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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표에 '85표'···'울컥' 김태년은 전날밤 이미 승리 예견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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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첫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태년 의원(가운데)이 7일 당선인 총회에서 상대 후보인 전해철(왼쪽), 정성호 의원과 함께 당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첫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태년 의원(가운데)이 7일 당선인 총회에서 상대 후보인 전해철(왼쪽), 정성호 의원과 함께 당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기호 1번 김태년 후보가 82표를 득표하여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 득표하였기에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관위원장을 맡은 김영주 의원이 7일 오후 개표결과를 이렇게 발표하자 장내는 찰나의 적막감이 흘렀다. 그런 뒤 곧바로 “와” 하는 박수와 축하의 함성이 이어졌다. 일순간의 침묵이 있었던 건 김 원내대표가 이례적으로 결선투표 없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승리를 확정지은 게 대부분 예상 밖 결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은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뜻 밖의 결과”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21대 국회 문을 여는 슈퍼 여당의 첫 원내 사령탑에 오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막전막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더불어민주당의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은 주류 당권파로 분류되는 김태년(21대 포함 4선), 친노-친문 직계 전해철(3선), 비주류ㆍ무계파로 분류되는 정성호(4선) 의원 등 세 명이 도전장을 내밀어 대략 2강(김ㆍ전 의원) 1약(정 의원) 구도로 전개됐다. 요약하자면 당권파 실세와 핵심 친문의 대결 구도였다.

김태년 정견 발표 중 '울컥' 결정적 장면

김 원내대표는 이해찬 대표의 측근으로 실세 당권파이면서 동시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와 정책위의장을 경험한 무게감이 가장 큰 강점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라는 점 때문에 ‘동정표’가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김 의원에게 힘을 실었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2ㆍ3기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ㆍ홍영표 의원이 재수 끝에 동정표를 끌어모아 당선된 케이스에 해당한다.

김 원내대표가 이날 오후 투표를 앞두고 정견 발표 도중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결정적 장면으로 꼽힌다. 민주당의 한 초선 당선인은 “원내대표 후보들과 별다른 인연도 없고 마음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김태년 의원의 진정성 있는 정견 발표가 마음을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초선 당선인 사이에서도 이 장면을 보고 김 의원이 당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 측은 경선 전날 밤 승리를 예감했다고 한다. 163명의 의원 명단에 OㆍXㆍ△표를 그려가며 예상 득표수를 점검한 결과 절반을 넘는 85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자체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28일 후보 접수 당시엔 전 의원이 다소 유리한 상황이라는 판세 분석이 많았지만 선거운동 기간을 거치며 김 의원에 대한 지지세가 꾸준히 불어난 결과였다.

“대세는 김태년” vs “그래도 전해철” 

전 의원 역시 나름 탄탄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승산이 있다고 자신해 왔다. 특히 4ㆍ15 총선 직후 당선인들에게 꽃다발을 보내는 등 경쟁자보다 일찌감치 선거 운동에 나섰다는 점에 힘입어 승리를 예상하는 분위기도 당 안팎에서 꽤 많았다. 경선 직전 전 의원실에서 집계한 예상 득표수가 최대 90표를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고 한다.

전 의원은 친문 핵심으로 당 내에 확실한 ‘내 편’이 많다는 강점이 있었다. 소속 163명의 당선인 중 약 70여명이 넓은 의미의 친문으로 분류된다. 다만 경선일이 다가올수록 김 원내대표 지지세가 불어나며 막판엔 “대세가 뒤집어졌다”는 의견과 “그래도 전해철”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형국이 됐다.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약했던 정 의원은 ‘계파 정치 종식’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친문도, 당권파도 아닌 비주류라는 점을 역이용한 선거 전략이었다. 정 의원은 “사심 없는 ‘무계파 비주류’인 정성호가 21대 국회 첫 여당의 원내대표가 되는 것이야말로 국민 여러분께 보내는 강력한 변화의 메시지”라고 했지만 비주류의 한계를 뛰어넘긴 역부족이었다.

‘집중포섭’ 의원 명단 단톡방에 잘못 오르기도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결과 [뉴스1]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결과 [뉴스1]

치열한 선거운동 과정에선 뜻밖의 사건사고도 이어졌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 후보가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모인 단체 카톡방에 ‘집중 포섭’ 대상 의원 30여명의 명단을 실수로 잘못 올린 일이 있었다. 자신의 선거 운동을 도운 한 의원에게 보냈어야 할 명단이 단체 카톡방에 공개되며 전략을 노출해버린 일이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실수로 올린 그 명단엔 이미 상대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돕던 의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후보는 선거운동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의원회관 의원실 방문과 의원 호별 방문에 소홀한 모습을 보여 “열정과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고 한다. 통상 원내대표 선거운동에선 각 후보가 유권자인 동료 의원들 집이나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눈도장을 찍으며 지지를 호소하는 게 관례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은 발로 뛰는 선거인데 전략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당규에 위배되는 문자메시지 선거운동을 벌여 당 선관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전 의원은 경선 당일 의원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는 민주당 당직선출 규정상 금지하는 형태의 선거운동이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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