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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빠진 野의 투표조작설…8년전 '나꼼수 실패' 닮아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캡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캡쳐]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이 사전투표 의혹설로 홍역을 치르면서 정치권에선 ‘과거 현 여권이 오버랩된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통합당 일부 지지층 사이에서 제기한 의혹은 서울·인천·경기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63:36’이라는 비율로 거의 똑같게 나왔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은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보수 유튜버들이 17일 제기한 뒤 차명진(부천병) 통합당 후보가 “전국 12곳만이라도 사전 투표함을 재검해야 한다”고 동조하고, 20일 통합당 의총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며 확산하고 있다.

반면 서울 노원병에서 석패한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은 17일 페이스북에 “내가 사전투표로 패했다. (하지만 사전투표 조작의혹은) 과거 김어준씨와 다를 바가 없는 주장”이라며 “반성하고 혁신을 결의해야 할 시점에 사전투표 의혹론을 물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은 이와 관련한 공개 토론회를 23일 연다.

음모론에 귀 기울인 민주당

2017년 1월 7일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

2017년 1월 7일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

“투표소 수개표로 개표부정을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이 전산개표 부정 의심을 하고 있고 그 의심을 정당화할 근거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21대 총선 후 야권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과 흡사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여권의 대권 주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재명 경기지사다. 그는 2017년 1월 페이스북에 18대 대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이같이 썼다. 이에 대한 배경을 보려면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2012년 대선 후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온라인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여권이 ‘공작’을 폈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런 의혹을 키운 것은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측이었다. 당시 민주당 지지층에 영향력을 발휘한 나꼼수 진행자 김용민씨는 18대 대선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이 국민에게 횡포를 부릴 때 정치권이 제 역할을 했는지, 대선 개표과정에서 과연 민주당이 제대로 된 감시를 했는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낮다”고 주장했다.

나꼼수 진행자였던 김어준씨 역시 18대 대선 개표 당시 투표지 분류기에서 미분류표로 나온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박 후보에게 월등히 높게 나왔다며 부정선거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어준씨가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 [사진 프로젝트 부]

김어준씨가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 [사진 프로젝트 부]

김씨는 이같은 음모론을 토대로 영화까지 제작했다. 이 영화는 19대 대선을 한 달 앞둔 2017년 4월 개봉했다. 영화상영 후 기자 간담회에서 김씨는 “통계적으로 말씀드리자면, 2012년 대선에서는 철저히 기획된 숫자가 발견됐다”고 거듭 주장했다.

팟캐스트 쫓다가 중도층 놓쳐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여권에 대한 나꼼수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나꼼수 진행자 정봉주 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1년 징역을 받고 수감되자 민주당은 그의 지역구였던 노원병에 공동 진행자 김용민씨를 공천했다. 선거 석 달 전인 2012년 1월에는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박영선ㆍ안민석 의원 등이 특별면회를 가기도 했다. 이 면회는 교도소 측의 불허로 무산됐다.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나꼼수 번개에 김어준, 주진우씨와 함께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나꼼수 번개에 김어준, 주진우씨와 함께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이 2012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 김용민씨의 '막말'이 결정타였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민주당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나꼼수 지지자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했다. 민주당은 그해 12월 대선에서도 중도층 확장에 실패하며 패배했다.

현재 미래통합당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민주당은 2012년 사례를 통해 이후부터는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 측과 거리를 두고 당의 입장과는 차별화했다”며 “그런 과정을 통해 2016년 총선부터 중도층의 표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는 결국 고정 지지층이 아닌 중도층을 보고 하는 것인데, 지지층만 열광하는 담론에 당이 연결되는 건 결국 중도층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래통합당이 이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사전투표 조작설에 맞서고 있는 이준석 후보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존 미디어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해주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에 빠져든다. 낙심한 이들의 취약한 심리를 신흥종교처럼 파고드는 것”이라며 “과거 민주당 같은 사례가 보수층에서 되풀이되면 2년 뒤 대선도 또 진다”고 우려했다.

SNS를 통해 현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며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던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음모론’이라며 일축했다가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저 보고 우파의 조국이 되라는 것 같아요. 철저한 진영논리로 무슨 증거가 있어도 우겨라. 그런데 저는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20일 페이스북)라고 남겼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페이스북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페이스북

유튜브는 그간 통합당 내에서 ‘비대칭 무기’로 인식됐다. 과거 통합당 측은 나꼼수를 비판하면서도 팟캐스트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담론 때문에 여론이 불리해진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 때문에 각종 우파 유튜브 채널에 수십만명의 구독층이 형성된 것에 고무적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0월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우파 유튜버들을 국회로 초청해 토크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 전반기 정책평가 토크콘서트’라는 제목의 이 행사에는 나경원 원내대표,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 주광덕 의원이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수 유튜브를 의식한 언행 때문에 중도층을 놓친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통합당 관계자는 “팟캐스트=유튜브, 나꼼수=가세연이라는 말이 돌더니 결국 실패 전철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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