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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후 마스크 벗지 못했다···'근로정신대' 이동련 할머니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日 비행기공장서 지옥같은 강제노동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6일 별세했다. [뉴스1]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향년 90세의 나이로 6일 별세했다. [뉴스1]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이동련(90) 할머니가 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끝내 일본 측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다.

이 할머니, 간암 투병 끝에 6일 별세 #미쓰비시 강제징용 소송 승소 원고 #

 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간암 투병 중이던 이 할머니가 전날 오후 11시10분께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나고야로 건너가 1년6개월가량을 강제징용 피해를 겪었다.

 이 할머니는 1944년 5월 일본인 교장의 권유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돼 갖은 고초를 겪었다. 같은해 12월 7일에는 일본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강제노역을 했던 양금덕(90) 할머니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온종일 매를 맞아가며 비행기를 닦아낼 때의 일은 10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1944년 촬영한 강제징용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뒷줄 왼쪽에서 4번째)의 사진. [연합뉴스]

1944년 촬영한 강제징용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뒷줄 왼쪽에서 4번째)의 사진. [연합뉴스]

귀국 후에도 마스크 못 벗은 할머니 

 고인은 해방을 맞아 1945년 10월경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에 참여했다.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시 소송은 2008년 11월 11일 10년의 법정 투쟁 끝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이 할머니는 당시 소송에 참여하면서도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매우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그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항상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고인은 한국에서 소송이 시작된 후로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잘못을 알리는 데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본 소송 때와는 달리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일제의 강제징용과 관련한 기자회견과 집회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동원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지난 6일 밤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7일 밝혔다. [뉴시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동원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지난 6일 밤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7일 밝혔다. [뉴시스]

미쓰비시 소송 승소…배상은 못 받아

 결국 이 할머니 등 5명이 참여한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국내 소송은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8년 11월에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으나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측은 현재까지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후로도 일본 측이 시간을 끄는 사이 원고 5명 중 1명인 김중곤 어르신이 지난해 1월 25일 사망한 데 이어 고인까지 생을 마감했다. 이 할머니는 2남 4녀를 뒀으며, 빈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안영숙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고인은 간암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며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작고하신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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