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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단속까지 당했다…고발당하는 스타트업, 제2 타다 위기

중앙일보

입력

스타트업 일부가 '제2의 타다’가 될 위협에 내몰렸다. 기존 사업자가 무차별 고소·고발 위협을 가하면서다. ‘타다’는 택시업계에서 고발당한 뒤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받아 기사회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일명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중고차로 매각될 타다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중고차로 매각될 타다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운수‧노동‧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기존 업계 견제에 스타트업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타트업을 기존 업종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단체가 법적 규제 등을 근거로 소송전에 나서는 일이 많다고 한다. 기존 업체와 갈등과 법적 규제로 사라진 타다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스타트업계 최대 고민으로 떠올랐다.

"서울 시내 안 가본 노동청 없다"

시간제 수행기사 서비스 ‘모시러’를 운영하는 업체인 ‘버틀러’는 타다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버틀러 측에서 타다에 운전기사를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택시업계에서 이를 불법파견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이근우 버틀러 대표는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경찰서를 오가야 했다. 이 대표는 파견 근로 문제로 '무차별 고발'에도 시달렸다.

이근우 버틀러 대표는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청 판단을 받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서울 각지 고용노동청과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했다”며 “수행기사 서비스가 성장하면 이후 대리운전 업체 등으로부터 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업 영역 중복을 피하려고 신경 쓴다”고 말했다. 이어 “또 분쟁으로 번지면 회사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 소프트웨어에 자격증 요구

'자버'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근로계약서 작성과 고용지원금 연결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다. 지난해 노무사 단체인 한국공인노무사회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자버가 노무사가 대표로 있는 노무법인이 아닌데 관련 업무를 하는 데 대해 소명을 요구했다.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공인노무사법은 자격증을 취득한 공인노무사가 아니면 노동법 관련 서류 작성 등 노무관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동욱 자버 대표는 “노무사법이 오래전 만들어지다 보니 AI를 이용한 인사관리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회원사들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고용노동부에 지원금을 신청하려고 해도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며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AI 기반 사업을 중단해야만 하는 상황을 우려해야만 하는 게 스타트업계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헌주 변호사(법무법인 솔)는 “스타트업 상당수가 법적 기준이 모호한 ‘회색 영역’에서 성장을 하는데 자본이 충분치 않다 보니 법적인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기득권을 가진 기존 업체가 이를 이용해 소송전에 나서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타다’처럼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장단속에 경찰 조사 

부동산중개 스타트업 ‘집토스’는 위장단속을 나온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 임원들에게 고발을 당한 전력이 있다. 2018년 5월 중개사협회 임원이었던 최모씨와 김모씨가 고객인 척 접근해 허위로 임대차계약을 맺은 뒤 경찰에 명의대여 및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재윤 집토스 대표는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한동안 경찰 조사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 밀집지역.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서울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 밀집지역.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당시 이 대표 고발을 주도한 중개사협회 임원은 위장단속을 벌인 혐의(업무방해) 등이 인정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뒤 일부 기존 공인중개사들의 반발로 상당한 견제를 받고 있다”며 “업무에 지장이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인이 개인 중개사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상생의 길 또한 분명히 있는 데 업계에서 견제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인중개사법은 개인 중개업자가 아닌 법인에 대해서만 상당한 규제를 두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중개법인 대표는 물론 등기임원의 3분의 1 이상도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어야 한다. 법인은 분사무소 설치에도 제한이 있다. 이 대표는 “법적 규제로 중개법인 성장이 가로막혀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 중재+규제 개혁해야"

이에 대해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기존 사업자와 새로운 사업자가 부딪히는 건 벤처업계에서 자주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자로 나서 기존 사업자와 스타트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정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신사업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법안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며 “이런 법을 근거로 기존 사업자들이 신사업이 성장하는 것을 막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과 자영업자 간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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