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반(反)북한단체 ‘자유조선’이 지난 2018년 11월 조성길 전 주(駐)이탈리아 북한 대사 대리의 망명에 개입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유조선, 2017년 김정남 피살 후 김한솔 도피 도와 #2019년 2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 감행도 #김정은 정권 타도 목적…리더 에이드리언 홍은 잠적
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018년 11월 어느 날 아침, 조 전 대사 대리는 대사관에는 아내와 함께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 나온 뒤, 대사관 근처에 대기하던 차에 올라탔다”며 “자유조선 소속 멤버가 이 차를 몰았으며, 조성길 부부를 안전가옥으로 데리고 갔다”고 전했다.
조성길 부부가 망명 목적으로 잠적했다는 내용은 본지가 첫 보도(2019년 1월 3일 자)한 뒤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성길 부부 망명에 자유조선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WSJ이 처음 제기한 것이다.
WSJ은 “자유조선의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이 조성길 부부를 ‘북한의 정치적 망명가’로 서방 진영에 알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홍이 조씨 부부를 직접 만났는지 여부는 보도하지 않았다. WSJ은 “홍이 조 전 대사 대리를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는 불분명하다”며 “아마도 대북 투자에 관심 있는 사업가로 위장해 접근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조 전 대사 대리가 평소 대사관 운영에 쪼들려 했다면서다.
자유조선이 조씨 부부를 잠적시킨 데는 성공했지만, “이들의 17세 딸은 데려오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WSJ은 전했다. WSJ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사건이 알려진 뒤 조 전 대사 대리를 알고 지낸 한 이탈리아 정치인에게 서한을 보내 ‘조씨 부부가 딸 교육 문제로 다툰 뒤 대사관을 나간(망명한) 것’이라며 ‘부모는 딸을 해외에서 교육하고 싶어 했지만, 딸은 조부모가 있는 평양으로 가길 원했다’고 적었다.
WSJ은 “조씨 부부는 현재 서방국가에 머물고 있다”며 “자유조선 측에 딸 문제를 물었지만, 언급을 꺼렸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대북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조씨 부부가 딸을 남기고 망명한 것은 예기치 않은 사고였거나, 평양에 남은 조부모 등 가족을 생각해 일부러 남긴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조선이 조 전 대사 대리 망명을 딸 문제로 인해 완벽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면서, 2019년 2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은 과감한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WSJ은 분석했다. 북한 외교관과 가족을 자진 탈북시키기보다 아예 ‘납치’로 가장해 망명시키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얘기다.
하지만 습격 당시 북한 대사관 주재원들이 홍의 망명 설득을 거부했고, 또 한 명이 도주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자유조선의 작전은 실패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또 미 사법당국의 개입으로 이어지면서 자유조선이 와해하다시피 했다고 전했다.
홍은 이 사건 이후 잠적했으며, 당시 체포된 재미교포 크리스토퍼 안은 가택연금 조건부로 보석으로 풀려나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자유조선을 이끌고 있는 한나 송은 더 이상 홍과는 어떤 연계도 없다고 WSJ에 밝혔다고 한다.
자유조선은 2017년 3월 4일 유튜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동영상을 올리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는 ‘천리마민방위’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김한솔은 동영상에서 2017년 2월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후 천리마민방위의 도움을 받아 망명했다고 밝혔다. 이후 천리마민방위는 2019년 2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을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3월 1일 이름을 자유조선으로 바꿨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