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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부부의 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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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호 20면

운명의 그림

운명의 그림

운명의 그림
나카노 교코 지음
최재혁 옮김
세미콜론

음악에선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꽈과과광’으로 표현되는 ‘운명’이란 테마가 미술에선 어떻게 표현될까. 베스트셀러 『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저자 나카노 교코가 이번엔 ‘운명’을 키워드 삼았다. 미술사의 흐름과 별개로 역사·문학·신화 등 스토리텔링으로 그림을 풀어내는 저자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미술사 중심의 그림 읽기는 어떤 사조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가의 대표작 위주로 보게 하는 맹점이 있다. 루브르, 오르세에 몇 번을 가도 늘 같은 작품만 보게 되고, 수많은 다른 작품들은 그저 걸려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은 모든 그림에 의미를 부여한다.

다소 낯선 23점의 서양 회화에서 ‘운명’이란 키워드가 일관된 정의로 풀이되는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고, 그림 자체의 운명이기도 하며, 그림에 그려진 주인공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운명’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위해 취한 앵글일 뿐이다.

장 레옹 제롬의 ‘아래로 내린 엄지’는 신고전주의 흐름에서 로마시대 검투사를 그린 평범한 작품이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이 대작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찍게 만든 ‘운명의 그림’이란 걸 알고 보면 흥미로운 도상으로 가득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 1세’는 같은 작가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는 나폴레옹’에 비하면 덜 알려진 작품이지만, 가슴팍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발밑에 놓인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 나폴레옹을 로마 영웅의 풍모로 묘사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나폴레옹이 그해 러시아 원정에서 비참하게 패할 운명임을 아무도 몰랐다는 뒷얘기와 함께 감정이입이 된다.

앵그르와 아리 셰퍼가 각자 그린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도 흥미롭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상 인물인 반면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형수와 시동생 사이 세기의 ‘불륜 커플’이다. 남편에게 들키는 운명적 장면을 그린 앵그르나, 지옥에서 형벌 받게 된 운명을 그린 아리 셰퍼나, 이들의 사랑을 감미롭고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반면 이들을 죽인 남편 잔초토는 『신곡』에서 ‘가족을 배신한 자’로서 가장 깊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운명에 처했다니, ‘부부의 세계’란 이토록 잔인한 것인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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