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싼 북·미간의 신경전에서 시작해 북한 외무성 내 권력 다툼의 성격을 띤 대외 라인 정비작업으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북·미 관계 및 북·중 관계 모두에 밝은 중국 내 소식통이 3일 밝혔다.
김정은 호위사령부에 코로나19 발생하자 #트럼프, “좋은 소식 받았다” 정보력 과시 #북한, “서한 보낸 적 없다” 강하게 반발 #외무성 내 내부 스파이 색출 작업 나서 #지난해 연말 북핵협상 실패하며 경질된 #이수용-이용호 세력 뿌리 뽑기가 핵심
김 위원장의 신병 이상설의 발단은 김 위원장이 2011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4월 15일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태양절 행사 불참은 신종 코로나 확산 사태와 관련이 있었다.
‘코로나 청정국가’라는 북한의 주장에 걸맞지 않게 김 위원장 등 북한 최고 지도부의 경호를 책임지는 호위사령부에서 코로나19 의심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감염을 우려해 원산으로 이동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1일(현지시간) 관련 상황에 정통한 2명의 인사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4월 중순 가까이에 있는 부하들이 발열 증세를 겪은 것을 알게 된 후 원산의 해변 휴양지로 '피신'했다고 보도했다. WP는 "김 위원장은 단지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마치 지난 3월 말 베이징의 코로나 확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저장(浙江)성으로 내려간 것과 같은 행보다. 문제는 직후에 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다.
북한의 이상 징후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으로부터 “좋은 소식(nice note)을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 태스크포스 브리핑 과정에서 나왔다.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에게도 코로나 문제가 생겼음을 나는 알고 있다’는 게 “좋은 소식을 받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북한이 발끈했다. 북한은 19일 외무성 대외보도실장이라는 생소한 직함의 명의로 “어떠한 서한도 보낸 게 없다”며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즉각 반박했다.
당시 국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받지 않았으면서 받았다고 과장 발언을 했다는 분석이 많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엔 이런 맥락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혈관 수술설’과 ‘위중설’, ‘뇌사설’ 등이 한국과 미국, 일본 언론 등에서 잇따라 나왔다. 특히 국내엔 중국 고위 당국자의 전언이라며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문이 계속 퍼졌다.
주목할 건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었다. 북한은 이 같은 소문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입장을 일절 보이지 않았고 결국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왜 그랬을까?
이와 관련, 소식통들은 북한이 김 위원장을 둘러싼 루머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나갔는지를 내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생겼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북한 외무성 내의 누군가가 북한 최고 지도부 관련 사항을 미국에 흘렸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색출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최근 마무리한 외교라인 개편과 맞물려 외무성 내 권력 다툼의 양상을 띠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 실패 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중심의 대미 협상 라인을 이수용 당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으로 바꿨다. 그러나 전권을 받았던 이수용-이용호의 외무성 라인마저도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북한은 지난해 말 이수용 당 부위원장 자리에 김형준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을 기용했고, 지난 1월엔 이용호 외무상을 경질한 후 그 자리에 외무성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오른팔 이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앉혔다. 이후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김형준-이선권-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행동에 나섰다.
핵심은 북한 외무성에서 잔뼈가 굵은 이수용-이용호의 뿌리 깊은 외무성 내 세력 제거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선희 제1부상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이번 기회에 북한 외무성이 최선희 제1부상의 인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김 위원장 유고 시 각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눈여겨봤다고 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영국 BBC 등은 김 위원장 사망 시엔 동생 김여정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은 미·중의 공식적인 반응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비핵화한 북한’”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비핵화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은 지난달 21일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묻는 말에 “그런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부인했다.
이어 “중국과 북한은 산과 물이 이어진 우호적인 이웃으로 중국은 북한과 함께 양국 관계를 부단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든 중국과 북한의 우호 관계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답을 내놓은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