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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얼마나 가져야 행복한가요? 코로나가 소환한 톨스토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66)

“땅값은 하루에 1000루불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직접 다녀온 만큼의 땅이 1000루불입니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땅값 계산방식이다. 하루의 시간을 주고 해가 떠 있는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준다. 만약 지금 이런 거래를 하게 된다면 하루에 얼마일까?

요즈음 걷기를 자주 하면서 다리에 힘이 좀 생겼다.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최소한 여의도보다는 훨씬 넓은 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지금 나에게 이런 거래를 제안해 온다면 하루에 100억이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미친 듯이 하루를 뛰어다닐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갖기 위해서 소설 주인공 ‘바흠’도 그랬다. 그는 평범한 소작농으로 살면서 단지 땅을 좀 더 가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지금 이 생활에서 땅만 여유가 있다면 난 겁날 게 없어. 악마도 무섭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 말은 들은 악마는 화가 나 바흠을 죽음으로 이끈다. 악마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바흠이 가진 욕망을 아주 조금씩 자극하는 것이었다.

악마는 바흠이 조금씩 땅을 갖게 한다. 땅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소유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바흠은 점점 더 넓고 좋은 땅을 갖고 싶어진다. 그런 바흠을 악마는 바시키르인들에게로 인도한다. 그리고 하루 땅값 1000루불을 제안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준다고 하면,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갖기 위해 나는 아마 미친 듯이 하루를 뛰어다닐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바흠’도 그랬다. [사진 pixabay]

해가 떠 있는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준다고 하면,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넓은 땅을 갖기 위해 나는 아마 미친 듯이 하루를 뛰어다닐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바흠’도 그랬다. [사진 pixabay]

바흠은 열심히 욕심을 내어 걸었다. 다리가 아팠고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점점 두려워졌다. 다시 돌아가야 땅이 자신의 것이 되는데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출발점이 점점 다가왔지만 바흠은 점점 더 힘들었다.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 바시키르인들의 고함이 들렸고, 마지막 힘을 내어 언덕으로 올라간다.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목표인 모자를 손으로 잡았다.

“참으로 훌륭하오, 당신은 정말 좋은 땅을 차지하셨소”라고 촌장이 말했다. 하지만 바흠은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바흠의 무덤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을 팠다. 그것이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악마는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바흠처럼 살아온 것 같은 삶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오랫동안 힘써서 일했느냐가 우리의 땅, 우리의 수입을 결정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며 많은 기적을 만들어 온 대한민국, 그 이면에는 수많은 희생과 손실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가족이 함께 대화는 나누는 시간, 삶과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을 희생하며 땅을 좀 더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은 바흠을 죽음으로 이끈 악마의 또 다른 기획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친한 후배들과 코로나 이후를 고민하다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2월부터 대부분 강의, 마케팅 등이 중단되면서 수입이 급감했어요. 지금까지 밤늦도록 치열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이들 잘 돌보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그렇게 소득을 벌지 않아도 버티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되게 신기했어요. 이제 당분간 아들에게 좀 더 집중하려고 해요.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무언가를 더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가게를 열어 놓고 사람들이 더 오가도록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강의를 더 하고 싶고 더 준비해서 잘하고 싶은데 부르는 곳이 없다. 명동에 멋진 점포를 열어 놓고 중국 관광객, 일본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지만 오가는 비행기는 텅텅 비었고 온종일 찾는 이 없는 텅 빈 거리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래도 되는 이런 현상들에 놀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일찍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시간을 가져도 되는 건가? 매월 하던 수많은 모임과 문화 활동과 소비 활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한 달 정도 임대료나 세금이나 대출이자를 안 내도 괜찮은 건가?

이런 모습들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하고 있다.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누리게 되는 편안함을 경험하고 있다. 마치 준비하고 있던 시험을 포기하고 난 후 느끼는 편안함 같은 것….

악마에게 지지 않기

돈과 관련하여 코로나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에서 두 가지를 나누고 싶다. 당신 삶에서 최소한의 소비생활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사진 pixabay]

돈과 관련하여 코로나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에서 두 가지를 나누고 싶다. 당신 삶에서 최소한의 소비생활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사진 pixabay]

코로나가 찾아왔다. 피를 토하고 쓰러지기 전에 만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참 여러 가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세계는, 대한민국은, 우리 개인들은 많이 변할 것이다. 돈과 관련하여 코로나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에서 두 가지를 나누고 싶다.

첫째, 당신 삶에서 최소한의 소비생활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이 수준을 한번 정해보자.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 깎고 또 깎아서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 보자. 수많은 전문가가 코로나가 끝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더 큰 놈이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때는 어느 정도 수준의 삶을 지탱하면 되는지, 그 생활을 오랫동안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생활 수준으로 맞추어서 한번 살아보자. 어쩌면 그런 삶 속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계속 챙겨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이탈리아에서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 로마의 후예들이 코로나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사진을 보면서 정말 소중한 것, 계속 챙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친구들을 돌아보는 시간,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사랑을 전하는 시간 등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들을 하면서 살아가자.

바흠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악마, 우리 삶을 땅을 구하는 바흠의 삶처럼 끌어가는 악마에 대항하는 방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간에 진정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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