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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퇴론' 털고 '당의 머리'됐다…이인영·우상호·임종석 86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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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우상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왼쪽부터 우상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장대비를 내릴 것 같은 먹구름이 한순간 걷힌 느낌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이 본 86그룹의 기상도다. 4.15 총선 두달 전 86그룹을 뒤덮을 듯 했던 '용퇴론'의 흔적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오히려  86그룹의 대표격인 1980년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간부 출신 3인방의 행보는 민주당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초대 의장인 이인영 원내대표와, 1기 부의장을 지낸 우상호 의원, 3기 의장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들이다. 만년 ‘허리'에 그칠 것 같던 이들은 이번 총선을 거치며 ‘머리’ 로 부상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단번에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의 주류가 된 전대협 출신들의 집단적 의사는 지금까지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손학규·정세균·한명숙·문재인·추미애로 이어진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도 이들의 판단이 주된 변수였다. 21대 국회에서도 4선에 성공한 이인영·우상호 의원 외에도 차기 원내대표 유력 후보인 김태년 의원(4선), 박완주(3선)·한병도·송갑석·기동민(재선)·김승남·박영순·김원이(초선) 등 10여 명에 이르는 전대협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민주당의 주축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표급 인사로 성장한 이들이 과거와 같은 결속력을 보일 거라고 전망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의 전면에 떠오른 이들이 제한된 역할을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 했다.

'전화위복' 이인영

7일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인영 원내대표에 대해선 '비노’‘비문’ 이미지와 ‘운동권’ 느낌을 털어버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제도 개편, 검찰개혁 등 문재인 정부의 입법 난제들을 마무리 지었고 총선에서 180석 수퍼여당을 만들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2018년)에서 당권에 도전했다가 컷오프 된 뒤 존재감에 큰 상처를 입었던 그에게 원내대표 1년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정치권에선 당권 도전,대선 직행,지방선거 도전 등이 이 원내대표에게 열린 선택지로 거론된다.

'2019 DMZ 통일 걷기'를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해 5일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를 찾아 군 관계자와 이동하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19 DMZ 통일 걷기'를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해 5일 강원도 철원 평화전망대를 찾아 군 관계자와 이동하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본인은 "대개 이등병이 전당대회에 나가진 않는다"며 거리를 뒀다. 서울시장 도전을 권유하는 일부 인사들에게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시기 전대협 집행부를 맡았던 우상호 의원이 서울시장 재도전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고 같은 김근태(GT)계 출신의 우원식 전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 의사를 굳힌 상태라는 게 그의 진로 선택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당내 일반적 시선이다. 한 전대협 출신 의원은 "이 원내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대권 도전"이라며 "아직 부족한 대중적 인지도는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권토중래' 우상호

우상호 의원은 2018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박영선 후보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착실히 준비하며 대중적 이미지를 갖는 데 주력했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재도전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특히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데는 당시 원내대표였던 우 의원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86그룹에 속하는 한 의원은 "121석 민주당 의석으로 234개의 탄핵찬성표를 이끌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 나선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이 그해 4월 13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정책과 선거 전략을 두고 토론회를 벌였다. 오른쪽부터 우상호, 박원순, 박영선 예비후보. [중앙포토]

2018년 지방선거에 나선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이 그해 4월 13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정책과 선거 전략을 두고 토론회를 벌였다. 오른쪽부터 우상호, 박원순, 박영선 예비후보. [중앙포토]

86그룹 출신이지만 보수와도 대화가 되는 인사로 정평이 나 있다는 점도 향후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더좋은미래' 등 느슨한 형태의 의원 공부모임 외에 별다른 조직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게 흠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 의원으로서는 서울시장 도전 길목에서 정치적 커리어가 겹치는 이 원내대표와 마주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그림일 수 있다.

'암중모색' 임종석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작년 1월 청와대를 떠난 뒤 전국을 돌며 등산을 하며 유권자와 예비출마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한번 만나면 금세 가까워진다"는 친화력이 무기였다. 임 전 실장은 세 사람 중 만 54세로 가장 어리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면서 대권 잠룡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다. 총선에선 직책없이 전국 유세를 다니며 수도권·호남·충청 등 지역 네트워크를 고르게 만드는 부수적 효과도 거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고민정 민주당 서울 광진을 당선인.[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고민정 민주당 서울 광진을 당선인.[연합뉴스]

하지만 임 전 실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이런 해석을 멀리한다. 전대협 출신 한 인사는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구체적 성과가 불분명한 통일 운동을 하겠다고 했겠느냐"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치복귀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동향(호남)출신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인 상황이어서 공개 행보를 자제하고 있단 분석이다. 여권 인사는 "임 전 실장에게 지금은 기다리는 시간"이라며 "외곽서 존재감을 키우다가 언제든 정치권에 곧바로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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