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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규덕의 한반도평화워치

사이버 안전 위협하는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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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코로나19와 디지털 보안

문재인 대통령(아래 오른쪽 둘째) 등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참석한 화상회의가 지난달 26일 열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보안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아래 오른쪽 둘째) 등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참석한 화상회의가 지난달 26일 열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보안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부는 이에 대응해 비대면 세계 확장과 디지털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비대면 세계 확장으로 신기술 개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북한 등 주변국의 사이버 해킹 위협으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있다. 신산업 육성 과정에서 정보 보호를 위한 방호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는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보안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맞는 보안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국가·기업·개인의 소중한 정보와 개인 프라이버시가 위협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비대면 세계 확대되며 사이버 해킹 위협 더욱 커졌으나 #안전 불감증 여전하고 보안 수준은 아날로그에 머물러 #50년 유지한 보안 제도와 매뉴얼은 새 시대에 맞지 않아 #원자력·대도시·디지털통신·환경에 대한 융합적 보안 시급

또 미·중 패권 격돌에 따른 중국·러시아·북한의 여론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우한 수산시장이나 연구소가 진원지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우한 세계 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미군이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스테판 할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중국이 심리전·여론전·법률전 등 ‘3전 전략’을 구사한다고 진단한다. 그는 중국이 3전을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좁히고 열세를 만회하는 전략 도구로 활용한다고 본다. 중국은 세계를 무대로 한 정치 개입과 여론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관한 가짜정보를 전파하는 1만개 이상의 트위터 계정이 중국 정부와 연관돼 있다.

중국·러시아·북한의 여론전 대응 필요

러시아도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 러시아 첩보기관이 민주당 인사에 대한 해킹과 가짜 페이스북 계정을 활용한 여론 조작, 허위 정보 유포를 했다는 사실이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조사로 밝혀졌다. 북한도 고도화된 여론전 역량을 구사한다. 인터넷이 의사소통과 자유를 확산하는 순기능 못지않게 국론 분열을 일으키거나 반미 정서를 확산하는 공간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나빠지며 새로운 사이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15일 북한의 각종 사이버 해킹 시도가 미국과 국제사회, 특히 국제 금융·재정 체제의 안정과 관리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북한 등 22개국을 코로나19 사태 이후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사이버 해킹이나 금융 질서 교란에 대처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분석관 애드리언 니쉬와 사헤르 누만에 따르면 북한은 2018년 칠레의 한 은행에 악성코드를 심는 방법을 통해 은행 네트워크의 수천 개나 되는 프로그램을 파괴했고 며칠간 은행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비시킨 적이 있다. 북한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사이버 공격을 통해 약 20억 달러를 절취했고 60억 달러 이상의 위조지폐를 시장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디지털 세계 진입을 가속하며 한국은 사이버 위협 차단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대의 보안은 군사 보안이나 전통적 보안이 아닌 융합적 차원의 다양한 협업이 가능해야 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많은 국제사회 행위자들과 다자적 협력 틀을 만들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업도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국가 안보의 정의와 우선순위에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천문학적 군사비 지출과 최첨단 전략무기 확보 예산 지출에도 베트남전 사망자보다 많은 인구가 코로나19로 쓰러지고 시신마저 처리할 공간이 부족해 망연자실한 미국인들은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위비 지출이 꼭 필요한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재난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2차·3차 추경 과정에서 국방비 1조4758억이 삭감됐다.

초연결사회는 존재 자체가 취약점

2018년 11월 군 지휘부~한미연합사령부~청와대를 연계하는 주 통신 케이블을 일시 정지시킨 마포구 지하 공동구 화재 현장. [중앙포토]

2018년 11월 군 지휘부~한미연합사령부~청와대를 연계하는 주 통신 케이블을 일시 정지시킨 마포구 지하 공동구 화재 현장. [중앙포토]

다양한 위협에 대처하려면 융합 보안은 필수이다.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해 대당 1만 달러가 안 되는 드론 10대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유전을 공격해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다. 2018년 11월 마포구 지하 공동구 화재는 군 지휘부~한미연합사~청와대를 연계하는 주 통신 케이블을 일시 정지시켰다.

한국의 장점인 디지털로 연계된 초연결·초지능 사회는 존재 자체가 취약점이 될 수 있다. 비접촉·비대면 세계 개막과 함께 디지털 가속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이지만 그만큼 안전을 위협하는 판도라의 상자도 열렸다.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고 보안 수준은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다. 지난 50년을 유지해온 통합방위법 등 법과 제도들, 다양한 위기관리 매뉴얼은 새로운 공격과 위협에 작동하기 어렵다.

적의 중심부를 초토화하고 압도적 군사력으로 적을 무너뜨리는 산업화 시대의 전면전 대응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융합 보안이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위협이 다면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등 주요 시설 안전, 국경 보안, 대도시 방호, 특히 지하 공간에 대한 방호와 디지털 통신 보안, 환경·생태 보안이 융합적으로 관리되는 체계적·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화두는 안전한 연결성

코로나19 사태 이후 형성될 새로운 규범 중 핵심은 ‘안전한 연결성’이다. 이것이 확보돼야 도시들은 더욱 활력을 갖고, 더 편리하면서 디지털이 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디지털 문화는 대도시 인구의 삶의 패턴에 많은 변화를 줄 것이다. 이러한 비대면 환경의 필요성은 디지털 시대를 더 빠르게 정착시킬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세계로의 전환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새로운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스마트 시티와 관련해 환경·교통·수송 분야에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SK텔레콤이 지난달 29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와 온라인 개학 등 비대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보통신기술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유럽 1위권 통신사인 도이치텔레콤과 합작회사 설립에 합의한 사실은 고무적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 데이터 유통을 공개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개척함으로써 위기관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는 데이터를 안전하게 모집·분석·사용·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활용을 위한 규칙을 정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한 사이버 보안이 확보돼야 한다. 사이버 프라이버시 침해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국제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는 한국 등 정보통신(IT)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확대할 우려가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한정된 재원을 공공 보건에 투입하다 보니 디지털 역량 강화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선진국들은 디지털 디바이드를 좁히기 위한 기술 공여를 약속했지만, 지난 20년간 격차는 확대됐다. 기후환경 악화에서 드러나듯 지구촌 양극화는 선진 세계에까지 재앙을 가져다준다. 한국은 방역 선진국이자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질서 구축 과정에서 지구촌의 디지털 양극화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국방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