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둘러싼 의·약·정 새 갈등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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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료계의 집단폐업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 실행안을 일부 바꾸자 약사회가 "분업정신을 훼손한다" 며 강력히 반발,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약.정 갈등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19일 폐업강행을 선언했으며, 약사회도 상임이사진 사퇴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 새 변수 약사회〓약사회는 18일 밤 긴급 상임이사회를 열고 "정부가 주사제의 예외범위를 확대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분업대상에서 제외한 것" 이라고 강력히 비난한 뒤 상임이사진 20명이 사퇴를 결의했다.

김희중(金熙中) 약사회장은 "지금까지 회원들의 반발을 설득하며 분업준비에 매진해 왔는데 분업정신이 훼손된 점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하다" 면서 "회원들을 설득할 수 없게 됐다" 고 말했다.

약사회는 20일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金회장은 "그렇더라도 7월 1일 의약분업은 시행해야 한다" 는 입장이다. 하지만 회원들의 반발 분위기가 예상 외로 강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알 수 없다.

약사회는 지금까지 ´우는 아이 젖 주듯´ 정부가 의료계에 질질 끌려다니지 말고 원칙을 고수할 것을 강조해 왔다.

약사회가 당장 의약분업을 거부하고 뛰쳐나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의료계의 폐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추가로 카드를 내놓을 경우 약계마저 집단 폐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정부로서는 곤혹스런 입장이다.

◇ 의.정 갈등 심화〓대화 창구가 완전히 닫혔다.

김재정(金在正) 의협회장은 "복지부에 눈물로 우리 입장을 호소했지만 수가 몇푼을 올리려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우리를 매도했다" 고 말했다.

사실 의협은 복지부뿐 아니라 청와대 등 관련 부처의 대화 제의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19일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주재로 의.약.정 3자가 자리를 같이 했지만 입장만 확인한 채 소득 없이 끝났다.

의협이 요구하는 의약분업은 ´선보완 후시행´ 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으로 분업을 시행하도록 돼있는데 지금 와서 어쩌란 말이냐" 며 선시행 후보완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먼저 보완하자고 주장하지만 정부로서는 들어주기 힘든 조건이다.

약사회는 분업이 연기되거나 차질을 빚으면 분업준비에 들어간 비용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약사회 내부의 분업 반대파들이 득세해 분업을 거부하자는 쪽으로 분위기를 이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재정 회장은 요구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폐업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의협에 폐업을 철회할 명분을 줘야 하는데 정부 입장에서 내놓을 카드가 마땅히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18일 세제.금융지원을 담은 대책을 내놓는 데도 다른 부처를 설득하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 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지난 3월말 집단휴진을 연기할 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나서 해결했듯이 이번에도 최고 통치권자가 나서 "분업을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겠다" 고 약속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金회장은 "대통령이 나서 약사법 개정, 의약분업 시행 유보 등을 약속한다면 대화에 나서겠다" 고 단서를 단 점에 비춰볼 때 극적인 타협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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