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53) 경남지사의 항소심이 사실상 다시 시작됐다. 지난 2월 주심 판사를 제외한 재판장과 좌배석 판사가 교체된 뒤 열린 27일 두 번째 공판에서 새 재판부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의 공소사실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김 지사 측 요청에 새 재판장인 서울고법 2부 함상훈 부장판사가 "심리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 사안이다.
재판부 "김 지사 메시지 삭제 안했다면 더 진실 가까웠을 것"
김 지사의 변호인은 "드루킹이 아주 영화를 찍고 있다"며 작심한 듯 특검의 공소사실을 비판했다. 하지만 새 재판부는 "김 지사가 (텔레그램과 시그널) 메시지를 삭제하지 않았다면 더 진실에 가까웠을 것"이라며 김 지사측을 긴장케 했다. 결백하다는 김 지사가 일부 증거를 삭제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드루킹은 대법원 확정, 김경수는 2심 중
특검과 변호인단은 각각 2시간가량 준비한 파워포인트(PT)로 지난 13개월간 법정에서 다퉜던 공소사실과 쟁점을 법원에 또 설명했다. '드루킹' 김동원(51)씨는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이미 징역 3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그와 공모한 혐의를 받는 김 지사의 항소심은 13개월째 이어지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 정도 속도라면 김 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올해 말에나 가능할 것이라 본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릴 경우 김 지사는 경남지사 임기(2022년 5월) 대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있다.
이날 김 지사의 재판은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됐다.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4층 대법정 앞에는 10여명이 넘는 사복경찰관들이 경비를 섰다. 소지품 검사도 법원 2층 입구와 4층 대법정 문밖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 다른 유명 피고인의 재판에는 없던 모습이다.
특검 "김경수 드루킹 대화에선 보안 신경 써"
먼저 PT를 시작한 특검은 김 지사가 드루킹과 댓글조작을 적극적으로 공모한 핵심 공범임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특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사무실인 일명 '산채'에 방문해 댓글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전임 재판장인 차문호 부장판사가 지난 1월 "김 지사가 2016년 9월11일 드루킹으로부터 킹크랩 시연을 본 사실은 객관적 증거로 증명이 된다"는 심증을 밝혔던 부분이다. 김 지사 측은 "드루킹의 일방적 거짓말"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쟁점으로 삼은 '닭갈비 식사'에 대해서도 "1심에선 쟁점도 아니었던 사안"이라 반박했다. 특검은 "드루킹 일당의 검찰 조서에 김 지사와 닭갈비를 함께 먹었다는 언급은 없다"고 말했다. 김 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받자 갑자기 '닭갈비 식사'를 쟁점화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또한 "김 지사가 드루킹과 보안 메신저인 시그널로 대화하며 자동삭제 기능을 설정하는 등 보안에 신경 썼다"고 주장했다.
"아주 영화를 찍고 있다" 김경수 측의 반박
김 지사 측 변호인은 이런 특검의 주장에 대한 반박 PT에서 "드루킹의 관점에서 프레이밍을 한 공소사실"이라 반박했다. 이어 "드루킹이 김 지사를 엮어내야만 자기가 살 수 있다 생각해 만들어낸 사건""드루킹이 전지적작가 시점에서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란 표현도 썼다. 수차례 번복된 드루킹의 진술을 탄핵하는 전략에 집중한 것이다.
김 지사의 변호인은 또한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이 '선플 운동'을 하는 줄만 알았지 댓글조작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실을 상상도 못 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것도 아닌 완전 무죄 주장이다. 닭갈비 식사에 대해서도 "객관적 증거에 의해서도 당일 닭갈비 식사가 있었다"며 드루킹 일당의 메신저 대화방 내용을 제시했다. 변호인단은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회를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는 특검과 드루킹 측 주장에 대해서도 "아주 그냥 영화를 찍고 있다"며 다소 도발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닭갈비집 사장 증인 채택
김 지사의 재판부는 이날 양측의 설명을 들은 뒤 각 PT 사항 중 일부 쟁점에 대한 추가 의견서를 요청했다. '닭갈비 식사' 쟁점과 관련해 해당 닭갈비집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또한 드루킹 측 인사 일부에 대한 증인신문 계획도 잡았다. 다만 핵심 증인인 드루킹과 킹크랩 개발에 관여한 드루킹 측 인사들에 대한 재증인 채택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김 지사 측 변호인단은 가능하다면 드루킹을 포함한 킹크랩 관여자들을 다시 신문하길 원하고 있다. 특검은 "이미 증인신문이 끝난 증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지사는 지난 1월 1심에서 댓글조작 혐의엔 징역 2년을,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현재는 보석 상태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 지사의 다음 재판은 5월 19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