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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만명에 중환자 병상 10개뿐···로힝야 난민 '코로나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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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 3월 25일 식수보건위생 시스템 강화와 인구 밀집지역인 도시·난민촌에 대한 구호물자 제공을 비롯한 코로나19 긴급대응을 위해 국제사회에 2억5500만 달러의 지원을 요청했다. UNHCR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국경을 넘은 난민 2590만 명, 국내 난민 4130만 명, 망명희망자 350만 명을 비롯해 모두 7080만 명의 난민이 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지역 SOS #물도 부족한데 코로나19 접근경보 #33㎢ 좁은 땅 86만 난민 빽빽 거주 #인구 밀집한 세계 최대 취약 난민촌 #유엔난민기구, 2억5500만 달러 요청 #ICRC, 난민에게 ‘손씻기 등 보건교육 #난민 30%만 깨끗한 물 접근 가능해 #방글라데시, 의사·간호사·병상 태부족 #개도국·난민에 K방역·K구호 실천 기회 #인도주의 실천하는 한국 이미지 보여야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이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로부터 식량과 구호물자를 받아가고 있다. 이 지역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물과 이료 인프라가 열악해 코로나19 확산에 취약하다는 평가다. 사진 =ICRC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이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로부터 식량과 구호물자를 받아가고 있다. 이 지역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물과 이료 인프라가 열악해 코로나19 확산에 취약하다는 평가다. 사진 =ICRC

세계 최대 인구 밀집지역인 로힝야 난민촌

난민의 대부분은 경제사정에 좋지 않은 시리아·아프가니스탄·남수단·우간다·방글라데시에 몰려 있다. 이 가운데 방글라데시에는 2017년 8월 이후 국경을 맞댄 미얀마의 라카인 지역에서 밀려난 로힝야 난민을 중심으로 94만 명의 난민이 몰려있다. 현재 단일 난민촌으론 세계 최대 규모인 쿠투팔롱 난민촌이 이 나라 동남부 콕스바자르 주에 있다. 이곳에는 33.67㎢의 좁은 땅에 85만9000여 명이 몰려있다. ㎢당 인구밀도가 2만5517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의 하나다. 위생 환경도 좋지 않고 사람도 빽빽하게 몰리다보니 코로나19가 확산할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주에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쿠투팡롱에서 지난 1일 로힝야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몰려 있다. 100만 명 가까운 난민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난민촌은 코로나19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AP=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주에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쿠투팡롱에서 지난 1일 로힝야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몰려 있다. 100만 명 가까운 난민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난민촌은 코로나19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AP=연합뉴스

위생에 취약한 난민촌, 코로나19 비상 사태

쿠투팔롱 근처에도 새로 도착한 사람을 위한 난민촌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미얀마 국경 근처에 자리 잡은 코나르파라 난민촌은 ㎢당 6만~9만 명이 몰린 초밀집 지역이다. UNHCR이 제공한 대나무와 방수포를 얽어 만든 임시거처 하나에 5~10명이 거주한다. 620가구가 같은 우물과 화장실을 공유한다. 난민촌은 위생 환경이 열악한 취약지역이다. 코로나19 예방에 필수적인 ‘집에 머물기’는 할 수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은 곧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현지 적신월사(이슬람국가의 적십자 격)와 함께 쿠투팔롱과 코나르파라 등 콕스바자르 주의 난민촌에서 구호 활동을 계속해왔다. 깨끗한 물과 식량·생필품 공급, 보건위생 확보, 이산가족 찾기 등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비상이 걸렸다. ICRC가 현지에서 보내온 긴급 현장 보고를 전한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주에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쿠투팡롱에서 지난 1일 로힝야 난민들이 모여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할 경우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AP=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주에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쿠투팡롱에서 지난 1일 로힝야 난민들이 모여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할 경우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AP=연합뉴스

물 공급 확대해 손씻기 확산 시도

난민들을 코로나19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 지역의 국제인도주의 기구들은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난민촌에 코로나19 유입과 확산을 막을 유일한 대책은 위생 강화다.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발열자가 나타나면 신속하게 격리하고 주변을 봉쇄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확산하는 와중에 예방을 위한 손 씻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난민촌에선 이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문제는 물 부족이다. 영국 에든버러 대의 조사에 따르면 난민촌에서 깨끗한 식수와 생활 용수에 항상 접근할 수 있는 난민은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물 부족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다.
국제 인도주의 기구들은 식수와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난민촌 곳곳에 우물을 팠다. 하지만 워낙 많은 난민이 몰리다 보니 부족 현상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난민촌 사이를 흐르는 개천은 쓰레기에 심하게 오염돼 이용이 불가능하다. UNHCR이 식수 보건위생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한 이유다. ICRC는 급한 대로 난민촌 곳곳에 물통을 가져다 놓고 손씻기를 지원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주민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고 대기하고 있다. 100만 로힝야 난민을 품고 있는 방글라데시는 의료와 영양 상태가 열악해 코로나19 취약 지역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주민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거리를 유지하고 대기하고 있다. 100만 로힝야 난민을 품고 있는 방글라데시는 의료와 영양 상태가 열악해 코로나19 취약 지역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보건교육으로 코로나19 정보 알려

둘째 문제는 난민들이 정보 부족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외부와 교류가 단절된 난민들은 코로나19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ICRC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지 난민 지도자 아리프는 “문자를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가 많고 정보가 부족해 헛소문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며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 손 씻기나 위생 관련 권고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지역사회 지도자를 모아놓고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보건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ICRC

국제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지역사회 지도자를 모아놓고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보건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ICRC

이에 따라 ICRC는 방글라데시 적신월사와 공동으로 난민촌 지역사회 지도자를 대상으로 순회 보건교육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알리고 예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과거 전염성이 높은 콜레라나 디프테리아,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나 댕기열이 유행했을 때 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리고 있다. 종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여성 지도자에게 먼저 교육하면 이들이 지역 사회 난민들에게 예방법을 전파하는 방식이다.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현장요원 수미는 코나르파라와 인근 테크나프 난민촌을 돌며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보건교육을 한다. 홍보팀 소속 하이코 막트라요는 보건교육을 위한 포스터와 안내문, 음성 교육자료를 만들고 직접 현장을 찾아 교육을 지원한다. 잠쉐돌 카림은 난민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포스터를 보여주며 코로나19 증상을 알리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주민들이 지난 16일 국영상점에서 파는 상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주민들이 지난 16일 국영상점에서 파는 상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가 의료 인프라 자체가 열악해 문제

근본적인 문제는 방글라데시가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품은 인도주의적인 나라지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환자를 집중 치료하는 중환자실은 사치다. 영국 국제구호기구인 플랜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주민 120만 명과 난민 90만이 몰린 콕스바자르 지역에 환자를 집중 치료할 중환자(ICU) 병상은 고작 10개밖에 없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10명 이상은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난민들에게 돌아올 자리는 더욱 없을 것이다.
미국의 보건분야 비정부기구(NGO)인 카이저 패밀리 재단 자료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인구 1만당 병상 수는 3개, 의사는 인구 2000명에 1명, 간호사 5000명에 1명꼴일 정도로 보건의료 시설도, 인력도 태부족이다. 의료비 지출은 GDP의 2.37%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지출의 96.5%를 개인이 부담하고 정부 부담률은 7.9%에 불과하다. 대부분 약국에서 지출된다. 보건 분야 국제학술지인 ‘보건인력자원’에 따르면 전체 보건의료 지출 중 정규교육을 받은 의료 인력이 가져가는 것은 전체의 4%에 지나지 않는다. 정식교육도 자격증도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마을의사’가 의료비 지출의 65%를 가져가는 구조다.

방글라데시 섬유 노동자들이 지난 16일 수도 다카에 모여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섬유 노동자들이 지난 16일 수도 다카에 모여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취약국가 방글라데시, 확진자 5000명 넘어

방글라데시는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통계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05달러로 세계 143위인 개발도상국이다. 재정상 난민은 물론 국민 건강 유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자 나라들도 대처가 힘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감당은 더더욱 힘든 처지다. 세계은행 등의 자료에 따르면 이 나라에선 미취학아동의 56%가 성장지체, 56%가 저체중, 17%가 영양장애를 겪고 있다. 주민들은 농촌의 45%, 도시 76%가 영양부족을 겪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ICRC 요원인 잠쉐돌 카림(오른쪽)이 직접 만든 보드를 들고 로힝야 난민촌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보건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ICRC

ICRC 요원인 잠쉐돌 카림(오른쪽)이 직접 만든 보드를 들고 로힝야 난민촌 지역사회 지도자들에게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보건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ICRC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코로나19는 어김없이 방글라데시를 찾아왔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4월 28일 자정 기준으로 5913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152명이 숨졌다. 1억6000만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5만여 건을 검사해 100만 명당 306명에 지나지 않는다. 100만 명당 1만1700여 명을 검사한 한국과는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신속한 검사와 확인, 격리를 통한 확산 방지라는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취약국가 방글라데시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넘어오다 지난 15일 해안경비대에 구조된 로힝야 난민들이 모여 있다. 로힝야 난민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넘어오다 지난 15일 해안경비대에 구조된 로힝야 난민들이 모여 있다. 로힝야 난민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00만 로힝야 난민촌, 코로나19 막으려 봉쇄

이에 따라 로힝야 난민촌도 안심할 수 없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당국은 난민촌을 사실상 봉쇄하고 난민의 출입을 막고 있다. 방호복과 의료기구, 검사키트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봉쇄 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다. 미얀마에서 가까운 말레이시아 등에선 난민선의 입항을 거부해 로힝야 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인도주의 기구 요원들은 봉쇄된 난민촌에서 100만 가까운 난민을 지키기 위한 코로나19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할 수단이 없는 난민에겐 이들이 유일한 희망인 셈이다.
ICRC 다카 사무소의 라이한 술타나 토마 공보관은 “난민촌과 구금시설 등 사람이 과밀하게 수용된 시설을 대상으로 전염병 확산 대응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의료진과 인도주의 활동가 보호, 대응팀의 신속 파견과 철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제구호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우러나는 활동이다.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피신하려던 로힝야 인들이 입항을 거부 당하고 배에서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입국 금지 조치다. EPA=연합뉴스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피신하려던 로힝야 인들이 입항을 거부 당하고 배에서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입국 금지 조치다. EPA=연합뉴스

개도국과 난민에 K방역·K구호·K외교 실천 기회

ICRC 서울 사무소의 박지해 공보팀장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 취약 계층에게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장조했다. 박 팀장은 “ICRC는 개별국가 적십자사들의 재난대응 활동을 조율하는 국제적십자연맹(IFRC) 및 각국 적십자사·적신월사와 함께 난민촌과 분쟁지역의 코로나19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한국은 이런 방글라데시와 방역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의료기기와 보호 장비, 검사키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인도주의 기구와 방글라데시에 대한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 100만 난민을 품은 방글라데시를 지원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돕고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할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K방역과 K구호, K외교를 전 세계에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한국이란 이미지를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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