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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거짓의 매트릭스에 갇혀버린 한국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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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벚꽃이 떨어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눈부시다. 아파트 주차장에 꽃잎이 쌓이면서 경비원 아저씨들도 바빠진다. 그런데도 봄이 봄 같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 19에 갇혀 있어도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다. 이래도 봄날은 간다는 것이 야속하다.

선거는 미래의 꿈 파는 행사인데 #증오, 절망만 가득한 선거가 돼 #정당이 조작한 세계 벗어나려면 #진실을 똑바로 가려 투표 나서야

코로나 탓만은 아니다. 봄이 주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총선이 다음 주다. 그런데 여느 선거 때와 다르다. 실망과 탄식의 연속이다. 민주화 시기를 살아온 세대다. 민주주의만큼은 자랑스러웠다. 그런 자부심이 적잖은 상처를 입는다.

선거는 꿈을 파는 행사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설계도를 보여주며 미래의 희망을 그리게 하는 잔치다.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말고는 그다음 문제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는 게 선거로 얻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꿈이 아니라 증오와 적개심과 절망의 경연장이 됐다.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에도 옳고 그름은 분명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부끄러운 줄도 알았다. 이제 탈법을 저지르고도 정의라 우긴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지경이 됐다. 위선과 거짓의 매트릭스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비례전용 위성정당은 이번 선거의 정당성마저 위협한다. 여야 모두 변명을 늘어놓는 걸 보면 정당하지 않다는 건 인정하는 모양이다. 미래통합당은 동의하지 않은 선거법이라고 한다. 동의하지 않은 선거법으로 선거는 치르고 있지 않은가. 동의하지 않은 대통령은 부정하고, 동의하지 않은 세금은 내지 않을 작정인가.

더불어민주당은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다고 군소정당에 돌아갈 의석을 빼앗은 꼼수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진보 정당이 차지할 의석은 위성정당이 아니라도 보수 정당에 넘어가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그런 전략투표를 해왔다. 2중대, 3중대를 만들고, 후보 단일화도 외면하면서까지 군소정당을 압박하는 것은 야당 탓만 한다고 설명되지 않는다.

연동형은 무주택자에게 임대주택 입주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수백 채를 가진 집 부자가 위장 전입해 무주택자가 들어갈 임대주택을 빼앗는 것은 도적질이다. 정당지원금은 절반을 교섭단체에 먼저 균등분배한다. 비례 정당으로 교섭단체를 따로 만들어 정부 예산을 챙기는 것은 위장 이혼으로 무주택자 행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정치인에게만 편법의 길을 열어주나. 그런 정치권이 과연 미래 세대에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선거처럼 쟁점이 흐려진 선거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다. 워낙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임기는 4년이다. 다른 일은 하지 않을 건가.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그뿐인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 어떤 입장인지, 친절하지도, 성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정작 자기 정체는 감추고, 상대만 비난한다. 유권자를 속이는 득표 전략만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 난국만 강조한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게 모두 코로나 탓인가. 코로나만 지나가면 일자리는 충분해질 것인가. 원전 없이도 전력을 안정시킬 수 있고, 화석연료와 미세먼지도 줄일 수 있는가. 북한 핵과 미사일은 어떻게 할 것이며, 주변국 외교는 과거사만 청산하면 저절로 풀리는가. 공수처로 조국을 지키고, 검찰을 심판대에만 올리면 사법정의가 바로 서는가.

미래통합당도 대책이 없다. 반대 외에 내놓은 비전이 안 보인다.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비례대표 후보는 비례대표 후보대로 원칙이 없다. 뒤집고, 바꾸기를 반복했다. 리더십도 없고, 말마다 구설수다. 겨우 내놓은 전략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죽을 쑤는 판에 야당마저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어느 한 대목 속시원한 야당의 해법이 없다.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지도 못한다. 오죽하면 ‘이 정권이 야당 복은 타고 났다’는 말이 나오겠나.

여당이고, 야당이고, 진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네 편, 내 편만 따진다. 민주니, 개혁이니 모두 표를 얻는 선전용 구호로 전락했다. 어떤 사회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경쟁 정당은 협치의 파트너가 아니라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런 마당에 경쟁의 룰은 의미가 없다.

망한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국제 정세에 눈을 감고, 상복을 1년 입을지, 3년 입을지로 다른 당파를 말살했다. 외적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제사상 생선 머리를 오른쪽으로 놓을지, 왼쪽으로 놓을지에 목을 매던 그 시절 말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 편이면 정의라고 우긴다. 상대편은 작은 실수라도 소탕할 기회로 삼는다. 권력을 장악하는 작전만 있다. 그런 구도에서는 민주니 정의니 하는 말은 사치다. 저마다 조작된 세계를 만들어놓고, 국민을 가두어 놓고 있다. 어린 여성들을 절망의 방에 가둔 박사 방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래도 거짓의 매트릭스를 빠져나오는 길은 오로지 투표뿐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진실을 가려보자.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