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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은 부장만 원한다…코로나로 앞당겨진 '비대면' 트렌드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19로 인해 10~20년에 걸쳐 천천히 변화했을 비대면의 시대가 앞당겨졌다."
트렌드 분석가 겸 경영전략 컨설턴트인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의 말이다. 3년 전부터 소비 시장의 비대면화를 연구한 그는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의 변화가 가속화 되는 걸 보고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모아 지난 4월 16일 트렌드 전망서 『언컨택트』를 출간했다. 앞으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를 직접 만나 들었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언컨택트』출판 #3년 전부터 비대면의 시대 예측, 연구 #“코로나는 트렌드 적응 앞당겼을 뿐” #쇼핑·외식·조직문화 전반에 큰 변화

지난 4월 22일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이 언컨택트(비대면)으로 달라질 일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4월 22일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이 언컨택트(비대면)으로 달라질 일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언컨택트를 정의한다면.

"많은 사람이 언컨택트(Uncontact)라고 하면 '사람은 멀리하고 기계만 상대하는 건가?' 오해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궁극적 목적은 '컨택트'(접촉)다. 사람을 직접 마주할 때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비대면 시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안정적으로 관계를 갖기 위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

장점은 뭐가 있나. 

"일단 편하다. 예를 들어 요즘 흔히 이용하는 새벽 배송, 당일 배송 장보기는 마트에 직접 가지 않아도 물건이 집 앞으로 온다. 내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건 물론이고, 배송 기사에게 느꼈던 미안함도 덜어준다. 세탁소·짜장면 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이런 죄책감을 줄이는 작업이 비대면을 통해 이뤄져 왔고 더 급격하게 바뀔 거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컨택트에서 언컨택트로 넘어온 건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어서다. IT·AI·로봇기술 등이 이를 더 가속화 시켰고,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일상의 적응 속도가 더 빨라졌을 뿐이다."

예견된 언컨택트 흐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가깝게는 대형마트에 직접 가서 장 보지 않는 것. 실제로 이마트의 작년 영업이익은 많이 감소했고, 상당수 점포도 폐점했다. 롯데마트도 마찬가지다. 이마트는 한국 대형마트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늘 승승장구했지만 이젠 판이 달라졌다. 특히 새벽 배송 장보기를 실현시킨 마켓컬리의 등장과 빠른 성장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 새벽 배송·당일 배송 시장 규모는 조 단위에 달한다."

대형마트사의 온라인 유통은 왜 마켓컬리에게 선두권을 뺏겼을까.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건 쉽다. 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사업과 병행할 땐 메가트렌드를 읽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나마 이마트는 빨리 움직였다. 작년에 웬만큼 준비해놔서 이번 코로나 이슈에 성과를 봤다. 롯데는 아직 오픈도 못 했다. 온라인 배송 시장을 두고 두 업체의 반응 차이는 겨우 몇 달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코로나19 이슈로 몇 년에 해당하는 차이가 생겼다. 이마트의 '쓱' 배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롯데가 빼앗아 오려면 훨씬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의 운영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다.

"지금의 오프라인 매장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단 양극화가 이뤄져서 비싸거나 특화된 곳만 살아남을 거다. 식당을 예로 들면, 비싸고 좋은 고급 식당 또는 직접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요리를 선보이는 곳들이다. 코로나 여파에도 프라이빗룸이 있는 식당은 장사가 됐다. 보편적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나 장소를 위해선 굳이 시간을 내서 직접 갈 필요가 없어졌다.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김용섭 소장이 그린 '언컨택트'와 연관된 관계어 분석. 비대면 현상이 단지 배달, 온라인 쇼핑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 영역 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김용섭

김용섭 소장이 그린 '언컨택트'와 연관된 관계어 분석. 비대면 현상이 단지 배달, 온라인 쇼핑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 영역 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김용섭

김소장은 인터뷰 내내 “비대면화는 사회·경제와 연결된 모든 영역에서 일어날 거대한 흐름”이라며 “쇼핑·배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회식 문화를 거론하며 기존의 조직 체계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 부분이 흥미롭다.

"회식은 부장만 원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비대면화 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나.

"회식 문화에 동조하지 않는 젊은 세대는 회사 내에서 끈끈한 인간관계를 원치 않는다. 기성세대에게 한 번 들어간 직장은 '평생직장'이었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있는 동안 빨리 배울 거 배우고, 재미가 떨어지면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걸 배우겠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뛴다. 또 코로나19로 재택·원격근무의 가능성을 봤다. 한 곳에 모여 관리자의 통제를 받는 방식에서, 모든 업무를 클라우드에 접속해 데이터화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누가 어떤 성과를 내는지도 투명하게 드러나는 시대가 됐다. 아랫사람을 직급으로 누르려고 했던 상급자는 버티기 힘들어졌다."

씁쓸하게도 들린다.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능력을 키우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 새로운 흐름을 잘 캐치하는 상급자는 젊은 층이 잘 따른다. 일하는 과정에서 뭔가 얻을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전, 10년 전 얘기만 해서는 리더십이 생길 수 없다. 직급이 사라지는 순간 콘텐트를 갖고 있지 않은 상급자는 동네 아저씨·아줌마가 될 뿐이다."

언컨택트로 라이프스타일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트렌드 전망서 '언컨택트'. 김용섭 저. 퍼블리온.

트렌드 전망서 '언컨택트'. 김용섭 저. 퍼블리온.

"패션 분야에선 '지속가능성'이 더욱 강조될 거다.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으로 안전한 환경, 깨끗한 지구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이미 속옷 브랜드 '와코루'는 3D 스캐너를 통해 비대면 응대를 시작했고, 구글·아마존은 맞춤옷을 디자인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음식·식재료의 배달 산업이 성장하면서 집밥과 혼밥 문화는 더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반면 외식산업은 프리미엄 또는 특화된 차별화로 살아남을 방법에 집중할 때다."

'배달권'에 따라 부동산 지형도가 달라질 거라는 전망도 했다.

"온라인 교육 등으로 기존 학군·역세권 같은 요인보다 원하는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 좋은 환경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주거 문화에서도 재택 원격근무를 하는 이들이 늘면서 '홈 오피스' 인테리어를 고려하는 수요가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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