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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군사합의’ 체리피커 북한…이러려고 한국군 군사분계선 훈련 중단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2018년 남북이 평양에서 체결했던 ‘9·19 군사합의’를 놓고 북한이 완전한 합의 이행은 피하면서 군사적 실속만 챙기고 있다. 상품은 사지 않으면서 공짜만 챙기는 소비자를 ‘체리 피커’로 부르는데 북한은 군사 분야의 체리 피커를 방불케 한다.

9·19 합의엔 ‘우발상황 즉시 통보’ #북, GP 총격 뒤에도 해명 안 해 #F-35A 도입엔 “합의 위반” 따져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시 연락체계를 가동하며,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통보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3일 철원 비무장지대(DMZ)서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이 벌어진 후 나흘째인 7일에도 합의에 따른 통보나 해명이 없었다.

9·19 군사합의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득 되는 합의는 챙기면서 불리한 대목에선 침묵하거나 남측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은 9·19 합의의 ‘군사분계선 상의 훈련 중단’과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을 통해 극히 불편하게 여겨왔던 서해 5도 일대에서의 한국군 포격 훈련과 해상 기동훈련을 중단시켰다. 이로써 2010년 11월 북한군 포격 공격 때 맞대응 포격을 했던 연평도의 K-9 자주포는 현지에서 훈련할 수 없게 됐다. 한·미 공중 정찰기의 군사분계선 접근도 불가능해졌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9·19 합의로 한국군의 서해 훈련과 육상에서의 정찰자산 운용을 제한하는 과실을 챙겼지만 그 이후는 진전이 없다”며 “대북제재 이탈, 민족 공조 등과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얼굴을 맞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 논의는 중단 상태다.

북한은 대신 9·19 합의를 한국군의 전력 증강 차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활용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도입은 “합의서에 대한 정면도전”(지난해 7월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담화)이고, 한·미 연합공중훈련은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지난해 4월 담화)이라는 주장이다. 9·19 군사합의를 대남 선전전과 압박의 소재로 활용하는 셈이다.

여기에 국방부의 태도는 또 다른 논란을 부르고 있다. GP 총격 당일부터 군이 나서서 ‘우발적 총격’ 임을 시사해 결과적으로 북한의 9·19 합의 위반을 희석시키는 듯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군사합의는 위반이 쌓이면 준수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라며 “합의 위반을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을 경우 우리 스스로 군사합의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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