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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검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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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한 여성이 김장용 비닐로 방호복을 만든다. 박스 종이로 옷 본을 만들어, 틈새를 드라이기로 가열하니 비닐이 쫘악 달라붙는다. 가위로 잘라 뒤집어 쓰면 방호복이다. 오사카의 병원 직원들이 사흘간 4000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상황이 화가 날 법도 한데 “의료용으로 쓸 수 있다”며 웃는다. 체념도 섞여 있겠지만 부조리극 같은 이상한 광경이다.

의료 현장에선 “의료붕괴가 시작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의료장비, 인력 부족이 한계에 다다랐다. 도쿄에선 최소 병원 13곳에서 감염이 확인돼, 정상적인 진료가 멈춰섰다. 일본 제1의 암병원에선 수술 80%를 중단하기로 했다. 오사카도 3차, 4차 의료기관이 셧다운 됐다. 일본 의사회 회장은 “긴급하지 않은 수술은 모두 연기해야 한다”고 후생노동성에 요청한 상태다.

도쿄의 56세 남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의심돼 여러 번 보건소에 전화했지만, 6일만에 겨우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확진 결과를 받아보기도 전에 집에서 홀로 고독사 했다. 50대 남성은 병실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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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태가 코로나19 검사를 소극적으로 했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토쿠다 야스하루(徳田安春) 무리부시오키나와 임상연수센터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검사를 하지 않아서 감염자가 늘고, 그래서 중증환자가 늘고 사망자가 느는 것이 의료붕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감염자가 공식 확인된 것보다 12배 많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오자키 하루오(尾崎治夫) 도쿄도의사회 회장도 인터뷰에서 “초기 중증환자 위주 검사 방침은 이제 틀리다. 당장 검사확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검사를 늘리는 것만 빼놓고 열심이다. 구멍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처럼,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방장관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검사를 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고, 환자가 더 증가하더라도 마찬가지다”(4월 20일 기자회견)라고 했다. 검사는 국립 감염증연구소가 틀어쥐고 있는데 이젠 아예 의료진의 책임으로 넘기고 슬쩍 발을 빼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사람 간 접촉을 80% 줄여달라”는 말만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 80%를 줄이지 못한 국민들을, 도시봉쇄를 할 수 없는 법 체계를 탓할까 우려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력함이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묻고 있다. 우왕좌왕,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자세에 실망만 커져가고 있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