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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2’ 안방요금, 왜 극장보다 비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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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과 VOD 동시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 뮤직비디오 같은 화면과 히트 팝송이 주크박스처럼 흐른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과 VOD 동시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 뮤직비디오 같은 화면과 히트 팝송이 주크박스처럼 흐른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달 29일 온라인(VOD) 동시 개봉한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이하 트롤 2)’가 첫 주말 극장가 1위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일까지 나흘간 관객 수는 4만6000명. 최근 극장 관객 수가 하루 1만 명 안팎으로 내려앉은 것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코로나로 국내서 온·오프 동시개봉 #큰화면·음질 끌려 첫 주말 관객 1위 #CGV·롯데 상영 거부에도 흥행 #VOD는 영화사가 매출 80% 가져가 #미국 CNBC “극장 개봉보다 더 수익”

연휴 첫날인 부처님 오신 날(지난달 30일)엔 잇단 신작 개봉으로 극장 일일 관객 수가 47일 만에 10만명대를 회복했다. ‘트롤 2’ ‘나의 청춘은 너의 것’ ‘저 산 너머’ ‘호텔 레이크’ ‘마이 스파이’ ‘기생충’ 흑백판 등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 신작이 과반을 차지한 것도 오랜만이다.

‘트롤 2’는 전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코로나19로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을 택한 첫 사례다. 기존 홀드백(영화가 극장 개봉 후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관행 무시에 반발해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 국내에선 CGV·롯데시네마 등이 상영을 거부했다. 국내 멀티플렉스 3사 중 메가박스와 일부 중소 영화관에서만 개봉했다.

당초 안방극장에 흥행이 쏠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적잖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극장가가 방역, 띄어 앉기 등에 힘쓴데다,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점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귀 즐거운 음악영화, K팝 한류까지

코로나19 속에서도 극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대형 스크린과 양질의 사운드다. ‘트롤 2’는 그런 상영 환경에 최적화된 주크박스 뮤지컬. 팝이 유일한 음악인 줄 믿고 살던 팝 트롤 ‘파피’와 친구들이 온세상 음악을 록으로 통일하려는 록 트롤 ‘바브’에 맞서는 여정에 테크노·컨트리·펑크·클래식 등 히트곡과 뮤직비디오 같은 흥겨운 쇼 화면을 버무렸다.

3년 전 세계 3억5000만 달러(약 4200억원) 수입을 올린 1편의 후속작이다. ‘슈렉’ ‘드래곤 길들이기’의 드림웍스가 제작하고 유니버설 픽쳐스가 직배했다.

왼쪽부터 각각 저스틴 팀버레이크, 안나 켄드릭이 목소리 연기한 팝 트롤 ‘브랜치’와 ‘파피’. 한국어 더빙판에선 SF9 로운, 레드벨벳 웬디가 목소리를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왼쪽부터 각각 저스틴 팀버레이크, 안나 켄드릭이 목소리 연기한 팝 트롤 ‘브랜치’와 ‘파피’. 한국어 더빙판에선 SF9 로운, 레드벨벳 웬디가 목소리를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K팝의 존재감도 반갑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팝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고퀄 음악” 메들리 장면에 포함됐다.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 바하멘의 ‘Who Let the Dogs Out’, 마키 마크 앤 더 펑키 번치의 ‘Good Vibrations’ 등과 함께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켈리 클락슨, 앤더슨 팩, 오지 오스본 등 목소리 출연한 정상급 뮤지션 중엔 한류 아이돌 레드벨벳도 포함됐다. K팝 트롤 캐릭터로 출연해 대표곡 ‘러시안 룰렛’을 한국말로 선보였다. 레드벨벳 웬디는 아이돌 그룹 SF9 로운과 함께 한국어 더빙판 주연도 맡았다.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단·대중 신선도가 각각 60%대로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평가지만, 귀호강·눈요깃거리는 풍부하다. 전체관람가 등급. 메가박스에 따르면 1일까지 예매 관객 중엔 여성(68.5%)이 남성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40대가 가장 많고 이어 30대, 20대 순서였다.

극장은 ‘공짜’, VOD는 2만2000원

한류 아이돌 ‘레드벨벳’은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투어’에서 K팝 트롤 역에 캐스팅돼 대표곡 ‘러시안 룰렛’을 한국말로 선보였다. [뉴스1]

한류 아이돌 ‘레드벨벳’은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투어’에서 K팝 트롤 역에 캐스팅돼 대표곡 ‘러시안 룰렛’을 한국말로 선보였다. [뉴스1]

극장가도 작정하고 호객에 나섰다. 메가박스는 개봉 일주일 전 회원 가입만 하면 선착순 1000명까지 ‘트롤 2’ 공짜 예매 쿠폰을 주는 행사를 열었다. 15분 만에 쿠폰이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자, 유니버설과 협의해 이틀 뒤 2000명으로 무료 인원을 늘렸다. 이 역시 1시간 만에 매진됐다.

VOD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것도 극장 문턱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48시간 대여에 2만2000원. IPTV에 따라 많게는 1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얹어 줬고 포털에선 이용료를 곧바로 6000원 깎아주는 쿠폰 행사도 벌였지만, 통상 극장 개봉한 신작 VOD가 부가세 포함 1만1000원 안팎인 걸 생각하면 꽤 높은 가격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여성은 “신작이어도 집에서 보는데 2만2000원이면, 그 돈으로 온라인 스트리밍(OTT) 서비스를 한 달 가입해 아이에게 더 다양한 콘텐트를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트롤 2’ 관계자는 “미국 본사 가이드가 적용된 금액”이라면서 “미국도 48시간에 19.99달러다. 국내 VOD가 이런 금액대로 출시된 건 처음이지만, 극장과 동시 개봉하는 이례적 상황임을 고려해 달라”고 했다. 업계에선 유니버설이 홀드백 붕괴에 대한 극장가 반발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가격이 너무 낮으면 VOD로 확 몰릴 수가 있어, 프리미엄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트롤 2’는 북미에선 아예 디지털로만 출시해 3주 만에 1억 달러(약 1200억원) 매출을 올렸다. 문 닫는 극장이 늘고 AMC 등이 상영을 보이콧하면서다. 28일 현지 방송 CNBC는 1편이 5개월간 북미 극장가에서 거둔 매출(1억5370만 달러)보단 작지만 수익 면에선 더 남는 장사를 했다고 전했다. 북미에선 극장 개봉 시 극장 체인과 영화사가 매출을 절반씩 나누지만, VOD는 영화사가 매출의 80%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트롤 2’의 디지털 흥행 성공과 관련, CNN은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인 수백만 명 덕분에 안방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1편이 전 세계 극장가에서 거둔 성공을 따라잡기엔 갈 길이 멀다”면서 “디지털에서의 성공이 영화관의 종말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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