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주문한 옷 저녁에 받는다, 의류 '총알배송' 시대 시작

중앙일보

입력 2020.04.04 13:00

업데이트 2020.04.04 22:57

국내 패션시장에 본격적인 ‘총알배송’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쏠리고 있는 소비자를 겨냥해 내놓은 강화된 서비스로 빠른 배송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지난달 TBJ·앤듀·버커루 등 자체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패션기업 '한세엠케이'는 그룹 내 계열사인 온라인 쇼핑몰 '아이스타일24'를 통해 의류 총알배송을 시작했다. 오전 0~10시 사이에 주문한 옷을 그날 저녁까지 도착시켜주는 배송 서비스다. 7개의 자사 브랜드와 컬리수·모이몰른·플레이키즈프로 등 ‘한세드림’이 보유한 유·아동복 브랜드까지 총 10개 브랜드의 제품이 대상이다.
지난 4월 1일 소셜커머스 '쿠팡'도 어플 내에 패션전용관 'C.에비뉴'를 새로 론칭하며, 주문 다음날 오전 7시 전까지 쇼핑한 옷을 받아볼 수 있는 의류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1만5000여 개의 패션상품 중 9200여 개가 로켓배송이 가능한 데다, C.에비뉴를 이용하면 쇼핑 금액과 상관없이 무료배송·무료반품 서비스를 해주는 등 기존 패션시장에선 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배송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한세엠케이·한세드림의 패션제품을 당일 배송하는 온라인몰 아이스타일24의 홈페이지 화면. 사진 아이스타일24

한세엠케이·한세드림의 패션제품을 당일 배송하는 온라인몰 아이스타일24의 홈페이지 화면. 사진 아이스타일24

과연 총알배송은 소비자의 의류 구매에 어떤 영향을 줄까. 2015년 엄선된 식재료·식품을 주문 다음날 오전 7시 전에 배달한다는 컨셉트를 내세우며 출발한 '마켓컬리'는 식료품 쇼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온라인으로 프리미엄급 식품을 사고 싶었던 20~40대 여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마켓컬리는 지난해 매출 4289억원으로 전년 대비 2.7배 성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2019년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평균 성장률은 20%로, 이의 8배가 넘는 성장세다. 쿠팡 역시 주문 다음날 새벽시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며 식품과 생필품의 독보적인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이 기세에 지난해 6월부터 이마트(SSG닷컴)를 시작으로 국내 대형마트들 또한 잇따라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패션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옷은 신선도가 중요한 식품, 없으면 당장 생활이 불편해지는 생필품과 달리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기호상품이다. 계절에 따른 시즌성 상품이긴 하지만, 당장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생활이 불편해지진 않는다. 게다가 당일 배송을 하려면 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이미 물류센터에 준비돼 있는 상태에서 빠른 시간에 택배사에 전달되어야 하는데, 같은 옷이라 해도 여러 개 사이즈와 컬러로 나뉘는 의류상품 특성상 재고 관리가 어렵다.
이달 중순 트렌드 전망서 『언컨택트』의 출간을 앞둔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은 최근 선보인 의류 총알배송에 대해 “한세와 쿠팡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세는 '예스24'로 도서 당일 배송에 대한 노하우와 시스템이, 쿠팡은 거대한 물류조직을 앞세운 다양한 상품의 새벽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쿠팡 모바일 어플에 새로 생긴 'C.에비뉴' 배너와 아이콘.

쿠팡 모바일 어플에 새로 생긴 'C.에비뉴' 배너와 아이콘.

실제로 지금까지의 의류 총알배송은 식품·생필품의 총알배송과는 차이가 있었다. 보통 의류업계에 있어 ‘당일 배송’이란 주문을 받은 날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출고한다는 개념이었다. 고객이 물건을 ‘당일 수령’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물건을 ‘당일 출고’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이렇게 출고된 상품은 배송 지역과 택배사의 상황에 따라 빠르면 다음날 오후, 늦어도 주문 후 2~3일 안에 받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아이스타일24와 쿠팡은 이를 더 앞당겼다.

W컨셉의 '오늘 배송' 이벤트 배너. 사진 W컨셉

W컨셉의 '오늘 배송' 이벤트 배너. 사진 W컨셉

2007~2017년까지 의류 당일 배송 서비스를 진행했던 아이스타일24의 박중재 기획운영팀장은 "당시엔 1% 대까지 사용자가 떨어질 정도로 의류 당일 배송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서비스가 아니어서 중단했다가 코로나 19로 온라인 시장이 중요해지면서 다시 당일 배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성복 쇼핑 플랫폼 'W컨셉'이 지난 2019년 봄부터 간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오늘 배송’ 서비스(오후 2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물건이 출고)는 시작 당시 웨딩 시즌 특수에 맞춰 한시적으로 도입한 서비스였지만, 반응이 좋아 이후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이곳의 김기영 브랜드마케팅팀장은 “한국 소비자는 다른 나라 소비자보다 편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오늘 배송 이벤트를 진행하면 보통 일반적인 제품 판매 속도보다 빠르게 판매되고, 또 입점 브랜드에서도 소비자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일 배송은 단순히 옷을 빠르게 배송한다는 개념 외에도 온라인 의류 쇼핑 구매 형태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특히 특정일에 입어야할 옷이 바로 필요할 때 유용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다"고 덧붙였다.
10~20대를 주 타깃층으로 하는 패션 플랫폼 ‘브랜디’ 역시 당일 배송을 한다. 인플루언서와 동대문 패션상인을 연결해주는 사업 구조로, 동대문에 자체 물류 창고를 구축하고 기존의 판매 실적과 소비자 성향 등을 고려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품의 판매 예상 수량을 뽑고 이를 미리 물류 창고에 비축해 놨다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배송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의류 총알배송 서비스의 전망을 밝게 본다. 김 소장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서비스의 필요성은 이미 3년 전부터 감지됐다. 그동안 비대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망설였던 패션업체들도 이번 코로나19가 트리거(방아쇠)가 돼 '반드시 해야하는 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당일 배송은 매출 촉진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선진적인 서비스를 시행하는 앞선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상품이 즉시 필요한 상품이 아니더라도 빨리 받아봄으로써 심리적 만족을 갖게 되고, 곧 해당 플랫폼이나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대표(트렌드랩506)은 "의류 총알배송으로 오프라인 매장은 더 위협받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산 물건을 즉시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꼽으면서도 짐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산 물건이 당일 집으로 도착하면 오프라인 매장 쇼핑의 장점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은 매장에 직접 가야만 살 수 있는 한정품이거나 파격적인 가격할인 등의 특화된 가치가 있어야만 고객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가 브랜드·상품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콘텐트 강화형 쇼룸 형태에서 미래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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