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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코로나 막아주냐···'韓비판' 佛도 도입한 추적앱 마력

중앙일보

입력

호주에서 사용중인 확진자 추적 앱의 모습 [EPA=연합뉴스]

호주에서 사용중인 확진자 추적 앱의 모습 [EPA=연합뉴스]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뉴노멀’(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불러왔다. 그 중 하나가 ‘큰 정부’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도시를 봉쇄했고, 일부는 군대까지 동원했다. 감염병의 공포 앞에서 각국 시민들도 정부의 통제에 크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21세기형 빅 브라더(big brother·정보 통제로 사회를 통제하는 존재)인 셈이다.

디지털 정보를 활용한 한국의 성공 방역 사례를 놓고도 "개인 자유의 침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왔던 프랑스 마저도 정부가 앞장 서서 앱을 통한 통제에 나서기로 했다. 방역을 위해선 개인의 자유를 일정 수준까지는 희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퍼진 것이다.

이 흐름을 학습한 각국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일부 침해하는 대신, 보다 안전한 방역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정부가 빅 브라더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과학 저널 네이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온라인 사이트에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추적 앱을 ‘잠금 해제의 열쇠’로 보고 있다”는 분석을 실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지났다는 판단하에, 하루 빨리 봉쇄 조치를 완화해 일상과 경제 활동을 정상화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봉쇄 조치를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주목받는게 바로 ‘확진자 동선 추적 앱’ 이다.

싱가포르 시작으로 영국·프랑스까지 도입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확산 초기부터 확진자 접촉 여부를 알 수 있는 앱 ‘트레이스 투게더(TraceTogether)’ 를 개발해 사용 중이다. 블루투스에 기반한 앱은 약 2m 반경 내 트레이스 투게더를 설치한 다른 사용자의 앱과 통신한다. 블루투스를 활성화 한 채로 확진자와 가까이 있었을 경우 앱에 기록이 남는다. 대신 앱은 사용자의 위치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아, 연결이 발생한 지점에 대한 정보 역시 기록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밀라노 지하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탑승 자리를 표시해 놓은 모습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밀라노 지하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탑승 자리를 표시해 놓은 모습 [AFP=연합뉴스]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던 서구 국가들 마저 변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접촉자들에게 자동으로 경고를 보내주는 ‘중앙집중형’ 방식으로 앱을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집중형 방식은, 블루투스를 이용해 사람들이 특정 시간 이상 일정 거리를 유지할 때마다 기록해 뒀다가 누군가 확진자로 등록되면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경고를 전송하는 형태다. 다만 누가 경고를 보냈는지 알 수 없도록 익명으로 전송한다.

디지털 정보를 이용한 방역에 부정적이었던 프랑스 마저 결국 이동제한령 해제를 앞두고 앱(스톱코비드ㆍStopcovid)을 도입하기로 했다. 사용자가 코로나19 확진자와 근접거리에 닿을 경우 경고 메시지가 뜨는 블루투스 기반 앱이다.

최근 호주에서 출시된 앱은 하루 만에 다운로드 건수가 200만건을 넘었다. 역시 블루투스 기반인 앱은 1.5m 근방에 있는 사용자 간 연락처를 저장하고 암호화한다. 특정 사용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그 사용자와 15분 이상 접촉한 사용자에게 앱으로 위험을 전한다. 이 외에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등도 앱 도입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네이처는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앱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세계 표준이 없어 우려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블루투스 앱, 정말 ‘만능 열쇠’일까? 

네이처에 따르면, 앱을 통한 정부의 통제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앱의 정확성 문제다. 만약 확진 판정이 잘못된 상태에서 앱 알림이 작동할 경우 일부 시민들은 몇 주 동안을 불필요한 자가 격리를 시행할 수도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감염자를 놓칠 위험도 있다. 네이처는 “앱이 감염자를 식별하거나 질병의 확산을 막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한 근거가 미비함에도 각국 정부는 홍보만 할 뿐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생활 침해 문제다. 개인을 식별할 수 없게 처리된 정보가 수집된다 해도, 최근 점점 익명 데이터 집합에서 개인을 식별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익명화된 데이터에서 개개인을 재식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 정부가 도입하려는 앱 'DP-3T'의 모습 [AP=연합뉴스]

스위스 정부가 도입하려는 앱 'DP-3T'의 모습 [AP=연합뉴스]

"앱은 보조적 수단일 뿐…사람 대체해선 안 돼" 

결국 앱은 보조적 수단일 뿐, 사람이 하는 역학 조사와 대규모 진단 검사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블루투스 기반 앱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역학 조사를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만, 확진자 동선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정부가 카드 사용 내역, CCTV 등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나라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감시를 바탕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처는 “방역에 있어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과정 또한 중요하다”며 “여기에는 방역을 위해 수집하는 정보는 안전하게 보호될 뿐 아니라 승인된 목적에 따라서만 사용할 것이라는 정부의 엄격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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