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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미뤄지며 아동학대 신고 급감…'코로나 학대 사각지대' 생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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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보육기관의 개학이 미뤄지며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 직군의 신고 건수가 급감하면서다. [중앙포토]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와 보육기관의 개학이 미뤄지며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 직군의 신고 건수가 급감하면서다. [중앙포토]

주말부부로 지내던 A씨는 지난 3월 초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가 배우자 B씨와 크게 다퉜다. 지방에서 홀로 일하는 A씨는 집에 있는 아이가 보고 싶어 하루빨리 올라오고 싶었지만, B씨의 생각은 달랐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옮을까 걱정한 B씨의 지적을 시작으로 부부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A씨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흉기를 들었고 7살 아이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한 이윤호 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조사팀장은 “A씨는 우발적으로 흉기를 들었을 뿐 사용할 의도가 없었다고 잘못을 뉘우쳤지만 아이 앞에서 크게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쌓인 육아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연합뉴스]

아이가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쌓인 육아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연합뉴스]

A씨의 사례처럼 코로나19로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 등의 개원이 미뤄지며 '코로나 발(發)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와 아이가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른 가정 내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아동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은 커졌지만,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 보육기관 종사자는 아이를 직접 만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친인척이 육아를 도와주거나 어린이집을 보내는 가정이 많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장기간 집 밖에 나가지 못해 가정 내 스트레스가 쌓인 경우가 많다"며 “보호자가 우울증을 겪으면 아동학대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난다. 아동권리보장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 사례 2만4604건 중 1만8919건(76.9%)이 부모(양부모 포함)에 의한 것이었다.

이 팀장은 “지난달 28일에도 독박육아 문제로 다투던 부모가 6살 아이를 때린 사건이 있었다”며 “3~4월에만 매주 5~7회의 현장 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를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 굿네이버스 황윤지 작가 재능기부]

아동학대를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 굿네이버스 황윤지 작가 재능기부]

그럼에도 수치로 드러나는 아동학대 건수는 줄어들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아동학대 신고 접수는 688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336건)보다 449건 줄었다. 그렇지만 아동권리보장원은 실제 아동 학대가 줄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개학이내 개원이 미뤄지며 신고 의무자인 교사나 아동복지시설종사자의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중·고 교직원의 1분기 신고는 632건이었지만 올해는 169건으로 73.3%(463건)나 감소했다. 의료인, 의료기사의 경우도 75건에서 57건으로 줄었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아동학대를 알게 된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특히 교사나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 24개 관련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동학대를 인지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신고의무가 없는 사람들의 아동학대 신는 오히려 늘었다. 아동 본인이 학대 신고를 한 경우는 지난해 1분기 996건에서 올해 1142건으로 14.7%나 많아졌다.

“아동학대 신고 줄어도 학대가 줄어든 건 아냐”

이 팀장은 “아동학대 신고 사례 중 상황이 심각한 응급 아동학대 의심사례 접수는 체감상 오히려 증가한 것 같다”며 “코로나19 사태 속 아이들에게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부모가 실직하거나 임금이 밀려 경제적인 상황이 나빠진 가정도 많다”며 “이런 경제적 스트레스 상황도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정작 기관에서는 대면 접촉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상황에서 관련 종사자들이 학대를 인지하기 어려운 만큼 이웃과 주변에서 의심스러운 상황을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며 "아동복지기관에서 기존 사례관리를 철저히 하고 경제적 지원도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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