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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서비스라는 저 얄궂은 면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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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 존재와 부재의 동시공존.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卽是色)도, 슈뢰딩거의 양자역학 실험도 아니다. 이건 우리 일상 아파트 현실이다. 아파트 거주자가 인구 절반을 넘어섰단다. 잠시 눈을 들어 거실 창가 풍경을 볼 일이다. 거기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상태의 존재부재 동시공존 공간을 발코니라 부른다.

현실화한 발코니 확장의 양성화 #면적 안잡히는 이상한 내부공간 #주거의 기본 데이터도 없는 국가 #바닥면적 산입, 용적률 증가 필요

이 공즉시색은 면적 정의에서 출발한다. 바닥면적은 거주자가 사용하는 공간의 면적을 일컫는다. 아파트에서는 거주자의 배타적 점유 바닥면적을 전용면적이라 부른다. 배타적이려면 물리적 장치가 구비되어야 하는데 그게 벽과 기둥이다. 그런데 문자로는 규정되지 않는 현실 상황의 존재가 건축법의 묘미고 갈등의 진원이다. 벽으로 둘러싸이지 않으므로 바닥면적에서 빠지지만 거주자가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발코니다.

발코니는 대한민국 첫 아파트부터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마당·장독대를 잃어버린 아파트에서 이를 대체할 공간은 필요했으니 이게 발코니였다. 마당·장독대답게 한쪽 면이 트여있어 당연히 바닥면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보면 집은 넓어도 좁다. 그러므로 발코니를 장독대로만 쓰는 건 당연히 합리적일 수 없었다. 기민한 시장은 이걸 해결해줄 업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소위 샤시가게였다. 발코니는 단열난방이 되지 않았지만 샤시벽으로 둘러싸인 내부공간이 되었다. 법규로 짚으면 불법증축이되 전용공간 너머에 있으니 단속은 불가능했다. 공급자 중심의 건설 시장은 동형반복으로 아파트를 찍어내며 일사불란한 단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동네 샤시사게 주인들의 취향과 공법은 죄 달랐고 거기 에어컨 설치기사까지 가세했다. 그래서 아파트단지는 전체주의·무정부주의 동시공존 현장이 되었다.

위반이 정상이고 준수가 예외이며 단속이 불가하면 현실을 인정하자. 그래서 규정을 개정했다. 발코니 확장 양성화다. 새로운 존재를 불러줄 이름도 필요했는데 꼭 맞는 단어도 이미 있었다. 영어단어 ‘서비스’는 한국에서 공짜, 혹은 덤이라는 개념을 덤으로 얻었다. 확장된 발코니는 서비스 면적이라는 당당한 지위를 확보했다. 발코니는 단열난방 완벽한 전용공간이 되었고 발코니확장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 평면이 등장했다. 전용공간과 발코니 사이의 벽은 설계도면의 점선으로만 남았다. 모델하우스에는 바닥의 테이프로 표시되나 준공건물에서는 그마저도 사라진다.

평면 곳곳에 빨대를 꽂고 최대한 서비스 면적 뽑아내 주는 것이 설계자의 능력이 되었다. 발코니를 빼곡히 둘러서 잘 만들면 30% 넘는 면적이 서비스다. 공사비에서 빼지는 않으니 시공사가 손해 볼 일은 없다. 입주자는 숫자보다 훨씬 넓은 집에 들어서서 평면이 잘 빠졌고 집 구조가 좋다고 감탄한다.

이 면적은 불법도, 탈법도, 위법도 아니다. 그러나 준공서류의 전용면적에 기록되지 않으며 따라서 과세 지표, 용적률 산정에 다 빠진다. 뻔히 존재하는 면적을 털어내면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인지라 재정지원과 세금감면 받는다. 규모가 더 큰 아파트인들 서비스를 사양할리 없다. 따라서 모두 만세. 아파트분양 사업의 최고 관심사는 용적률이다. 5% 차이로 사업 성패가 갈라선다. 그래서 이걸 사업자는 올리려고 지자체는 막느라고 치열하다. 그런데 막상 준공된 아파트는 뜨거웠던 용적률 분쟁을 모두 만세 조롱한다.

국민·영토·주권이 국가의 근거라고 교과서에 쓰여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국민의 주거정보도 어림짐작하는 국가가 되어가는 중이다. 발코니 면적이 20%라고 쳐도 전 주거면적의 10%는 존재·부재다. 인구의 10%가 센서스 누락이라면 그게 어디 있는 나라냐고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한국은 초고강도 감시체계와 기본데이터 부재상황이 동시공존한다.

현실화로 생긴 문제의 답은 현실화다. 발코니를 바닥면적에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있는 걸 있다고 하는 순간, 있는 걸 없다면서 유지되던 주택건설 시장이 마비된다. 국민주택 아파트가 국민주택 규모가 되는 순간 아파트 분양 사업은 전면 중단될 것이다.

용적률도 현실화해야 한다. 저밀도 도시는 산업화 시대의 낭만이고 지난 세기의 가치관이다. 공장을 벗어난 전원도시에 대한 꿈이 지배하던 시대의 가치였다. 지금 우리 도시의 주거지 용적률은 낮다. 저밀도 도시는 낮은 밀도와 비례하는 화석연료 소모를 요구한다. 게다가 우리는 용적률 제한을 훨씬 초과했음에도 당당히 합법적인 이상한 아파트들을 만들어왔고 그런 아파트 가득한 도시의 정상작동을 체험 목격하고 있다. 고수하겠다는 그 숫자가 허상이었다고 발코니라는 서비스 면적은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공짜라면 마시는 건 인간 본성이다. 그러나 빨대 꽂은 아파트의 꿀물이 다음 세대에 양잿물이라면 게임의 규칙은 우리가 정비해야 한다. 한국의 도시에는 공유지의 비극과 사유지의 비극이 엉켜서 동시공존한다. 이게 증식되어 어떤 불치병이 될지 모를 일이다. 바이러스는 만든 시대가 치료하자.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