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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빚 1인당 1400만원인데…또 빚내서 지원금 준다는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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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을 내면 혜택을 받는 현세대는 당장 나쁠 게 없다.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랏돈을 마구 쓰고픈 유혹에 빠지는 이유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지난해 국가부채가 1743조6000억원에 이른다. 중앙‧지방정부가 갚아야 할 돈은 728조8000억원이다. 국민 1인당 1409만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라 재정 상황이 양호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도 지난해 54조4000억원 적자다. 모두 사상 최대 기록이다.

나라 살림에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선거를 앞두고 재정 건전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야 모두 “전 국민 모두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하는 기획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당장 급하다”는 정치권의 주문에 묻혔다. 강 교수는 “개인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빚이 와 닿지 않으니 당장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권이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돈을 마구 풀고 있다”고 말했다.

나랏빚 마구낸 댓가는 살인적 물가 

하지만 재정은 공짜가 아니다. 가계·기업과 마찬가지로 빚을 쓰면 반드시 고지서가 돌아온다. 적정 수준 이상의 빚을 지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장 물가가 들썩일 수 있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돈을 풀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게 된다”며 “적정 수준 이상으로 돈이 풀리면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물가가 오르면 고통을 받는 건 생계가 어려운 서민층”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세고비아라는 베네수엘라 청년이 지난 2018년 10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진 볼리비아화 지폐를 재료로 지갑이나 벨트, 핸드백 등을 만들었다. AP=연합뉴스

리처드 세고비아라는 베네수엘라 청년이 지난 2018년 10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없어진 볼리비아화 지폐를 재료로 지갑이나 벨트, 핸드백 등을 만들었다. AP=연합뉴스

극단적인 경우가 베네수엘라다. 부채가 늘어나 나라 곳간이 비면 계속 빚(국채 발행)을 냈고, 돈도 마구 찍었다. 결과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뜻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이 나라의 물가 상승률은 2018년 13만60%(1300배), 지난해는 9585.5%(959배)다.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면서 지폐로 종이 가방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나랏빚 갚으려면 세금 더 낼 수도

국가 채무가 늘면 내가 쓸 돈도 줄어 들 수 있다. 빚 부담이 커지면 국가는 결국 국민에게 손을 벌린다. 증세가 대표적이다. 월급 명세서에 표시가 나는 소득세 대신 담뱃값, 공공요금 인상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민의 지갑을 털 수도 있다. 실제 나랏빚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국민의 조세 부담은 커지는 추세다. 2002년 21.3%이던 국민부담률은 2018년 26.8%로 늘었다. 국민부담률은 한해 국민이 내는 세금(국세+지방세)에 사회보장기여금(국민연금보험료ㆍ건강보험료ㆍ고용보험료 등)을 더한 뒤 이를 그해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국가도 부도낼 수 있어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정부가 부도를 낼 수 있다. 국채에 대한 이자나 원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다. 2010년대 초반 그리스, 키프로스 등이 그런 사례다. 국가가 부도를 겪으면 민생 경제는 말 그대로 파탄이다. 거꾸로 한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 때 생긴 경각심 때문에 재정 관리와 외환보유액 관리를 잘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가적인 위기가 닥칠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성진 교수는 “재정 위기는 암과 비슷해 평소에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증상이 드러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며 “말기 때 발견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신재민 기자

그래픽 =신재민 기자

무엇보다 재정은 국민 경제에 큰 타격이 올 때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낭떠러지로 몰리는 서민을 구해낼 수 없다. 전문가들이 재정건전성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만약 지금 나라 곳간이 비어 있는 상태라면 코로나 19에 대한 긴급 대응 자금이 부족해 서민 살림의 어려움이 더 커졌을 수 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재정이 위기 때 서민들의 삶을 도우려면 평소에 재정이라는 방파제를 잘 쌓아야 한다”며 “당장 한국의 재정 상황이 나쁘지는 않지만 늘어나는 복지비용 등을 고려하면 증가 속도가 더 가팔라질 수 있는만큼 지금부터라도 재정건전성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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