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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정치…공산당 위기감이 권력집중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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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시진핑 권력 강화의 심리학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지 4년만에 공산당 중앙위원 24명이 낙마했다. 부패 및 기율 위반이 그 이유였다. 시진핑 집권 전 창당 이후 91년 동안 낙마한 중앙위원 숫자는 9명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장관급 고위 간부 100여 명이 낙마했다. 빈자리는 시 주석의 세력으로 채워졌다. 중국의 통치 엘리트는 왜 자신의 특권을 제약하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시진핑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무리수를 묵인했을까. 열쇠는 중국이 겉으로 보여준 자신감 뒤에 숨어있는 통치 엘리트의 위기의식에 있다.

공산당 문건에 적시된 생사존망의 위기

“중국 공산당 혁명 계승자들은 권력자가 권력을 잃는 순간 #재산·생명·가족 등 모든 것을 잃고 역사 속에서 지워져 버린다고 여긴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상황에서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자신감보다 #불안감, 공격적 본능보다 방어적 본능이 반영된 결과였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가 집권 초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당연하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 모두 집권 초기 반(反)부패운동을 추진했고, 자신의 통치이념을 공산당 지도이념으로 만들려 했다. 또 파벌을 장악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문제는 권력 강화의 속도와 정도의 차이였다.

시 주석 집권 초기 권력 강화 드라이브는 전례 없이 강했다. 공산당 지도부가 함께 움직였다. 시진핑은 신설된 주요 영도소조의 조장 및 각종 위원회의 주임을 독점했다. 선전계통에 대한 통제를 바짝 죄었다. 반부패 운동으로 당의 기강을 회복하고, 인민의 신뢰를 획득했으며, 정적을 제거했다.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毛澤東)”을 연상시키는 ‘인민의 영수 시진핑’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헌법의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무장경찰 지휘권도 차지했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엘리트의 심리적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치 엘리트는 두 가지 두려움을 공유한다. 하나는 일반 대중과의 갈등, 다른 하나는 엘리트 내부의 권력 갈등에서 파생된 위협이다.

지난해 9월 30일 중국 열사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천안문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앞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당 권력서열 2위 리커창(오른쪽)과 3위 리잔수(왼쪽) 사이에 선 시진핑( 앞줄 가운데) 주석이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30일 중국 열사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천안문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앞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당 권력서열 2위 리커창(오른쪽)과 3위 리잔수(왼쪽) 사이에 선 시진핑( 앞줄 가운데) 주석이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권위주의 체제는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와 같은 억압 기구를 이용한다. 과도한 폭력은 민심이반이라는 부작용을 부른다. 일부 대중은 통치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독재자의 축출을 기도한다. 권력 공유도 위기감의 뿌리다. 최고 통치자가 후계자 승계의 규칙을 무시하거나, 지배 파벌이 지지하지 않는 후계자를 임명하거나, 독재자의 유고가 발생하면 권위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이 빠르게 상승한다. 이 경우 엘리트 분열을 피하기 위해 후계자 승계를 미루거나 독재자의 종신 집권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처럼 권위주의 체제에 내재한 불안감은 통치 엘리트의 집단행동을 끌어내는 중요한 심리적 변수이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통치 엘리트는 계속되는 국내 위협을 인지하고, 공산당의 생존을 위해 안전 최대화를 추구한다. 대중봉기 및 자중지란에 대한 방어적 위기의식은 시진핑 중심의 권력 강화와 강성 권위주의 등장을 촉진했다.

중국 공산당은 일당 독재가 붕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공유한다. “무산계급정당이 정권을 얻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력을 잘 행사하는 것은, 특히 장기 집권은 더욱 어렵다. 당의 집권 지위는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한 번의 고생으로 영원히 잃지 않는 것도 아니다.” 2004년 ‘당의 생사존망’에 관한 문건에 당 내부의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적혔다.

성장 둔화·대중 소요·권력 투쟁의 삼중고

후진타오 집권 2기(2007~2012년) 중국 엘리트의 위기의식이 심화됐다. 배경에 세 가지 요인이 작동했다. 먼저 경제 성장이 둔화됐다. 개혁·개방기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은 공산당 통치의 중요한 정당성을 제공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지속적인 고도성장 가능성에 관해선 중국 엘리트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됐다. 2000년대 말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 지방정부의 재정악화, 그림자 금융의 확대라는 중국경제의 3대 위협이 긴밀히 연계됐다. 지방정부·지방금융기관·부동산 개발업자 등으로 이뤄진 연계를 끊고, 지방정부의 재정을 건전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효과적인 선제 대응을 위해 최고 권력자 중심의 공산당 권력을 강화하고 강성 권위주의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둘째 집단 시위를 포함한 사회적 소요가 심화됐다. 특히 불평등 문제는 ‘민심의 역린’으로 불린 만큼 민감한 이슈다. 한 해 수십만 건에 달하는 군체성 사건(집단시위)은 중국 공산당의 안정적 통치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군체성 사건이 발생할 때 사이버 공간에서 다양한 정치·사회 변혁 담론이 형성됐다. 가장 민감한 사안은 소수민족 분규이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중국 정부와 일부 소수민족 간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외부 세력 (특히 미국)에 의한 분열 책동 및 대중 소요 가능성은 그 진위를 떠나 중국 엘리트 위협의식의 ‘상수(常數)’로 부상했다.

셋째 엘리트 사이의 내분이 격화됐다. 중국 공산당 혁명 계승자들은 현대 중국이 여전히 왕조 순환의 덫에 빠져있다고 믿는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는 순간 단순히 직업을 잃을 뿐 아니라 재산·생명·가족 등 모든 것을 잃고 역사 속에서 지워져 버린다고 여긴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상황에서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태자당 출신 엘리트들은 명·청 왕조 붕괴 후 황족들이 겪은 운명을 자신들도 맞이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후진타오 집권 말기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이 이 같은 역사적 교훈을 환기시켰다. 시진핑은 보시라이를 필두로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과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 등 고위 간부들이 2012년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전에 ‘당 분열’을 획책하는 정치적 모의를 했다고 맹비난했다. 보시라이 사건은 공산당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당의 기강이 무너졌음을 보여줬다.

심각한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중국 통치 엘리트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위기감을 공유한 후진타오 2기 지도부는 전임 장쩌민과 달리 시진핑에게 당 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의 직위를 일시에 넘겨줬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체제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중국 정치 엘리트들의 선택이자 선제적 대응이었다. 자신감보다는 불안감, 공격적 본능보다는 방어적 본능이 반영된 결과였다.

“외부 변화에 대비하라” 코로나 위기감 강조한 시진핑

“장기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사상 준비와 업무 준비를 완비하라.”

지난 8일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의 핵심 요지다. 당 기관지는 시진핑 주석의 해당 발언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마지노선 사유’를 강조해 보도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 후폭풍에 만발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위기감의 발로이다.

시 주석이 판단한 코로나 위기 요인은 네 가지다. 첫째,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 보급이 요원한 상태에서 중국은 바이오 안보에 취약해졌다. 둘째,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된 중국은 서방 국가의 책임 추궁과 배상 요구에 맞서야 한다. 셋째, 코로나19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국제질서의 재편이 임박했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능력이 부족하다. 국제질서 재편은 중국에게 커다란 리스크다. 넷째, 코로나19가 전세계 산업의 분업 시스템의 재편을 촉발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깊숙이 편입된 뒤 직면한 초유의 리스크다.

코로나 위기감에 시 주석은 ‘전시(戰時) 상태의 일상화’로 대응에 나섰다. 25인의 중앙정치국 회의를 7인의 상무위원회 회의로 대체하면서 권력을 자신에게 더욱 집중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일본·국민당과 전쟁 속에서 성장한 정당이다. 폐쇄성과 집권적인 조직체계는 전시 상태에 적합하다. 문화대혁명 시기 중앙문혁소조가 중앙정치국, 서기처를 대신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은 악재를 호재로 바꾸는 데 능란하다.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이 펼치는 ‘두려움의 정치’의 궁극적인 노림수다.

◆손인주

미 조지워싱턴대·프린스턴대·브루킹스연구소를 거쳐 홍콩대에서 중국정치외교와 국제정치경제를 강의하며 연구했다. 현재 서울대 중국연구소 소장이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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