행사에 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론은 ‘MC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로 청취자 중 누군가 소외되거나 불쾌해지면 안 되지 않나. 잘한 것 같다. 그래서 이때까지 진행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때 신우염 등으로 고생한 김씨는 “청취자 여러분이 내겐 마법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청취자들 사연을 읽고 반응을 보면 그 순간은 아프지 않았다”며 “내가 30년 동안 더 많은 선물을 받고 돌아간다”며 감사를 전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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